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야 짬을 조금 냈습니다.
지난달 31일 아침 10시 42분쯤, 저는 독짱 형님 차에서 내려 오피스텔에 들어섰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겁을 하고 쓰러지고 맙니다. 지갑에서 카드 키를 찾는데 보이질 않는 겁니다. 몇 번이나 뒤지고 훑고 생 xx을 합니다만 결국 카드 키는 나오지 않습니다.
전날 야간 산행 때 손 전화는 다 방전돼 경비실에 내려가 열쇠집 아저씨께 전화합니다. 왈 "번호를 입력해 놓지 않았으면 기계를 뜯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만 수십 만 원 들었던 카드 키입니다. 광주에 내려가신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택배로 보내 달라 합니다. 순진한 어머니는 택배 회사에 카드 보내려고 한다고 얘기를 하신 모양입니다. 10분 후 확인전화를 했더니 택배회사에서 맡을 수 없다고 했다는 겁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분명 내 잘못인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잠이나 자자. 독짱 형 차안에서 정말 정신없이 졸았는데 웬걸 뜨거운 물에 몸 담그니 정신이 영 말짱해지는 겁니다. 오후 1시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나와 다시 경비실에서 광주로 전화를 넣습니다. 어머니는 내일 아침에 택배회사에서 오기로 했다는 겁니다. 아이쿠 그냥 내가 가자. 오늘 밤 어디 가서 신세 지거나 모텔가서 자고 내일 어머니가 부친 카드 전달받으면 그만이지만, 그래 오랜만에 광주에 내려가자 이런 생각을 한 겁니다.
어찌 어찌해 약 4시간 반만에 고향 집 안방에 누웠습니다. 어머니는 너 얼마나 황당했니? 하시면서 저를 나무라기 보다는 제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위로부터 하는 겁니다. 이런 불효 막심한 놈이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어머니는 며칠 전 끓인 오리탕이 있었는데 점심때 많이 드셨다며 제가 조금만 일찍 전화했으면 오리탕을 더 많이 남겨 놓았을 텐데 하시는 겁니다. 정말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아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아내와는 질적으로 다른 애정, 전면적으로 다른 각도의 잔정에 가슴이 짠해집니다. 제가 딸애에게도 같은 사랑, 무한대의 애정, 측량 어려운 애정을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렇지 못할 거라는 판단입니다.
하룻밤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으며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으나 새벽에 누군가 제 발을 밟아 또 저는 버럭 신경질부터 부립니다. 어머니입니다.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는 어떤 물체가 보이더라도 이를 피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는 성질부터 부리고 보는 겁니다. 어머니는 어제 밤 빨래한 제 옷이 잘 마르고 있는지, 선풍기 각도를 조정하며 양말에 수건 등을 덧대 열심히 주무르면서 마르기만을 기원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잠 좀 자자고 화부터 냅니다. 착한 아들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몇 시간도 안돼 날아가 버린 겁니다.
월요일 아침 고속열차 편으로 올라오면서 지난 주말을 돌아봅니다.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표현이 어울릴까요. 29일의 수락산 나홀로 산행과 번개팅 얘기는 잠깐 뒤로 밀치고 30일 야간산행부터 얘기 보따리를 풀도록 하지요.
보지 못하는 자와 보는 자가 같지 아니하며
약속 시간인 오후 9시 15분 4호선 종점 당고개역에서 재로와 마주합니다. 준비물을 서로 점검하고 제가 의견을 묻습니다. 어제 나홀로 산행에서 덕능고개 코스를 점검했는데 한밤중이라 자신이 없다, 조금 더 쉬운 길로 가자고 말입니다. 단점은 둘 다 초행길이라는 점인데 그래도 자칫 위험할 수 있는 낭떠러지가 있는 덕능고개 보다는 낫다는 판단에 재로도 오케이.
당고개역 바로 뒤 빌라촌에서 학림사 표지판을 보고 산으로 붙는 가파른 고갯길을 오릅니다. 습기가 가득 차 무척 땀이 많이 나옵니다. 7분쯤 올랐을까 방범초소가 나와 왼쪽으로 붙어 8분쯤 올랐을까 학림사와 마주합니다. 생각보다 절 집이 크고 역사도 깊습니다. 전날 우연히 이곳 수락산에서 마주쳤던 홍순섭씨가 쓴 책 '실전 명산 순례 700선'을 보니 학림사 노송이 아름답다는 글을 나중에 보게 됩니다.
