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과모임에 참가한 세혁을 향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단순히 놀고,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였기에 애인이나 친구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많은 뉴 페이스들 중에서도 세혁의 외모는 단연 돋보였다.
여자들은 선망의 눈길로 세혁을 바라보았고,
남자들은 시기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나연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영준과 희진이 퍼트린 소문만 일방적으로 믿고,
은근히 자신을 따돌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다만 자신을 바라보는 영준과 희진의 시선은 더욱 안 좋아졌지만 말이다.
“학생이에요?”
“아닙니다. 대학로에서 연극하고 있어요. 뭐, 배우 지망생이라고 할 수 있죠.”
“정말요? 저 연극 보러 가는 거 좋아하는데 보러가도 되요?”
“물론이죠.”
“키가 상당히 커 보이는데 몇이세요?”
“백 팔십 좀 넘어요.”
“어머, 어머! 진짜 크다.”
세혁은 자신에게 여러 질문을 퍼붓는 사람들에게 시종일간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기분 좋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런 세혁 때문에 모임 분위기는 더욱 밝아졌고, 화기애애해졌다.
그런데 그때 좋은 분위기를 일순간 망쳐버리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나연의 옛 애인 김영준이었다.
“한나연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사귀는 거야?”
말 반 토막은 어디다가 잘라 먹었는지 반말로 물으며 비웃음을 짓는 영준의 말에
모임 장소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동시에 침묵했다.
하지만 세혁은 그런 영준의 태도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느긋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부. 다 마음에 드는데?”
그리고는 자신보다 나이가 두 살이 많은 영준에게 똑같이 반말로 대답하는 세혁이었다.
“너 이 새끼! 어따 대고 반말이야?”
“난 그 사람의 인격을 보고 나이를 판단하거든. 인격으로만 따지면 그쪽이 나보다 더 어린것 같은데.
여자 보는 눈도 나보다 낮고.”
영준의 옆에 앉아있는 희진 쪽을 바라보며 세혁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 세혁의 말에 기분이 단단히 상했는지, 영준은 의자를 발로 걷어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 이 새끼! 당장 밖으로 따라…….”
“그만해!”
영준의 말은 그대로 막히고 말았다.
벌떡 일어나서 매서운 눈길로 노려보며 외치는 나연의 말에 영준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세혁아, 그만 가자. 먼저 실례할게요.”
세혁을 향해 먼저 말을 꺼낸 말을 꺼낸 나연이 과 사람들을 보며 말을 하자,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넨 나연은 바쁘게 모임장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그런 나연의 뒤를 빠르게 따라나서는 세혁이었다.
뒤도 안돌아보고 앞만 보고 걸어가던 나연은 갑자기 자신의 팔을 붙잡는
세혁의 손길에 걸음을 멈추었다.
“화났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오는 세혁의 말에 나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그래?”
살짝 한숨을 내쉬며 여전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오는 세혁이었다.
“……창피해서.”
"뭐가?"
“그런 인간이 내 애인이었다는 게 많이 창피해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하는 나연의 말에 세혁은 입가에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좀 많이 창피해야겠더라.”
깊게 보조개가 패게 웃는 세혁의 미소가 싱그러웠다.
참 묘한 매력이 있는 웃음이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헛똑똑이야, 너는. 정말 남자 보는 눈도 없고.”
“나도 알아. 그래도 그 사람……예전엔 지금처럼 별로인 남자는 아니었어.”
처음 사귈 때 영준의 모습을 회상하며,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는 표정으로
조용히 중얼거리는 나연이었다.
“아, 이상하게 기분 별로다.”
혼자 옛 생각에 빠져있던 나연은 갑자기 귓가에 들리는 세혁의 목소리에 서둘러
혼자만의 추억에서 벗어났다.
“한나연.”
나연은 자신을 부르는 세혁의 목소리에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술이나 한잔 할래? 저기서.”
나연은 자연스럽게 세혁의 손가락을 따라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학교 근처에 있는 공원이 나연의 눈에 들어왔다.
“저기서?”
깜짝 놀라 반문하는 나연을 향해 세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에서 캔 맥주 사가지고 가서 간단하게 한잔 하자. 날씨도 너무 좋고,
풍경도 좋은게 술맛 팍팍 나겠는데?”
씩 웃으며 하는 세혁의 말에 나연은 머릿속으로 공원에서 술 마시는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푸릇푸릇한 풀 향기와 함께 마시는 맥주라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절로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때, 좋아?”
세혁의 물음에 나연은 한 치에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
상상보다 현실은 더욱 좋았다.
코끝을 간질이는 풀 향기가, 머릿결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그리고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한 캔 맥주가 함께 어우러지니 너무 좋았다.
그리고 세혁과 함께 나누는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에,
즐거웠던 그때 추억이 떠오르며 더욱 흥이 나는 나연이었다.
