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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억봉의 북사면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 도종환, 「산경」에서
▶ 산행일시 : 2023년 2월 11일(일), 오전에는 맑음, 오후에는 흐림
▶ 산행코스 : 미산리 미산약수교,한니동,절골,깃대봉,대골재,배달은산,1,410.1m봉,주억봉,구룡덕봉,매봉령,
2주차장,적가리골,방태산 자연휴양림,1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 17.5km
▶ 산행시간 : 6시간 27분
▶ 교 통 편 : 대성산악회(23명) 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20 - 복정역 1번 출구
09 : 00 - 홍천휴게소( ~ 09 : 16)
10 : 05 - 미산리(美山里) 미산약수교, 산행시작
10 : 21 - 한니동(寒泥洞), 절골
12 : 20 - 깃대봉(푯대봉, △1,435.6m)
12 : 29 - 1,420m봉, Y자 갈림길(왼쪽은 용포 7.8km, 오른쪽은 주억봉 3.5km), 휴식( ~ 12 : 35)
12 : 42 - 대골재
12 : 54 - 배달은산(1,415.0m)
13 : 05 - ┣자 개인산 갈림길
14 : 05 - 주억봉(主億峰, △1,445.7m)
14 : 11 - ┫자 갈림길(왼쪽은 방태산 자연휴양림 3.8km, 직진은 구룡덕봉 1.9km)
14 : 38 - 구룡덕봉(九龍德峰, 1,389.0m), 점심( ~ 14 : 52)
15 : 08 - ┣자 갈림길(오른쪽은 광원리 7.0km, 직진은 매봉령 0.8km)
15 : 20 - 매봉령
15 : 50 - 계곡 진입
16 : 15 - 방태산 자연휴양림, 2주차장
16 : 32 - 1주차장, 산행종료(17 : 15 - 버스 출발)
18 : 35 - 가평휴게소( ~ 18 : 45)
20 : 00 - 복정역
2. 방태산 지도
▶ 깃대봉(△1,435.6m)
날이 풀리자 나들이객이 부쩍 늘었다. 서울양양고속도로 남양주톨게이트부터 지나기가 힘겹다. 가다 서다는
서종IC를 지나고 나서 풀린다. 홍천휴게소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화장실은 남자용이고 여자용이고 전례 없
이 수십 미터나 길게 줄섰다. 아마 성급하게 봄 마중하러 가는 사람들이리라. 곰배령,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해파랑길 등지로 가는 사람들이다. 오늘 일기를 가늠하려고 휴게소 테라스에 나가 공작산을 바라보는데, 미세
먼지인지 연무인지 잔뜩 끼여 흐릿하다.
산행 조망은 일종의 도박이다. 오늘 일기예보에 오전에는 잠깐 맑을 거라고 했지만 좋은 조망을 기대하기는 어려
울 것 같다. 버스기사님의 분전으로 방태산 들머리인 미산리까지 선방했다. 10시를 조금 넘겼다. 산행대장님
안내말씀, 오늘 산행의 주력은 깃대봉, 배달은산, 주억봉, 방태산 자연휴양림 코스로 약 12km이며, 산행시간으로
6시간을 주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구룡덕봉까지 가려는 사람들을 배려한 것 같다. 30분을 더 주겠다고 한다. 산행
마감시간 16시 30분. 간단한 뒤풀이와 정리시간으로 30분을 감안하여, 버스는 17시에 출발하겠다고 한다.
주억봉에서 구룡덕봉을 휘돌아 내리면 도상 17.5km다. 버스출발시간까지 주어진 최대한의 산행시간은 7시간이
다. 바쁘다. 미산약수교를 건너자마자 버스는 더 가기 어렵다. 한니동 가는 언덕바지 노면이 블랙아이스 상태라
버스는 고사하고 걸어서 올라가기도 만만하지 않다. 한니동 절골 입구까지 1km를 갓길 눈을 밟거나 마른 노면을
골라 걷는다. 때 이르게 땀난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산굽이굽이 돌아 대개인동으로 가고 우리는 이정표 안내에
따라 계곡 건너 절골로 들어간다.
절골 초입의 계곡 옆에 한 그루 노거수가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나도밤나무라고 한다. 안내판에 이 나도밤
나무의 전설을 소개하며 율곡 선생이 심었다고 한다. 내 아직 모르긴 해도 그럴듯한 연유가 있으려니 하고 조사하
여 보았다.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나 율곡이 이 근처를 스쳐 지나간 기록만 있더라도 아무리 전설이라고 해도 그에
기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럴싸한 전설을 계명대 사학과 교수인 강판권이 2013.11.10.자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밤나무는 조상에 대한 공경의 표상’이란 글에서 찾았다.