역에서 절까지 넉넉 잡고 20분쯤 걸릴 터인데 상당히 가파라 숨소리가 거칠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절 오른쪽 산행로를 들어서는데 달 없는 그믐 밤인데도 전혀 랜턴을 켤 필요가 없습니다. 10분도 못 걸었는데 벌써 안부, 389m 지점입니다. 여기서 재로 눈 앞에 펼쳐지는 수락의 야트막한 산줄기가 퍽 아름답다는 말을 전합니다. 습기가 가득 차 산줄기가 그리 선명하게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만, 오히려 적당히 감춰짐으로써 그 존재감을 넉넉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떤 카메라로도 이 온전한 아름다움을 그려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얼마 전까지 재미있게 읽었던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 잃었던 꾸란-본디 코란이라고 많이들 쓰는데 이슬람권 현지에선 이렇게 발음한답니다-의 한 구절, 이 떠오릅니다.
'보지 못하는 자와 보는 자가 같지 아니하며'
이날 산행 내내 저는 숨을 가다듬을 때마다 이 구절을 되뇌곤 했습니다.
그리고 바윗길, 나중에 책을 보니 상어바위,탱크바위 등의 이름을 갖고 있는 제법 엄연한 암릉지대더군요. 동양 수묵화의 한 장면처럼 함초롬히 앉아있는 도솔봉 정상을 놓치고-무척 위험한 줄 알고 지레 피했는데- 암릉지대를 타고 넘습니다. 재로는 여기서부터 계속 "이 산 마음에 드네"를 연발합니다. 도봉산처럼 위험하지는 않고 제법 가파르고 적당히 요산인의 마음을 바짝 타게 하는 긴장감을 강제합니다. 그렇게 암릉과 씨름하고나니 어느 새 정상, 이날 밤 산행 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10여명의 아줌마 아자씨 팀과 함께 쉽니다. 흐르는 땀이 보통 아닙니다. 재로는 "낮에는 오죽할까" 하는데 제 판단은 "낮이나 밤이나 힘들고 어려운 건 마찬가지네" 였습니다.
제가 어둠을 틈타 습관적으로 또 웃통을 벗었는데 앞의 팀 아줌마가 두명의 아자씨와 함께 저희 쪽으로 와 랜턴 불빛을 비추더군요. 모두 이해할 만하다는 반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능선 길을 따릅니다. 수락산의 자랑거리인 홈통바위는 낮에 타기로 하고 저희가 출발 전에 잡았던 오늘 산행의 야마, 되도록 먼 거리를 안전하게 걷는다는 원칙에 충실하기로 합니다. 전날 내려갔던 석림사 하산 길을 마다하고 재로의 요구대로 동막골 코스를 택합니다. 오르는 길 2킬로미터에 내려서는 길 4킬로미터, 총 4시간 산행인데 동막골 입구에 내려서니 새벽 1시 45분, 목표치보다 약 30분 지체됐군요. 야간임을 감안하고 하산 길에 더욱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늦은 건 아닙니다. 동막골은 밤이라 그런지 볼거리는 많지 않고 무척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코스더군요. 그렇다고 속단하진 마세요. 낮에는 이 길이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계속 말씀드렸듯이 이 산 저 산 비교하지 말고 지금 이 산을 최대한 즐겨라는 거지요.
우리는 계속 걷습니다. 나는 택시를 타고 회룡역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재로는 걷자고 하더군요. 하기야 불수도북 원론에 충실하려면 회룡사 코스말고 더 북쪽으로 올라가 사패산 코스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원칙주의자니까. 회룡사로 들머리를 잡는 것만 해도 엄청난 타협을 한거지요.
고스락 감자탕집에 들러 감자탕에 소주 딱 세잔-둘이 합쳐!- 걸치고 감자탕집을 떠난 게 새벽 2시 57분.
