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부부상(夫婦像)
박재삼
흥부 부부가 박 덩이를 사이하고
가르기 전(前)에 건넨 웃음살을 헤아려 보라
금(金)이 문제리
황금(黃金) 벼 이삭이 문제리
웃음의 물살이 반짝이며 정갈하던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
없는 떡방아 소리도
있는 듯이 들어 내고
손발 닿은 처지끼리
같이 웃어 비추던 거울 면(面)들아.
웃다가 서로 불쌍해
서로 구슬을 나누었으리.
그러다 금시
절로 면(面)에 온 구슬까지를 서로 부끄리며
먼 물살이 가다가 소스라쳐 반짝이듯
서로 소스라쳐
본(本) 웃음 물살을 지었다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확실히 문제다.
(시집 『춘향이 마음』, 1962)
[작품해설]
이 시는 고전 소설 「흥부전」 가운데 훙부 부부가 박을 타기 직전의 상황을 인유(引喩)하여 가난으로 인한 한(恨)을 사랑으로 극복해 내는 서민들의 애환과 소박한 행복을 그린 작품이다. ‘인유’란 허구적이든 실제적이든 유명한 인물이나 고사, 문구 등을 끌어다가 의미를 보충하는 문학적 기교이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단순한 인유가 아니라, 인유의 형태를 이용한 일종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수 있다. 즉 물신 숭배에 젖어 있는 현대인들을 일깨우기 위한 의도하에 시인은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소박한 인간상으로 고전 소설 속 인물인 ‘흥부 부부’를 동원한 것이다.
1연에서 화자는 ‘박 덩이를 사이하고’ ‘흥부 부부’가 짓는 해맑은 웃음을 통해 이른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추구하는 서민들의 삶을 보여 준다. 그들은 ‘금’보다도 아니 ‘황금’만큼 귀중한 ‘벼 이삭’보다도 ‘박 덩이’가 좋은 이 땅의 가난하고 순박한 서민들이다. 그들이 박을 ‘가르기 전에’ 서로를 바라보며 짓던 행복한 그 웃음, ‘물살이 반짝이며 정갈하던’ 그 웃음이야말로 가난으로부터 그들을 구제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이를 시인은 ‘그것이 확실히 문제’라고 단정한다.
2연에서슨 화자는 가난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흥부 부부’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들 부부는 ‘없는 떡방아 소리도 . 있는 듯이 들어’ 주는 것은 물론, 언제나 마주보며 정답게 웃을을 짓는다. 상대방의 얼굴을 제 얼굴을 비춰보는 ‘거울’로 인식하고 있는 데서 그들의 깊은 신뢰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3연에서는 ‘흥부 부부’의 눈물과 웃음의 진정한 의미를 말한다. ‘구슬’은 눈물의 은유적 표현으로, 화자는 가난한 생활에 대한 ‘흥부 부부’의 한을 서로에 대한 연민에서 흘리는 눈물로 제시한다. 자신들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하다가 놀라서 다시 웃음을 짓는 흥부 부부의 슬기로운 모습을 통해 화자는 가난한 생활에서 오는 한을 극보하고자 하는 서민들의 애환을 표현한다. 이렇게 고통을 극복하고 난 후 찾아온 웃음이 ‘본 웃음’이다. 흥부 부부를 통해서 보듯, 가난한 삶으로 인한 한을 진정한 사랑으로 극복하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할 터인데, 시인은 이를 ‘그것은 확실히 문제다’ 라는 단정적인 어투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작가소개]
박재삼(朴在森)
1933년 일본 동경에서 출생하여 경상남도 삼천포에서 성장
고려대학교 국문과 중퇴
1953년 『문예』에 시조 「강물에서」가 추천되어 등단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정적(靜寂)」, 시조 「섭리(攝理)」가 추천되어 등단
1956년 제2회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1967년 문교부 문예상 수상
1977년 제9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2년 제7회 노산문학상 수상
1983년 제10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6년 중앙일보 시조대상 수상
1997년 사망
시집 : 『춘향이 마음』(1962),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밤』(1975), 『어린것들 옆에서』(1976), 『뜨거운 달』(1979), 『비듣는 가을나무』(1980), 『추억에서』(1983), 『아득하면 되리라』(1984), 『거기 누가 부르는가』(1984), 『간절한 소망』(1985), 『대관령 근처』(1985), 『찬란한 미지수』(1986), 『박재삼시집』(1987), 『사랑이여』(1987), 『가을 바다』(1987), 『바다위 별들이 하는 짓』(1987),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87), 『햇볕에 실린 곡조』(1989), 『해와 달의 궤적』(1990),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1991), 『허무에 갇혀』(1993), 『나는 아직도』(1994), 『다시 그리움으로』(1996),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1997), 『박재삼시선집』(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