“이이의 호 중 가장 유명한 율곡은 밤나무 골짜기를 의미한다. 율곡이란 호는 이원수가 결혼 후 신사임당과 약속
한 10년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하룻밤 머문 강릉 인근 주막 안주인과의 인연에서 비롯했다. 이원수
는 주막에서 안주인의 유혹을 물리친 뒤 강릉에서 아내와 달콤한 시간을 보냈고, 과거 시험을 보려고 서울로 갔
다. 그는 서울 가는 길에 다시 주막을 찾아 안주인과 하룻밤을 보내려 했지만, 이때는 안주인이 정색하면서 이원
수에게 “당신 부인의 몸속에 있는 아이가 태어날 시각이 인시이므로 일곱 살 정도에 호환(虎患)에 죽을 것입니
다”고 말했다. 이원수는 그 말에 깜짝 놀라 자식을 살리는 방법을 묻고 그 안주인이 시키는 대로 밤나무를 고향
파주의 화석정 주위에 심었다. 그 주막 안주인의 말대로 밤나무 1000그루를 심는 날, 이이가 태어났다.”
계곡 옆에 임도로 난 너른 길이다. 눈에 덮인 울퉁불퉁한 돌길을 선답의 산행표지기가 안내한다. 산행표지기는
계류를 징검다리로 건너고 가파른 바윗길을 오른다. 대부분의 일행들은 그리로 가고, 나는 꽁꽁 얼어붙은 계류를
건너지 못할 이유가 없어 바로 계류를 오른다. 얼마 안 가 임도가 다시 이어진다. 오른쪽 가파른 바윗길은 얼지 않
은 계류를 건널 수 없을 때의 등로였다. 그때는 계류가 깊었다. 내가 선두가 된다.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겨울이 가는 소리고 봄이 오는 소리다. 곳곳에 얼음장 가운데는 둥그렇
게 녹아 옥수를 담았다. 계류를 건너갔다 건너오기를 반복한다. 왼쪽 산비탈을 오르는 산행표지기를 보지만 그 주
변의 설원에는 아무런 인적이 없이 너무 조용하기에 그냥 지나치기 두 번이다. 어느덧 계류도 흐지부지 되고 차츰
가팔라지는 사면을 오른다. 몇 번 빙판과 설벽에 미끄덩하였다가 된통 엎어지고 나서야 아이젠을 맨다. 이렇게
부드럽게 오를 수 있는 눈길을 그예 힘들게 올랐다니.
가쁜 숨을 고르려고 가던 걸음 멈추고 온 길을 뒤돌아보는데, 차라리 보지 말 것을 보아버렸다. 홍천휴게소에서
공작산을 감싸던 연무는 걷히고 쾌청한 날씨다. 나뭇가지 사이로 골골 운해와 첩첩 산이 보이는 게 아닌가. 어서
가자. 조금 더 오르면 무제로 보이겠지 하고 오르고 또 오른다. 조망이 트일 만한 곳을 찾는다. 등로 벗어난 바위
에 다가간다. 눈은 깊고 잡목은 울창하다. 바지자락이 헐렁한데다 스패츠를 매지 않아 눈이 신발 속에 찬다. 그렇
지만 카메라 앵글 들이대는 가경이 그 값 이상이다.
아마 며칠 전일 선답의 인적은 산허리를 돌고 돌다가 대골재로 향하고, 나는 조망 쫒느라 깃대봉을 곧바로 오르는
인적을 놓치고 말았다. 일로직등. 아무도 가지 않은 설사면을 뚫는다. 내 뒤를 바짝 따라오던 두 분도 그랬다.
오지를 만들어 간다. 그러는 중에도 키 작은 나무 위로 머리 내밀어 첩첩 산 점입가경을 목도한다. 나 혼자라면
함부로 가겠지만, 뒤에 따라오는 일행이 있어 잡목과 덤불 성기고 눈 처마 비킨 데 고른다.
키 큰 나무도 키가 작아지도록 눈이 높이 쌓였다. 허리 잔뜩 구부려 주등로에 올라서고 왼쪽으로 방향 틀어 깃대
봉을 향한다. 며칠 전의 러셀에 내가 첫발자국 낸다. 그런데 깃대봉에는 우리 일행이 몇 명이 이미 올라 있다.
내가 곧장 대골재로 가려나 보다 하고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깃대봉. 삼각점은 1등이다. 현리 11, 1989 복구.
