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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치는 이후 3개월 동안 13명의 환자에게 같은 치료를 시도해 모두 성공적인 효과를 거뒀다. 다음 해인 1949년 봄, 이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고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헨치와 켄달의 노력과 성공은 그 다음 해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보낸 영광스런 소식으로 보답을 받았다. 1950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부신피질 호르몬과 그 구조, 생물학적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헨치, 켄달, 라이히슈타인 공동 수상으로 결정됐다. 노벨상 역사상 업적에 대해 이렇게 빨리 수상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런데, 라이히슈타인은 누굴까? 폴란드 태생의 스위스 화학자인 라이히슈타인Tadeus Reichstein은 1936년에 부신피질에서 코르티손, ACTH 등의 호르몬을 분리해냈다. 1937년에 코르티코스테론corticosterone을 결정형으로 분리했는데 1mg 정도로 부신50~100g에 맞먹을 정도로 활성이 강했다. 라이히슈타인은 대서양 건너편에서 부신피질 호르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이었다.
진화하는 코르티손
사렛이 고안해낸 부신피질 호르몬 즉, 코르티손cortisone 생산법은 부신 대신 담즙을 원료로 이용하는 획기적 방법이었지만 단점도 있었다. 무려 36단계의 복잡한 공정이 필요했는데 다른 말로 하면 돈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코르티손 1g 가격은 무려 200달러에 달했다. 1950년대 초반 맥도날드 햄버거의 가격은 15센트였다. 코르티손 1g으로 햄버거 13,333개를 먹을 수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프레드니솔론 5mg 알약은 의료보험 고시가격으로 15원 정도니 1g 가격으로 환산해보면 대략 3,000원 정도. 맥도날드 햄버거 한 개를 먹는 가격과 비슷하다. 당시 가격을 오늘날의 물가로 추론해보면 햄버거 13,333개 가격은 40,000,000원! 정말 비싼 약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코르티손이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비싼 약이었다. 이제 어렵게 찾아낸 이 약을 누가 더 싸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가장 먼저 도전장을 내민 곳은 멕시코 제약사 신택스Syntax였다. 신택스의 러셀마커Russell Marker는 멕시코에서 나는 참마(痲)의 일종인 ‘디오스코리아Dioscorea’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디오스게닌Diosgenin으로부터 4단계 공정을 거쳐 프로제스테론progesteron을 합성해, 먹는 피임약oral pill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에스트로젠도 일종의 스테로이드였기에 연구팀은 이 공정을 이용해 훨씬 간편하면서도 저렴한 방법으로 코르티손을 생산했다. 덕분에 1951년 코르티손의 시장가격은 1/33의 가격인 1g당 6달러로 하락했다. 선두주자였던 머크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또 다른 제약사 업존Upjohn은 더욱 놀라운 추격을 벌였다.
‘리조푸스 니그리칸스Rhizopus nigricans’이라는 곰팡이를 이용해 프로제스테론을 코르티손으로 바꾸는 공정은 더 앞서나간 방식이었다. 1952년에 업존의 제품이 출시되자 이번에는 신택스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업존은 자신들의 제조방식을 포기하고 신택스의 프로제스테론을 구입해 사용하기로 했고, 신택스는 그나마 여기에서 위안을 얻어야 했다.
켄달:부신→추출물;수득률이 너무 낮아(얻기가 너무 힘들다)
샤렛(머크 사):담즙 →합성;공정 과정 복잡해 너무 비싸
마커(신택스 사):참마→프로제스트론→코르티솔;저렴
업존 사:곰팡이;더더욱 저렴
최후의 승자가 된 업존은 1953년에는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산 코르티솔cortisol과 동일한 성분인 하이드로코르티손hydrocortisone을 시장에 내놓았다. 잠깐 정리하면, 우리 몸에서 만들어내는 것은 코르티솔이고, 제약사에서 만드는 것은 코르티손이다. 코르티손이 몸속에 들어가면 코르티솔로 변해서 약효를 내는 것이다. 실제로 체내에서는 코르티솔이 코르티손으로, 코르티손이 코르티솔로 변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아주 복잡한 풍경이 보이는데, 이 물질들이 죄다 부신 피질에서 만들어져 변모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화살표들이 일방으로 있기도 하지만 쌍방으로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955년에 또 다른 제약사 세링Shering은 코르티손을 발효시켜, 효과는 강하고 부작용은 약하게 만든 프레드니솔론prednisolone과 프레드니손prednisone을 출시했다. 잇달아 다양한 스테로이드가 시장에 등장했는데, 지금도 환자에게 처방되는 스테로이드 약물이다. 뿐만 아니다. 효소의 공격에 대한 높은 저항성으로 잘 분해되지 않는 메틸프레드니솔론methylprednisolone, 몸속에 수분과 염(鹽)을 적체시키는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기립성 저혈압에 사용할 수 있는 플루오르코르티손fluorocortisone, 그리고 이것의 변형품인 트리암시놀론triamcinolone, 그 뒤를 따라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스테로이드인 덱사메타손dexamethasone과 베타메타손bethamethasone이 탄생했다. 이들은 너무 강한 부작용 때문에 주사로만 사용하는 트리암시놀론보다는 부작용이 적었다.
1972년과 1974년에 흡입용과 스프레이용 스테로이드인 베크로메타존becromethasone이 등장해 알레르기성 비염치료제(리노코트Rhinocort)로 사용됐으며 트리암시놀론 변형품인 흡인용 부데소니드budesonide(Pulmicort)도 출시돼 천식환자에게도 사용됐다. 천식 환자들이 사용하는 흡입용 스테로이드는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해져, 이제는 천식환자의 상징물이 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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