물소리 왕왕 대는 회룡사 계곡에 들어섭니다. 지난 봄 첫 야간산행때와 소리 크기가 많이 다릅니다. 그때처럼 달빛이 교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앞뒤 분간 못할 정도로 캄캄한 건 결코 아닙니다. 야간산행 하면 모두 이런 정도의 암흑을 걱정하는데 물론 조심해야 할 대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만큼 절망적이거나 한 것은 아니란 얘기입니다.
여기서 또 한번 꾸란 구절을 떠올려 봅니다.
보이지 않는 것,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체득케 하거나 이해시키거나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입니다. 여러분께 아무리 야간산행의 독특한 맛을 글로, 세치 혀로 설명한들 그걸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렇게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헉헉대고 가파른 계곡을 계속 오릅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 못하지만 대략 4시 10분쯤 회룡골재에 올라섰습니다. 이곳은 한북정맥 줄기입니다. 이제 능선 길이라 힘이 조금 덜 들겠지 생각했는데 역시 봄 산행과 여름의 그것은 확연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상당히 힘들고 숨가쁜 길이지만, 새벽을 맞은 산새들 울음이 그 힘든 여정을 가볍게 합니다. 그 아름다운 울음 역시 여기에서 글로 제대로 옮길 수 없음 안타깝습니다. 포대능선을 따라 자운봉에 올라서니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독짱 형이 전화를 걸어옵니다. 참, 전날 밤 9시쯤에는 오솔길이 잘 오르고 있냐는 문자를 보내와 통화를 했습니다. 사실 집에 계신 분은 미안한 마음에, 산행 길에 번거로움 끼치지 않을까 싶어 전화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걸어주시는 전화가 자칫 나태해지기 쉽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꼬다박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독짱 형 전화받고 저희는 하산 길에 더욱 홀가분한 마음가짐을 먹게 됩니다. 사실 자운봉부터 하산하며 돌아보는 연봉들의 자태가 더 아름다운 것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 아침, 사물이 온전히 제 빛을 드러내지 않은 이 시각은 보는 이에 따라, 보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참 다른 빛깔을 선사합니다. 또 이 시각에 헉헉대고 올라오는 사람이 즐기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맛을 내려가는 이들에게 선사합니다.
새벽 5시쯤 재로가 졸립다는 얘기를 해 주의깊게 쳐다보니 역시 발걸음이 조금씩 휘청거린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재로는 수락산 하산에서부터 약간 그런 조짐을 보였지요. 위험하긴 하지만 자꾸 조심하라는 얘기를 건넵니다.
도봉산에서 더욱 그런 증세는 심해지는군요. 29일 밤 몇 시까지 먹었는지 모르게 술을 먹고 전날 하루 종일 일하고 산행을 하니 저처럼 하루 푹 쉬고 오른 이보다 힘든 건 당연하겠지요. 지난번 산행때 놓쳐 우이동에서 훨씬 위쪽으로 내려와 시간이 많이 지체됐는데 우이암 내려서는 길을 이번에는 놓치지 않아 제대로 탔습니다. 훨씬 빨리 내려와 우이동 내려서니 아침 8시 45분쯤. 바지런히 발걸음 움직여 저번에 밥 먹었던 곳에서 잠깐 제가 테이블에 머리 대고 눈 붙이고 있는데 낯익은 경상도 인토내이션이 들리더군요. "자나?"
맛있는 걸 자꾸 먹이겠다는 독짱 형과 물배가 차서 뭘 먹기가 힘들다는 우리가 밀고 당기다 결국 해장국에 소주 간단히 먹고 일어서기로 했고 형은 매실 두 병과 바나나 껍질 깐 것을 담은 락앤락통을 내밀더군요. 피로 회복과 칼로리 보충, 신새벽 후배들 챙길 생각에 모자란 잠을 더욱 축냈을 것을 생각하니 죄송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여기에 그런 몰골로 지하철 타면 영락없이 종점까지 간다며 한사코 집 앞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하고.
제가 차에 올라 죄송하고 고맙다고 하니 형 왈 "그런 말 마라. 경기 날락 한다"
그렇게 형은 편히 쉬라고 배려했는데 이 모자라기만 한 후배는 카드 키 잊어 먹고 목욕탕에서 눈 붙이고 있으니, 그리고 또 고속열차에 몸 싣고 광주로 내려갔으니 정말 다시 한번 "고맙고 죄송합니다."