사방 조망이 아주 좋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는 깃대봉이 방태산의 주봉인 듯 표기하고 있다.
3. 홍천휴게소 테라스에서 바라본 공작산
4. 미산리 한니동 절골 입구의 나도밤나무
안내판에 쓴 율곡선생과 “나도 밤나무 전설”이다.
이율곡 산생의 부친이 율곡을 데리고 이곳을 지나다 주막에서 하루를 머무르게 되었는데 꿈에 노인이 나타나
“너의 아들의 수명이 길지 못하다” 말하고는 무서운 호랑이로 변하면서 “이 마을 뒷산에 1,000그루의 밤나무를
심고 떠나라” 하기에 몇일 동안 밤나무를 심었다. 어느 날 꿈에 호랑이 나타나서 밤나무를 세어 보자기에 세어보
니 999그루였다. “한 그루는 어디가 있느냐”고 호랑이 다그치기에 옆에 있던 상수리나무가 튀어 나오며 “나도 밤
나무”라고 외쳐 화를 면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이 밤나무 고목은 율곡 선생이 심은 밤나무라고 전해온다.
5. 깃대봉 오르는 도중에 뒤돌아본 조망, 멀리는 백암산, 소뿔산, 가마봉 연봉
6. 깃대봉 오르는 도중에 뒤돌아본 조망
7. 깃대봉에서 남쪽 조망
8. 멀리는 백암산, 소뿔산, 가마봉 연봉
9. 앞은 맹현봉
10. 깃대봉에서 남서쪽 조망
11. 멀리는 백암산, 소뿔산, 가마봉 연봉
12. 깃대봉에서 서쪽 조망
13. 설악산 대청봉, 그 앞은 점봉산
14. 왼쪽은 설악산 귀때기청봉, 오른쪽은 대청봉, 그 앞은 점봉산
▶ 주억봉(主億峰, △1,445.7m)
깃대봉에서는 설악산 연봉연릉이 잘 보이지 않지만, 주억봉을 향하여 완만한 능선길을 0.3km 내리면, Y자 갈림
길인 너른 공터 1,420m봉이 빼어난 경점으로 설악산의 장쾌한 서북주릉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또한 그 앞의
분칠한 가리봉과 점봉산은 기실 미봉이고 미산이다. Y자 갈림길 왼쪽은 용포 7.8km이고 오른쪽은 주억봉 3.5km
이다. 배낭 벗어놓고 이 가경을 바라보며 첫 휴식한다.
오지산행에서는 4년 전 봄날 용포 옆 내린천요양원에서 이 깃대봉을 오르고 주릉 주억봉과 구룡덕봉을 넘고 가칠
봉, 갈전곡봉을 넘어 구룡령으로 갔다. 도상 27.7km. 14시간 42분 걸렸다. 4년도 세월이라고 이제는 그 무게조차
감당하지 못하겠다. 우선 그럴 생각과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때 등로 주변에서 우리를 꽃술 흔들며 응원하던
(?) 기화이초들이 그립다.
김형수는 그의 등산길 안내서인 『韓國400山行記』에서 이 깃대봉(푯대봉이라고 함)을 방태산의 주봉으로 보고,
방태산 개관에서 ‘백두대간상의 갈전곡봉(葛田谷峰)에서 서쪽으로 갈라진 지맥에서 웅장하게 솟구친 거산이다.
동서(東西) 1,400m급 초원의 능선을 걸으면서 동해의 창파(滄波)와 설악의 위용(偉容) 등 태백준령을 바라보는
경관이 일품이고…’라고 한다. 과연 그러하다. 봉봉이 그러할 경점일 터이다.
우선 잡목 숲 벗어나 대골재로 내리는 돌길 덮은 눈길은 걸음걸음이 경점이다. 왼쪽 멀리는 설악 서북주릉이 오른
쪽 멀리는 오대산과 계방산 연릉이 특관이고, 가깝게는 배달은산과 그 뒤로 이어지는 주억봉이 숭엄한 겨울 산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옛 문헌에 방태산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산이라서가 아닐까? 절도 사람이 드나드는 곳일진대 절 또한 외면하는 산이다.
대골재 안부에서 바닥 치고 배달은산 오르는 능선은 바윗길이다. 수북이 쌓인 눈 헤쳐 바위모서리 움켜잡고 오르
기도 한다. 그리 차갑지 않은 눈이다. 때때로 뒤돌아보는 깃대봉의 동쪽 너른 설사면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배달
은산(‘배달은석’이라고도 한다)도 빼어난 경점이다. 먼 옛날 홍수 때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배를 묶어놓던 바위
가 있다고 한다. 릿지 닮은 바윗길을 살금살금 지나고 설원에 들어선다. 누군가 비닐에 싼 배달은산 종이 표지를
나무에 달아놓았다.
