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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1장 14절 ~ 21절
또 내가 비옥함으로 제사장들의 혼을 흡족하게 할 것이며 내 백성은 나의 선함으로 만족하게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14)
And I will satiate the soul of the priests with fatness, and my people shall be satisfied with my goodness, saith the LORD. 14)
satiate ① (발음에 주의) (보통 수동태) (문어) …을 배부르게 하다 ② (고어) 만족한(satiated) ③ 물리게 하다 ④ …을 충분히 만족시키다
제사장들의 혼을 흡족하게 하신다는 의미는 주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고 계심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혼이 원하는 것을 아시지만 그것을 자제케하시거나 위 말씀처럼 만족하게 해주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혼이 기도하고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는 다고 우리가 잊혀져 버려지고 방치됨이 아닌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의 선한의지를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저와 당신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우리가 그분을 닮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의지만 느껴진다고 자신의 의지를 내세워서는 안됩니다. 위 말씀에서의 제사장들의 혼이 흡족하게 된 것은 그들이 바빌론의 침공으로 왕이 잡혀가는 처지를 겪은 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지는 제한되고 무능력하기 때문에, 주의 의지를 아는 것으로 우리가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고, 내 마음대로 하려다 잘못된 것 수습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O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한 음성이 들렸으니 애곡과 몹시 우는 소리라. 라헬이 그녀의 자녀들을 위하여 울면서 그녀의 자녀로 인하여 위로받기를 거부하였으니 그들이 없음이더라. 15)
Thus saith the LORD; A voice was heard in Ramah, lamentation, and bitter weeping; Rahel weeping for her children refused to be comforted for her children, because they were not. 15)
라헬은 야곱의 두번째 부인으로 열두지파중 요셉과 벤야민의 어머니입니다. 요셉의 둘째아들이 에프라임이며 그 이름은 북이스라엘의 상징입니다. 벤야민은 남유다에 속한 지파이므로 라헬이 그녀의 자녀들을 위하여 우는 것은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를 위하여 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애곡함이 되는 것이며, 실제 라헬이 우는 것이 아니라 라헬로 대표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어난 비극에 대한 애도인 것입니다.
라마 [ Ramah ] ‘높은 곳’이란 뜻.
1. 베냐민 지파의 성읍 라마 - 예루살렘 북쪽 8㎞ 지점에 위치한 교통 요지. 남북 분열 왕국 시대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유다로 가는 이스라엘 주민의 남쪽 이주를 막고 남유다를 견제하기 위해 라마에 성곽을 축성하였다(왕상 15:17). 그러나 남유다 왕 아사의 요청을 받은 수리아에 의해 라마 성은 허물어졌고, 남유다는 여기 사용된 건축 자재들을 가져와 게바와 미스바 성을 쌓았다(왕상 15:18-22). 훗날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던 중 집결지인 라마에서 석방되었으며(렘 40:1, 4),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무리 중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곳에 정착하였다(스 2:26; 느 7:30). 이곳에는 전통적으로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묘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삼상 10:2).
[네이버 지식백과] 라마 [Ramah]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목소리로 우는 것을 그만 하고 네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그만 하라. 이는 네 일이 보상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원수의 땅에서 다시 올 것이기 때문이라. 주가 말하노라. 16)
Thus saith the LORD, Refrain thy voice from weeping, and thine eyes from tears: for thy work shall be rewarded, saith the LORD; and they shall come again from the land of the enemy. 16)
refrain ① (격식) 삼가다 ② 그만두다 ③ 자제하다 ④ 억제하다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이 이곳에서 취하여 바빌론으로 가져간 주의 전의 모든 기명들을 내가 만 이년 이내에 이곳으로 다시 가져오며
예레미야 28장 3절
O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빌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찾아오리니 너희를 향한 나의 선한 말을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예레미야 29장 10절
하나냐가 예언하였던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냐가 예언한 만 이년 이내가 아니라 70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기다림도 이스라엘의 바램처럼 흡족하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의 권력에 스며든 사탄추종자들은 미쳐서 날뛰는데 우리는 그러한 권력도 시간도 힘도 없이 대안이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승리도 바빌론에 대안이 없었던 이스라엘의 승리와도 같습니다. 즉 집단적으로는 패배해도 각자의 승리로 나타날 것입니다. 집단인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잡혀 바빌론에 끌려갔지만 다니엘과 세친구는 그 안에서 승리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는 짐승의 표의 시대가 도래하면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빌론에 저항하던 이스라엘의 모습처럼 짐승의 표를 타협할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인내로 거부하는 승리를 이뤄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승리의 방식인 것입니다. 우리를 죽일 수는 있어도 각자의 마음안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세상의 권세는 사탄에게 있지만 내 마음의 권세는 오직 내게 있는 것이며, 누구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 마음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고,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위로를 알면 인내로 세상권력의 핍박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도 일루미나티를 싸워이길 수 없을 것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사람의 마음안에서는 일루미나티, 예수회가 철저하게 패배하는 것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너의 끝에는 소망이 있나니 네 자녀들이 그들 자신의 경계로 다시 오리라는 것이라. 17)
And there is hope in thine end, saith the LORD, that thy children shall come again to their own border. 17)