“그거 기억나? 졸업식 날 우리 반만 타임캡슐 묻었던 거.”
세혁의 말에 나연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타임캡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학교에서 제일 오래 된 느티나무 아래에 묻었던 그 타임캡슐이.
십년이 지난 후, 함께 모여 열어보자 약속했던 그 타임캡슐이 이제야 생각이 났다.
각자 소원을 적기로 했었는데, 사실 어떤 소원을 적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거 봐, 이거 봐. 잊고 있었지?”
타임캡슐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나연을 바라보며 세혁이 뻔하다는 눈초리를
보내며 물었다.
“응. 너무 바쁘게 살았나 봐. 몇 년 전까진 분명 기억하고 있었는데. 대학 오고 나서 완전히 잊어버렸네.”
“연애하느냐고 바빠서 까먹은 거지?”
“아니야, 그런 건.”
“아, 서운하다. 나는 사실 그 날만 기대했었거든. 다시 타임캡슐을 열기로 한 날 머리 좋은 너는 꼭 나올 거라면서,
다시 만날 거라고 얼마나 기대했는지 몰라. 그런데 뭐야? 이렇게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나 완전 바람 맞을 뻔 했네?”
“치, 하여튼 거짓말도 잘해요. 그나저나 난 왜 기억이 안 나지. 내가 무슨 소원 적었는지 모르겠어.”
기억해내려고 애쓰는 표정을 지으며 하는 나연의 말에 세혁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간절한 소원이 아니었나보지. 난 내 소원 뭐였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세혁의 말에 나연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래서 그렇게 기억 잘 나는 간절한 소원은 이뤘어?”
“글쎄.”
또 알 수 없는 묘한 미소가 세혁의 입가에 걸렸다.
“대답이 애매하네.”
“아직 잘 모르겠거든. 소원을 이룬 건지, 못 이룬 건지. 어쨌든 중요한 건 그 소원을 위해
내가 무지 노력하고 있다는 거지.”
공원 벤치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세혁의 모습은
더욱 반짝여보였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보다 더 크고 예쁘게 반짝였다.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이 더 멋져보여서 그런 걸까?
너무 반짝여서 이상하게 그의 모습에 자꾸 눈이 부신 나연이었다.
꿈도 없고, 간절하게 바라는 것도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겨우 사랑 하나 잃었다고 이렇게 빌빌 거리고 있는 게 무척이나 한심하게 느껴졌고.
“갑자기 마구 우울해진다. 짠! 건배하고 술이나 마시자.”
자신의 캔 맥주를 세혁의 캔 맥주에 살짝 부딪치고는, 나연은 한 모금 깊게 술을 마셨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미 깜깜해진 밤하늘엔 드문드문 반짝이는 별들이 보였다.
정말 간만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영준에게 그렇게 차이고 나서는 이렇게 하늘 볼 여유조차 잃었던 자신이었으니까.
그렇게 한참동안 눈도 잘 깜박이지 않은 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의 귀에 이어폰 하나가 꽂히는 게 느껴졌다.
깜짝 놀라 세혁 쪽을 바라보자 그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연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풍경, 좋은 사람, 그리고 멋진 음악까지 함께 한다면 더 좋잖아.”
예쁜 보조개 웃음을 선보이며 하는 세혁의 말에 나연 역시 예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또 아무 말 없이 음악을 감상하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을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너무나 익숙한 그 음악에 나연은 왈칵 울음을 쏟아냈다.
참으려고, 세혁의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해보았지만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바보 같은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조, 좋아해.]
수줍었던 영준의 고백과 함께 그리고 자신을 향해 수줍게 입을 맞추던
그와 자신의 첫 키스의 장면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Now and forever, 너무나 유명한 그 팝송으로 자신에게 마음을 전했던 영준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어폰에서 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었기에, 이제는 너무 큰 아픔이 되어버린 기억.
그 기억이 나연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자극해 바보처럼 울게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울면 지는 거란 생각에 영준에게 차인 이후 애써 눈물을 꾹 참았는데,
기억을 떠올리는 노래 앞에서 자존심마저 무너지고 있었다.
“나연아. 왜 그래?”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나연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묻는 세혁이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불러줬던 노래야.”
흐느낌에 떨리는 목소리로 나연은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런 나연의 말에 당황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세혁은 천천히 자신의 품에 나연을 안았다.
그렇게 세혁의 따뜻한 품에 안겨서도 나연은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억눌렀던 눈물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쉽게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나연의 등을 가만히 토닥이던 세혁이 낮은 목소리로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낮고 감미로운 그 노랫소리에 자신의 등을 토닥여주는 그의 손길에
나연의 눈물은 서서히 잠재워지고 있었다.
아팠던 마음이 따뜻한 무언가로 감싸지는 기분이 들었다.
