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세계에는 합리적인 인간이 산다. 합리적인 개인이라는 가정이 없이는 경제이론을 세울 수가 없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유감스럽게도 경제학 이론에 봉사하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 위험에 관한 한, 현실의 인간은 자기의 이해관계를 그리 훌륭하게 판단하지 못한다.개인에게는 삶의 위험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인간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사회보험은 국가의 개입을 통해 '개인의 실패'를 바로잡는 제도이며, 건강한 이가 병든 이를 , 잘 버는 시민이 그렇지 못한 이웃을 돕는 아름다운 사회적 연대를 내포한다......실패는 개인과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과 시장의 실패를 바로 잡으려는 국가의 노력 또한 실패할 수 있다. 국가 또한 인간이 꾸리는 것, 인간이 하는 일이 어찌 실패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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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는 진실이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에게 그렇다. 개인에게 옳은 것이 사회전체에도 언제나 옳다는 법은 없다................내가 무언가를 지출해야 다른 누군가가 소득을 얻을 수 있고, 다른 누군가가 지출을 해야 내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지출을 줄이면 그야말로 되는 장사가 하나도 없게 된다.........이렇게 되면 저축이라는 누출은 많아지고 투자라는 주입은 줄어 수조의 물이 마르고 국민들은 가난해진다...........저축이 개인적으로는 언제나 미덕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심각한 악덕이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걸 이해하면 여러가지가 보인다. 예컨대 1998년 봄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는 상암동 월드컵 축구전용구장 건설을 반대하면서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판국에 정부가 흥청망청 돈을 써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이건 현명한 개인들이 저지르는 저축이라는 '사회적 악덕'을 상쇄하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지출을 늘려야 할 국가더러, 민간가계와 똑같이 행동함으로써 그 악덕을 부채질하라고 주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 때로는 이처럼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
또 하나의 예가 국산품 애용이다. 사실 국산품 애용이라는 구호는 국내기업이 품질이 변변찮은 상품을 비싼 값에 팔아 배를 불리는 데 매우 유용한 이데올로기다. 제한된 소득으로 최대의 만족을 추구하는 경제인이 더 싸고 품질 좋은 수입품을 외면한다는 건 불합리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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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분배의 불균등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는 재능의 불평등이다.....둘째는 기회의 불균등이다......세째는 상속이다.......넷째는 차별이다......다섯째는 우연이다.........
시장은 이 모든 차이를 무시하고 오로지 기여도에 따라 보상한다. 이것을 정당화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모든 사람이 경쟁에 참여할 기회를 가져야 하며 출발선이 같아야 한다. 둘째, 모든 사람이 규칙을 지키면서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사회구성원들이 대부분 같은 조건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고 믿는다면 그 결과에 따른 소득분배의 정당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헌법과 법률이 있는한 완전하게 평등한 조건에서 출발하는 공정한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균등하지 못한 소득분배는 곧 정의롭지 않은 소득분배로 간주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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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는 공짜가 없다. 거래되는 모든 것에는 값이 매겨지고, 귀중한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남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아 손해를 주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시장에서 통용되는 '등가교환의 원칙'이다.
하지만 어디서나 원칙이 있으면 예외도 있는 법. 우리는 때로 어떤 사람이 한 일 덕분에 대가를 치르지 않고 큰 이익을 얻는다. 반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엄청한 손해를 끼쳤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경제학에서는 '외부효과'라고 한다. 어떤 사람의 행위가 시장을 통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 이익이나 손해를 주는 현상이다.....그런데 새만금사업은 외부효과가 큰 문제가 된다....새만금 사업과 관련하여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고 또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사실은 자연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효과로 인한 시장의 실패를 국가는 기껏해야 부분적으로 교정할 수 있을 뿐이다. 국가는 예측하기 어려운 규모의 환경 파괴를 동반하는 사업에서는 최대한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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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해저드는 일국적인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한 골칫거리다. 사회적 분업과 상호의존성이라는 면에서 '세계화된 세계경제'역시 하나의 고등동물이다. 한국이 경제위기에 빠지면 뉴질랜드의 신문용지 공장이 도산을 하고 아시아 위기가 깊어지면 미국의 사치품 제조업체가 휘정거린다. .....고등동물은 손가락 하나만 잘려도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아니 죽지 않아도 최소한 몸 전체가 통증을 느낀다....그러니 세계경제의 손가락 하나에 종기가 생기면, IMF가 나서서 응급처방을 하고 고름을 빼고 붕대를 감아준다.물론 그렇게 해서 손가락이 멀쩡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당분간 견딜 만해지는 것은 사실이다....시장경제의 가장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가 '자기 책임의 원리'다. 시장은 위험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경쟁 무대이고, 이 경쟁에 참가하는 자는 자기가 한 선택의 결과에 대해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를 도모하는 모럴 해저드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사회전체로 보면'자기책임의 원리'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모럴해저드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제도적 보완을 통해서만 완화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국제금융시장의 투기꾼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제인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합리적인 행동'을 했을 뿐이다.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은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이다. 경제학자들은 모럴해저드 현상이 경제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일상적으로 표출되고 있는데도 강의실에서는 여전히 "각자가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면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경우보다 더 잘 사회적 공동선이 이루어진다"는 조화론적 세계관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