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381)/ 그리스
테살로니카의 초기 기독교 및 비잔틴 기념물군
(Paleochristian and Byzantine Monuments of Thessalonika; 1988)
중부 마케도니아 지역[Region of Central Macedonia] 테살로니키 주[Prefecture of Thessaloniki]에 속하는 항구 도시 테살로니카는 기원전 315년에 건설된 주도이자 기독교 전파를 위한 초기 전초 기지 중 하나였다. 기독교 유적들 중에는 아름다운 교회들이 많으며, 어떤 것은 그리스 양식의 십자형 구조로 설계되었고, 어떤 것은 3랑(?)식 네이브(nave; 성당 한가운데의 중심 공간)을 가진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졌다. 4~15세기의 오랜 기간에 걸쳐 건축된 교회들은 비잔틴 시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역사적인 유형들을 형성하고 있다. 로툰다(rotunda; 원형 건물), 성 데메트리우스[St. Demetrius] 성당, 성 다비드[St. David] 성당의 모자이크는 초기 기독교 예술의 걸작이다.
테살로니카의 기독교 건축물은 4~15세기 동안에 중부식・바실리카 식・절충식으로 지어진 탁월한 사례로 각기 다른 방식의 건물들이 시리즈를 구성하며, 서로 비교할 만한 유형적인 특성을 지닌다. 테살로니카의 교회들은 비잔틴 제국에서 기념비적인 예술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나중에는 전기 중세의 초기 기독교 시대나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왕조인 팔라이올로고스 왕조의 부흥[Palaeologan renaissance] 시기에 세르비아 세계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로툰다, 성 데메트리우스 성당, 성 다비드 성당의 모자이크는 초기 기독교 예술의 걸작이다. 기원전 315년에 마케도니아의 왕 카산드로스(Kassandros; Cassander)는 알렉산드로스가 세운 도시들에 뒤이어 곧바로 자신의 아내 테살로니카(Thessalonika)의 이름을 따서 테살로니카를 건설했다. 로마가 마케도니아를 정복함에 따라 테살로니카는 제국의 주요 수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항구 도시 테살로니카는 로마 제국 시대에 상업적・전략적인 요충지로서 대도시로 성장했으며, 기독교 전파의 초기 기지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사도 바울이 50년에 이곳을 여행했으며, 56년에는 그가 세운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돌아왔다. 이곳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은 그가 쓴 편지에 나타나 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제국의 영광과 테살로니카 교회의 운명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갈레리우스(Galerius)의 궁전(298~311)이 세워지고 성 데메트리우스가 순교(303경)한 것도 이 시기이다. 갈레리우스가 그의 무덤으로 설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로툰다는 얼마 후 기독교도들에 의해 성 게오르그에게 바치는 교회로 바뀌었다. 기독교도들은 성 데메트리우스가 갇히고 고문당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광장의 북쪽 목욕탕의 폐허 위에 성 데메트리우스의 바실리카 교회를 지었다. 이 교회는 412~413년에 레온티우스(Leontius) 대주교에 의해 재건되었고, 629~634년에 5개의 회중석을 포함하는 원대한 계획에 따라 확장되었다. 1917년에 화재로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가장 탁월한 유적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고고학적으로 가치 있는 다른 교회들은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것들이다. 448년 이후에 지어진 ‘아케이로포이에토스(Acheiropoietos; ‘그리스도가 친히 만들어 준 것’이라는 뜻)’라 불리는 성모 바실리카[Basilica of the Virgin], 5세기 말이나 6세기 초에 지어진 성 다비드 교회, 그리고 특히 8세기에 그리스 양식의 십자형 구조로 설계되어 있으며 3랑식 네이브를 가진 바실리카 양식이 잘 조화된 성 소피아[St Sophia] 교회가 여기에 포함된다. 성 소피아 교회는 1205년의 라틴아메리카 정복이 있은 후에 테살로니카 대성당이 되었다. 1246년에 도시가 비잔티움으로 다시 넘어간 뒤에는 거룩한 사도 성 판텔레이몬[St Panteleimon] 교회, 성 니콜라스 오르파노스[St Nicholas Orphanos] 교회, 오늘날의 성 카트린[St Catherine] 교회 등 새로운 교회들이 들어섰다. 1430년 오스만 제국이 도시를 점령한 후에는 대부분의 교회가 모스크로 바뀌었고, 함자 베이 카미(Hamza Bey Cami; 1467~1468), 알라카 이마레트(Alaca Imaret; 1484)와 같은 새로운 이슬람 사원들이 들어섰다. 오스만 제국이 지배한(1430~1912) 시기에 테살로니카는 초기 기독교 시대에 누렸던 주요 대도시로서의 위상을 되찾았고, 특이 1492년 스페인에서 알함브라 칙령으로 20,000명의 유대인들이 쫓겨나 이곳에 정착한 뒤로 그 위상이 커졌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도시에 있는 수많은 기념물들은 이 도시의 문화적인 영향력과 그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 로베르 드 드로(Robert de Dreux; 1665), 에블리야 셀레비(Evliya Celebi; 1668), 파울 루카스(Paul Lucas; 1714), 펠릭스 보주르(Felix de Beaujour; 1797), 압둘 마지드(Abdul Mecid, Abdul Majid; 1858)와 같은 여행자들의 묘사에서도 이곳의 문화적 영향력이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