방태산 주릉은 눈이 깊다. 바람이 눈을 쓸어 모아놓은 데는 무릎을 넘는다. 한 사람 발자국으로 여러 사람들이
오갔다. 설원을 간다. 봄이면 환상적인 초원이었다. 오늘은 황량하다.
우리 일행 중 누가 구룡덕봉을 가려는지 알 수가 없다. 혹시 나만 가는 건 아닐까 하니 발걸음이 급해진다.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다. 깃대봉 아래 갈림길에서 첫 휴식할 때 찹쌀꽈배기로 요기한 게 전부다. 10분 남짓할 도시락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 비상식으로 준비한 인절미를 행동식(걸어가면서 먹는)으로 할까도 생각한다.
하늘 가린 숲 벗어나면 전후좌우로 가경이 펼쳐진다. 멀리 설산의 연릉 준봉도 시시각각 볼수록 새롭지만, 바로
눈앞에 펼쳐진 갖가지 나목 가득한 설원은 한 폭 그림이다. 금줄 넘어 주억봉 정상이다. 정상 표지목 말고도 표지
석도 있었다. 삼각점은 안내판에서 알아본다. 현리 434. 이 산의 모양이 주걱처럼 생겼다고 하여 주걱봉 또는
주억봉이라고 한다. 곧바로 구룡덕봉을 향한다. 주억봉은 물론 구룡덕봉은 방태산 자연휴양림에서 많은 사람들
이 오가서 눈길이 여태와는 다르게 반질반질하다.
15. 주억봉
16. 앞은 배달은산, 멀리는 오대산 연봉
17. 설악산 대청봉, 그 앞은 점봉산
18. 가리봉, 그 왼쪽 뒤는 안산
19. 배달은산, 왼쪽 멀리 뒤는 주억봉
20. 깃대봉 동쪽 사면
21. 깃대봉
22. 왼쪽 뒤가 주억봉
23. 침석봉 연릉, 그 뒤는 계방산
24. 개인산, 그 왼쪽 뒤는 오대산 호령봉, 멀리 가운데로 발왕산이 조금 보인다
25. 방태산 주릉 남쪽 지능선의 1,222.2m봉
26. 멀리 오른쪽은 가리봉
▶ 구룡덕봉(九龍德峰, 1,389.0m)
주억봉에서 구룡덕봉까지 2.3km다. 가파른 내리막 0.4km를 한 차례 쏟아지면 야트막한 ┫자 갈림길 안부다.
왼쪽은 방태산 자연휴양림 3.8km다. 구룡덕봉 눈길도 잘났다. 당분간 평탄한 등로다. 1,340m봉은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 넘는다. 시원한 바람이 인다. 줄달음하기 좋다. 구룡덕봉을 넘어오는 일행들을 만난다. 그들은 휴양림
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주억봉을 올랐다가 휴양림으로 하산하겠다고 한다. 나와 하산완료 시간이 비슷
할 것이다.
걸음마다 곁눈질하여 설악 서북주릉을 바라본다. 설악산군에서 굳이 아름답게 보이는 봉우리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가리봉을 들겠다. 귀때기청봉이나 대청봉, 점봉산은 밋밋한 모습이지만, 가리봉은 불꽃처럼 보이는 석화의
모습이다. 구룡덕봉. 이정표나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여기서 0.6km를 더 간 △1,389.0m봉을 구룡덕봉이
라고 하지만, 높이(1,395m)나 주변의 조망이나 산세 등 어느 모로 보더라도 여기가 구룡덕봉 정상이다.
데크전망대를 세 방향에서 볼 수 있도록 각각 설치하였다. 서쪽 방향에서는 주억봉과 맹현봉을, 남동쪽 방향에서
는 오대산 연봉과 계방산을, 북쪽 방향에서는 설악 서북주릉과 가칠봉, 갈적곡봉 등 백두대간을 보고 또 본다.
시설물 벽을 바람막이 삼아 자리 잡고 늦은 점심밥 먹는다. 반찬은 주위 가경이다. 이제 방태산 자연휴양림까지
줄곧 내리막이다. 계단 내려 임도를 0.9km 내리면 ┣자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임도로 광원리(7.0km) 간다.