그런데 나도 이런 배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일단 산에를 빠져야 그런 기회가 생길 터인데, 내가 무슨 타이틀 노리는 도전자도 아닌데 1월 이후 거의 모든 산행에 빠져본 적이 없으니 그런 기회 잡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지요. 나중에 여우같은 마누라가 발목 붙잡아 그런 기회 생길려나.
필름을 리와인드해 30일 새벽 2시로 돌아갑니다.
퇴근해 집에서 잠을 잔 뒤 8시 김병현 선발경기 구경하다, 지지리도 경기 운 없는 병현을 뒤로 한 채 쓰라린 가슴 쥐어뜯으며 1시 조금 넘어 찬밥에 고추 된장 찍어 먹고 수락산행. 당고개역에서 버스 타고 덕능고개 내려 군 장병 알려준 대로 좁다란 길 올라 동물이동통로를 통해 수락산으로 붙음. 나중에 책을 보니 이 코스는 출입금지. 왜냐 활 쏘는 데가 있어 자칫 사고 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었음. 군부대 철조망 오른쪽으로 최대한 붙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래 고갯길로 떨어지고 말았음. 길 자체가 흐릿해 최대한 오른쪽으로 붙었어야 했는데 그만 이 정도면 되겠거니 했던 거지요. 그런데 왼쪽 계곡으로 떨어져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붙었더니 도선사가 나오고 그 절 오른쪽으로 바싹 붙어 오르니 제대로 코스와 만나게 됐지요. 여기서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도솔봉으로 붙었지요. 약 45분 소요. 원래 덕능고개에서 조금 더 내려가 흥국사라는 절에서 시작하는 코스를 잡았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나중에 했지요. 도솔봉부터 수락산 정상까지는 30일 야간산행과 같은 코스.
동막골이 4킬로미터인 데 반해 석림사 코스는 3킬로미터여서 이곳을 택했음. 갈래길에서 얼마 내려가지 않아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곧 제법 웅장한 계곡미가 드러남. 사실 반대편 계곡으로 내려서면 금류폭포, 은류폭포 등이 있어 수락은 물이 많은 산이구나 하는 점을 깨닫게 해줄 겁니다. 야트막한 산인데 이렇듯 넉넉한 계곡과 연봉을 거느리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욱이 능선 길은 암릉으로 이어져 아기자기한 멋을 선사하니 도봉과는 또다른 매력인 것입니다.
{이어 씁니다.}
29일 오후 7시 20분쯤 시청앞 광장 금세기 빌딩. 수락산을 내려와 전철로 이동했는데 숨가쁘게 발걸음을 옮긴 결과 예정보다 10분 일찍 도착. 맨먼저 주인공 사니 형 도착. 이십몇년 전처럼 섭씨 35도에 이르는 무더위에도 긴 팔 옷을 입고 있음. 잠시 시청앞 광장에서 펼쳐지는 무료 영화 상영 을 화제로 얘기 나누다 식당에 들어가 굴전 시켜놓고 소주병 기울이기 시작. 이어 그냥 형 도착, 팔에는 책을 가득 담은 상자가 안겨져 있음. 고맙고도 죄송. 그리고 멍게와 쁘날매(? 사니 형은 자신의 독창적인 작명이 정말 마음에 든다며 모임 내내 자랑), 오솔길 동시 입장. 조금 뒤 재로 입장, 약속시간보다 1시간 정도 뒤늦게 독짱 형 도착, 왕눈이는 그로부터 한참 뒤 모임 파하기 직전 짠하고 나타남. 그럼 참석자는 모두 9명인데 회비 징수 내역을 보니 8명.
그냥 형은 자신의 생일은 아직 멀었다며 따로 독상 받기를 원함. "지나간 것들은 지나간 대로"라는 노래가 생각남. 모임의 결론은 매월 산행때 그달 생일 맞은 이는 고백을 하고 생일 상을 받기로 함.
굴전과 이날 처음으로 족발이란 것을 먹어 보아야겠다며 주문한 쁘날매 형의 정말 공주다운 모습에 경탄함. 쁘날매 앉자마자 "파리 안 오냐"고 해 같은 파리인 내가 긴장함. 이 식당 술국,쉽게 말하면 굴탕인데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괜찮음. 안 오신 분 중에 굴요리 좋아하시는 분은 한번 찾기 바람.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9시 40분 가까이 돼 자리를 털고 일어남.