김영준이 불러주었던 그 특별했던 노래보다 세혁이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불러주는
지금 이 노래가 더욱 특별해지고 있었다.
아픈 기억이 새로운 기억으로 덧 붙여져 그렇게 천천히 상처가 치유되고 있었다.
윤세혁이라는 한 사람으로 인해.
##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랴부랴 3편 써서 올립니다.
톡톡 튀는 소설이 아니라서, 지루한 면도 많을 텐데요
너무 많이들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힘내서 정말 열심히 쓸게요!
덧글로 힘 파바바박 주신 울 예쁜 독자마마님들!
♡이젠굿바이s님, Benjamin님, SkyWkd님, 모나햄님, 푸히히힉님, 승준사랑님,
냥이ⓥ님, jj♡sy님, 텔레토비왕팬님, 톡톡달콤님, 토순리님, 친절한냐뇽잉.님,
서랍속향기님, 허소류님, 늘꽃님, 개미퍼먹어ㅗ님, 졸려 ㅠ_ㅜsla, 향보기님,
소설잉좋아♥님, 저ㅐㅑㄹㅇ미님, 돈이좋아님, 너에게속았다님, 메르헨♡님,
햄쑤터님, 사랑LOVE아이님, 나는푼수님, 옹ㅇ님, 긴미움님, 푸른아그별님,
덜렁쿵이님, ol현정님, story가 조아님, 도야지야님♥
너무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힘주셔서 힘 완전 많이 납니다!
그럼 내일 또 소설 올릴게요.
모두 좋은 밤 되세요!
첫댓글 하핫제가일빤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히히히히히넘조아요 세혁이멋져
세혁이내이상형 ㅠㅠㅠ! 성실연재해주세요~ 궁금해요 그 뒷이야기가 ㅋㅋㅋㅋㅋㅋㅋ
세혁이가 타임캡슐에 써 넣은 소원 왠지 알거같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어요!! 둘이 계약연애 도중에 타입캡슐도 찾으러 갔으면 좋겠네요ㅋㅋ 타입캡슐로 또 엮어지고ㅋㅋ 작가님 글 잘 쓰세요~!
아 소설읽는내내 설레였어여 ㅋㅋㅋㅋ 세혁이 왜케멋진거야잉 ㅋㅋㅋㅋㅋ
ㅠㅠㅠ우아아아앙 진짜머싱네영!!ㅋㅋㅋㅋ진짜소원 알것같음 ㅋㅋㅋ
앗. 멋있다 ㅠㅠ
흔한 소재인 만큼 탄탄한 내용으로 다져지면 더 훌륭해지는 법이죠!! 너무 재밌어요~~ 아 이 소설이 완결까지 다나와있다면 편수불문하고 날밤새서 다읽을듯 하네요.. 간질간질하는 이런 로맨틱넘 좋아요~~ 빨리빨리 다음편원츄!!
세혁이가 넘 맘에 드네요.ㅎ
너무 로맨틱해요..ㅠ 이런 남자 어디 없을까요??ㅋㅋ
꺄아악~세혁이 넘 멋있어요!!
세혁이 너무 멋잇어요ㅠ.ㅠ.........진짜 짱이에요 타임캡슐에 음....왠지 알거 같은 소원?ㅋㅋ
세혁이 정말 멌있어요 여주랑 잘돼면 좋겠어요
후후저는이렇게잔잔한소설이좋드라구요..^^세혁이소원어쩐지삘이꽂히는데요?ㅎㅎ잘보고갑니다~
꺆!꺆! 너무재밌어요!
우와 재밌어요!!! 담편 마구마구 기대 *^^*
세혁이 완전 멋있어요 ㅠㅠ 어쩜 저리도 매너남일까요 ㅠㅠ 쵝오 쵝오 !
너무재밋어요~!
잘봤어요...동창에간 세혁이 거기도 아주 인기가 많군요..그런데 거기서 나연이 전 남자친구를 만나게되었지만 비꼬뜻이 말을하는 남자.....나연이는 친구들한데 미안하다고하고 나가는군요....밖엔나온 나연이 세혁이가 자신때문에 화가 난것같아서 물어보는데...자신이 저런 남자만나게 정말 후회한닫고하는데...그말들은 세혁이 고우언에가서 술마시며 에전 이야기하는데 그 타임캡슐 세혁기 소원이뭘까요...혹시 나연이 이야기쓴건가.....다음편도
세혁이짱이에요~~~~짱멋잇음 ㅠ.ㅠ 잘보고가요담편ㄱㅣ대!
하하하- 재밌네-_-
유후~!
재밌다재밌다><
세혁이 멋지당..ㅋㅋ
이런...너무 멋져 ㅠ ㅜ ㅋ
재밌어요 재밌엉..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