직진하여 매봉령(0.8km)으로 내리는 능선 길이 상당히 가파르다. 어디선가 아이젠 왼발 한 짝을 잃어버렸다.
절음발이 되어 내린다. 설벽 슬랩이 나오면 아예 주저앉는다. 가칠봉과 갈전곡봉이 나무숲 사이로도 보이지 않게
되어 매봉령이다. 왜 매봉령일까? 여기서 1.5km 떨어진 북동쪽 능선의 준봉인 △1,252.8m봉이 매봉이지 않을까
한다. 그리로는 ‘탐방로 아님’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십여 미터 더 가보았다. 설원이 아무런 인적 없이 조용하
다. 내가 못 갈 바에는 남도 못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심하여 뒤돌아 매봉령을 내린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지능선 가파른 내리막 0.8km가 설벽의 연속이다. 처음 가는 길이다. 하도
자주 지그재그로 내리다 보니 어지럽기도 하다. 아이젠 한 짝이 없어 외발로 내리다시피 하니 발걸음이 더디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야단이다. 진땀난다. 언젠가 신가이버 님이 이곳 산행 중에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나가는 바람
에 더는 산행을 계속하지 못하고 이 매봉령에서 휴양림으로 탈출해야만 했다. 신가이버 님은 맨발로 이 가파르고
먼 길을 가야 했다. 그 고역이 오죽했을까 새삼 생각이 난다.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될 일이다. 왼쪽 등산화 끈이 한 개 고리에서 풀려 느슨해졌는데 거기에 오른발 아이젠
발톱이 걸렸다. 발을 뻗어 내리려다 미처 손쓸 틈 없이 엎어졌다. 얼굴 정면이 그대로 눈 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다친 곳이 없다. 만약 바위나 나무 그루터기에 처박혔으면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산행
중 위험했던 순간이 비단 오늘 뿐이 아니다. 이렇듯 무사한 것은 순전히 아내의 기도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계곡에 다다르고 가파름은 멎었다. 주억봉에서 오는 길과 만나고 등로는 대로다. 적가리골 계류는 얼음장 밑에서
봄을 맞이할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2주차장 지나고 차도다. 곳곳이 빙판이라 아이젠을 벗지 못한다. 방태산의
대표 명소인 이폭포도 겨울잠에 깨어나 기지개를 펴는 중이다. 1주차장이 산행종착지다. 산행 마감시간을 정확히
지켰다. 총무님이 산행 뒤풀이로 김치찌개와 소주를 마련하였다. 낯선 일행들이지만 이때만은 반가운 얼굴들이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아이젠을 내 뒤에 오는 일행이 주억봉 내리막에서 주워 왔는데, 그분과도 합석하여 술잔
나눈다.
27. 주억봉
28. 멀리 가운데는 태기산(?), 그 앞은 흥정산(?)
29. 가리봉
30. 귀때기청봉
31. 구룡덕봉에서 매봉령 지나 북쪽으로 휘어드는 능선과 △1,139.0m봉
32. 가리봉
33. 구룡덕봉에서 바라본 주억봉
34. 앞은 삼봉약수의 응복산, 멀리 뒤는 백두대간 응복산
35. 대청봉, 맨 왼쪽은 귀때기청봉
36. 멀리 왼쪽은 가칠봉과 갈전곡봉
37. 오대산 연봉, 왼쪽부터 상왕봉, 비로봉, 호령봉
38. 오대산 연봉, 왼쪽부터 두로봉, 상왕봉, 비로봉
39. 계방산, 앞 오른쪽은 개인산
첫댓글 겨울 서락이 반겨주는 심설의 방태산을 7시간만에 섭렵하시고 먹는 김치찌게가 각별하셨겠슴다. ㅎㅎ 아이젠도 찾으시고 ㅎ
요즘 가는 산마다 설산이고 한 조망합니다.
산행 후 한잔하면 서울 오기가 금방이더군요,^^
산을 오르며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하시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히 받아들여
산 내려와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뱡태산 조망이 대단합니다. 설악산 연릉이 삼삼하네요...
방태산에서 설악산을 보면 밋밋하여 한 달음에 귀청이고 대청이고 갈 것 같은데
거기를 가보면 맥을 못 추니.ㅋㅋ
앉아서 편하게 멋진 전망 구경합니다.
직접 가서 보시면 더 멋집니다.^^
올 겨울설산을 마음껏 즐기시네요,,,형님말씀대로 산은 겨울산입니다^^...덕순이가 없어서 탈이지만...
덕순이 찾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겨울 설산을 보기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