그냥 형 차안에서 쁘날매,오솔길,꼬맹이 주려고 준비했다며 예쁜 꽃상자를 보여줌. 전달했는지,안했으면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궁금. 우리 집 창문가에 놓아도 썩 괜찮을 꽃상자였음.
어찌어찌해 세종호텔 2층 미라주라는 고급 술집에 가서 엄청 비싼 술을 마셨음. 재미있는 건 사니 형 여기를 와보았는데도 전혀 그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 얼마나 술집을 전전했으면. 이렇게 독특한 술집을 들어가서 소파에 앉고서야 떠올린다는 말입니까.
오솔길이 앉자마자 선배들 명령을 받고 폭탄주 제조. 처음 타보는 것이 분명했음. 보통 배합 비율의 곱절에 이르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녔음. 한잔 먹자 곧바로 효능이 발휘될 정도의 강력탄이었음. 처음에는 미적미적하던 오솔길, 다섯잔쯤 돌리자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재미있다는 표정이 역력했음. 개인적으로는 다른 폭탄주를 제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다음날 재로 의 명령대로 사전답사를 하려면 참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제, 또 자제.
종업원들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들어와 가발을 씌운 채 사진을 찍음. 누군가 그랬음. 이 대머리 가발은 왕눈이가 어울리겠다. 정말 그랬음. 촬영 몇 초후 우리 손에 쥐어진 사진을 보고 마냥 신기한 듯 들여다보는 형 몇사람의 표정을 재미있게 보았음. 멍게였던가요. 맨먼저 노래를 불렀던 것 같고 오솔길이 덩치에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전인권의 '돌고 또 돌고'-이게 제목이었던가 헷갈리네-를 불렀던 것이 기억남. 그리고 나, 술에 취해 '너를 위해' 등을 아주 잊아묵지도 않고 불렀음.
인상적이었던 건 독짱 형이 김돈규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가수, 노래방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가수인데도 공중파 같은 곳을 전혀 타지 않은 이의 노래-제목은 생각나지 않은데-를 멋지게 불렀다는 것.
오솔길과 독짱 형의 노래만이 기억에 남을 뿐 다른 사람들 노래는 그저 그랬음.
여기까지. 내가 무슨 리버 피닉스 닮았다고-리버 피닉스 아시는 분 있으려나-기면발작 증세 들어감. 일명 수면 모드. 새벽까지 근무, 사전 답사 산행으로 피로 누적됐다면 해명이 될까요.
다음날 야간 산행에서 들은 얘기인데 그냥 형과 쁘날매 형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 폭발력이 대단한 자리배치였다는 것이었음. 음주 초반 스피드광인 그냥 형이 1차에서 컨디션이 안 좋다 어쩌구 하면서 빼더니 2차에선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 가는 바람에 쁘날매 형 오버했다는 후문.
내가 수면 모드에서 누군가의 채근으로 깨어나고 보니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음. 31일 야간 산행 마치고 오른 독짱 형 차안에서 이해하고 넘어가자는-우리 둘은 이미 산에서 상황을 정리했는데-당부가 다시 있었음.
근데 제 경우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동안 보아온 술자리에서 그 정도 이상한 상황은 축에도 끼지 못해요. 제 머리 소주병으로 때려 박살내는 자해형부터 분노의 주먹 날리는 파괴형,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면서 사람 약 올리는 치근덕형까지 저는 많은 유형을 보아왔기 때문에 그날의 상황은 가끔 생각하며 미소를 날릴 정도의 것이었음.
나는 여기까지밖에 모름. 졸려서 그냥 집으로 왔음. 나중에 들으니 다섯 명이서 남대문 포장마차에서 소주 세 병인가를 더 먹고 정말 몰지각한 두명은 처녀 혼자 사는 데 쳐들어가 무슨 술인가를 먹고-세상에 자신이 무슨 술을 먹었는가도 모를 수 있나-몇시쯤 잠이 들었던 것 같다고 누가 그러대요.