위 말씀에서 너의 끝에 소망이 있다는 것의 의미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7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므로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의 생의 끝에 소망이 있다는 의미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사명은 인생의 끝과 시작의 경계에서 그들의 자녀들에게로 이어져 사명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O 나는 에프라임이 이렇게 스스로 탄식함을 분명히 들었나니 "주께서 나를 징책하셨으니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책을 받았나이다. 주께서 나를 돌이켜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돌아가겠나이다. 이는 주께서 주 나의 하나님이심이니이다. 18)
I have surely heard Ephraim bemoaning himself thus; Thou hast chastised me, and I was chastised, as a bullock unaccustomed to the yoke: turn thou me, and I shall be turned; for thou art the LORD my God. 18)
bemoan ① 슬퍼하다(mourn) ② …을 슬퍼하다 ③ …을 가엾게 여기다
chastise 1.비난 2.질책 3.비판 4. 혼내주다 5.체벌
bullock 1.불깐 황소 2.쉴 새 없이 일하다 3.수송아지
unaccustomed ① (한정적) 보통이 아닌 ② 익숙지 않은 ③ 보기 드문 ④ 잘 알 수 없는
살아있다면 뒤늦은 후회라는 것이 없고, 기회를 잃어버린 회개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자들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저를 공격하는 것은 사탄이 아니라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자신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위 말씀에 나타난 에프라임은 주께 돌이키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자신이 돌이키는 것조차 스스로 하지못하니 그것까지도 기도하고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에게 쓰임을 받는 자들도 이런 기도를 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나 일루미나티의 회유와 자금을 받고 움직이는 자들이나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분명히 나는 회개하였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가 내 볼기를 쳤나이다. 내가 내 젊은 시절의 책망을 지녔기에 부끄럽고 정녕, 수치스러웠나이다." 하였느니라. 19)
Surely after that I was turned, I repented; and after that I was instructed, I smote upon my thigh: I was ashamed, yea, even confounded, because I did bear the reproach of my youth. 19)
thigh ① (사람의) 넓적다리 ② femur 2 ③ 대퇴부 ④ (동물의 뒷발의) 넓적다리(에 해당하는 부분)
confounded (완곡어) (한정적) 괘씸한, 고약한, 형편없는, 지독한; 싫은(damned)
reproach 책망[비난]하다, 나무라다, 질책하다
제가 지금의 사탄숭배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제가 지난 과거의 제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저를 공격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과거의 제 모습으로 보입니다.
회개의 대상은 지은 죄가 아니라 스스로로 사는 것입니다. 스스로 사는 것으로 우리는 죄라는 결과물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멈추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돌이킴은 아픔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탄숭배자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고통속에 넣고 괴로워하는데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하나뿐입니다.
마약으로 고통받은 사람은 마약을 끊는 것밖에는 답이 없는 것처럼 사탄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사람들은 사탄을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을 끊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의 방법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직 살아있다면 위 말씀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같은 처지인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선택이며, 천국과 지옥중 어느곳에 영원히 소속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당신입니다.
미련스럽게 끝까지 스스로 사는 길은 당신을 시드키야왕의 결말로 이끌고 갈것입니다. 그것이 이땅에서도 비참하게 살다가 지옥으로 향한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습니다.
에프라임이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냐? 그가 기뻐하는 자식이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한 이후로 아직도 그를 열렬히 기억하고 있도다. 그러므로 나의 창자가 그로 인하여 괴로우니 내가 그에게 반드시 자비를 베풀리라. 주가 말하노라. 20)
Is Ephraim my dear son? is he a pleasant child? for since I spake against him, I do earnestly remember him still: therefore my bowels ar troubled for him; I will surely have mercy upon him, saith the LORD. 20)
dear 친애하는, 사랑스러운, 귀여운, 매력적인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사랑스럽게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위 말씀처럼 당신을 돌아보실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많은 책망이 기록되어 있지만, 라헬의 우는 것과 같은 이스라엘의 고통은 하나님께도 그의 창자가 괴롭다고 여기시는 만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키는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자비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사탄과 달리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당신이 더 잘알고 있습니다.
너는 길 표지를 세우고 높은 무더기를 쌓으라. 대로를, 즉 네가 갔던 그 길을 향하여 네 마음을 두라. 오 처녀 이스라엘아, 나의 성읍들로 다시 돌이키라. 21)
Set thee up waymarks, make thee high heaps: set thine heart toward the highway, even the way which wentest: turn again, O virgin of Israel, turn again to these thy cities. 21)
길 표지를 세우고 높은 무더기를 쌓는 것과 우리가 갔던 그길을 향하여 마음을 두라는 말씀의 의미는 그들의 고난이 어디서왔고, 그들이 어떻게 돌이켜 다시 주안에 복으로 들어왔는 지를 기록하고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는 길 표지와 높은 무더기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눈앞에 성경말씀이 주어져 있습니다. 사탄 숭배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처럼 우리에게도 성경이 놓여져 있고, 그것을 읽고 주의 뜻을 아는 것과 방치하여 무지의 상태로 머물러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시험을 받는 마지막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이 불교건 부두교건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적용된 시험이었던 것처럼 고난에서 예외를 적용받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고난의 과정은 우리의 고난의 과정과 같음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는 것입니다.
고난은 끝이있고 회복이 있음을 잊지말고, 인내하고 서로 위로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진도 모임을 하면서 다음을 기약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번의 모임이라도 그것은 기억될 것이고, 그 기억이 고난의 기간에도 간직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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