사니 형, 술 잘 마셨고 노래 잘 불렀습니다. 그 나이에 이런 축하의 자리 마련한다는 것 분명 쉽지 않은 일이예요. 근데 우리가 술 마시며 무슨 얘기 나누었는지 기억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첫댓글 아니, 제 것도 있었습니까? 그것도 꽃상자? 할매 언니,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라나 어떻게 받나? 지난 주 수요일이후 기침발작으로 거의 죽음 직전(앗, 이건 좀 오버네요-기관지염으로 발전해서 고생하긴 했지만)까지 갔다가 이제야 살아난 꼬맹이, 부러워 또 죽음직전까지 갑니다!, 그냥형님의 책 선물도 받아야 하는데...
알, 노래 기억하고 다 불렀다니 수상타. 분명히 잠깐이라도 눈감고 명상 돌입했을터인데...독짱아자씨도 노래 잘부르더나? 오솔길은 쪼맨 거 카바하느라고 목소리 대빵크지? 내가 들은 적이 있지요. 산행 때 생일파티하믄 나는 매월 태어나는 거로 할란다.매번 받구로. 그럼 이번에 그냥이네. 8월 9일인가 생일이던데..
저 폭탄주 제조 정말 처음였는데 진짜로 재밌드라구요. ㅎㅎ 알 형, 다음엔 회오리준가 뭔가 그거 함 도전해 볼텐께 갈쳐주세요. 그리고 꼬맹아, 꽃은 그냥 형이 세 여인을 위해 준비하셨단다. 알 형, 내내 주무시더만 볼 건 다 보나벼요. ㅎㅎ
그라고 형, 리버 피닉스 막내인 지도 아는디... '아이다호' '스탠바이미' 등등
내가 잘못 써서 그런가.꼬맹이가 잘못 알아들은 건가. 할매가 아니고 그냥 형이 세분의 꽃상자까지 준비해왔다고요. 원래 피엘 형은 안 온다고 했으니 빠졌고.그라고 저 노래 부를 땐 긴장합니데이.독짱 형 의외더군요. 상당히 어려운 노래를 제대로 소화했습니다.요란한 생일 상은 이번으로 그만.나이먹는 기 자랑도 아니
그라고 오솔길이 너무 조심하는 거 아닌가 싶더군요.요즘같은 경기에 그 정도 술판을 벌여도 되나, 또 시시콜콜 우리가 논 것을 옮겨야 되는가 생각한 것 같은데 전 그렇게 생각 안하거든요. 안오신 분들의 궁금증도 씻어드려야 하고 놀 때는 놀고 정리할 땐 정리하고 하자는 거지요.반성할 땐 제대로 반성하고. 그래서 제
가 기면발작을 일으킨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 싶거든요. 좀 주책스럽고 네가 정신 깨어있었으면 되지 않느냐 꾸짖으시면 할 말 없지만 제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쓰러지는 거거든요. 널리 이해해주시고 잠들었던 동안 벌어진 일들을 누군가 친절히 설명해주시길
오솔길아. 다음엔 내가 하려다 말았던,도미노주 시범 한번 보여주마. 시쳇말로 마빡이 단단해져야 허는디. 아침 저녁으로 단련.스티븐 킹의 스탠 바이 미를 알다니 허거덕.
아, 그랬군요. 제가 독해에는 별로 문제가 없는데...어쨌든 고맙게 받겠습니다. 근데 계속 폭탄주, 회오리주, 도미노주... 이런 식으로 나가시면 전 일찌감치 손을 들어야겠는데요^^.
오...짐작은 했지만 상당히 재밌게 잘 놀았네. 부럽당. 독짱형님. 어려운 노래도 리듬을 잘 타지요. 음악적 감성이 있는것 처럼 느꼈습니다.(물론 리듬 잘 타는 것하고 잘하는 것하고는 다르죠) 오솔길은 옆에서 슬슬 꼬셔서 부드러운 발라드 노래 부르라고 하세요. 변신모드 돌입해서 분위기 틀려집니다.
멍게는 노래를 못하니까 자기가 할수 있는 쉬운노래를 찾는 선곡실력만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냥형님,이쁜할매노래좀 들어 봤어야 하는건데...우리 알대장은 듣는 실력(이것도 중요합니다)이 아시다시피 일가 (알대장집에 있는 듣도 보도 못한 겁나는 시디 보셨죠?) 를 이루고...혹 왕눈이 개구리송 안 불렸습니까 ?
재로는 분위기 있는 발라드맨이고...사니형님은 마이크를 끄고 맨입으로(?) 부르는 실력이 끝내준다는 소문을 얼듯 들었는데...전 노래 못합니다. 단지 파리새끼처럼 윙윙 거립니다.
그나저나...백운산 이후로...알수 없는 산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 생겼습니다. 아마도 갠적인 백운산 후유증이라고도 생각되는데...8월 봉평의 넓은 들을 보면 사라질려나 ?
그냥 형님 ! 하드커버의 책 잘 받았습니다. 현재까지 한 50장 읽었습니다. 근데 솔직히 잘 안 읽히네요..ㅋㅋㅋㅋ..태어나서 첨으로 읽는 등반기 책이네요...고맙습니다. 꾸벅
재로야, 내 니 땜에 몬살겠다.^^ 쬐만한 울집 냉장고 문 열며 "소주, 와인(묽은 거, 붉은 거), 백세주 있는데 뭐 주까" 했더니 소주 달라해서 "산" 마셨고만...그리고 사실적시 하나 추가하자면, 몰지각한 두 명이 쳐들어온 게 아니고, 남대문 거리에서 두 남자 냅두면 새벽까지 기냥 배회할 거 같아서
지가 울집으로 납치^^, 날 밝을 때까지 감금했던 거야요. ㅎㅎ
자, 정리해 봅시다. 정리1. 그 날 생일 번개팅에서 이상한 상황이나 이해하고 넘어갈 상황 결단코 없었습니다. 이상하거나 이해 못할 상황을 인지한 사람은 이실직고 알리기 바람. 근데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당부는 뭔고? 정리2. 생일상은 쭈~욱 차립시다. 외냐면 이번 달이 나거든요. ㅋㅋ 단 뻑적지근하게 하는건
반대임다. 산에서 케잌과 초 없이 하는 방법있지? 정리3. 꽃바구니는 두분 여인네가 안고 가시는 것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 기착지까지 안전하게 무사히 도착했는지는 모릅니다. 꼬맹이 것은 본인이 처리했는 바 상상에 맞깁니다. 꼬맹이에게 빚이 하나 더 늘었지? 정리 4. 폭탄주중 도미노주 제조를 위해
마빡을 단련해야 함은 기본이고 그에 덧붙여 연마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여기에서 다 하면 재미없겠죠?
고마워 후배들! 민망해서 꼬리글도 달기가 쉽지않았어. 참 푸근하고 넉넉한 마음들을 읽고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꽃은 식탁위에 여전히 생생한데... 어떻게 거기있는지는 잘모르겠어. 정신차린후 여기저기 전화를 해가며 상황파악을 하는중에 망가진 선배맘 혹시 다칠까봐 애쓰는 후배들을 보고 엄청 반성되더군..
집에 데려다준 그냥! 무지 고마워. 전생에 남매였나? 어부바해준 멍게두 미안하고 (정신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솔길과 알의 글형태는 다르지만 후배들 그속깊음에 감사하며 읽었다우. 사니생일 화려하게 장식해서 미안해. 왕눈이도 힘들었지> 이제 안놀릴께.
무슨 술을 그리묵노? 야단쳐준 독짱 고마워. 그러니까 내가 가끔 형이라고 부르는 실수를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조심할것을 후배들에게 약속합니다.
팔투야. 너 나한테 안 지려고 대글을 무려 다섯 칸이나 채웠구나야, 대단허다. 책은 120쪽까지만 읽어봐라, 그 담부턴 술술 넘어간다. 나는 263쪽까지 읽었다. 광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라고 뭐 그렇게 신경쓰는 게 많나. 좀 털어버리고 그래라.
알아! 털어버러는 게 너무 많다. 그치?
그냥이다. 여기서 끝!!
알대장 말이 맞습니다. 집에 가서 보니 제가 읽은 곳이 50장이 아니라 50페이지네요. 첨 한30페이지까지는 무지 안 읽힐겁니다. 그 담부터는 술술 잘 읽힙니다. 그림도 많습니다. 근데 믿기지 않네요. 아무 장비도 없이 한겨울 태백산에 저녘 6시에 나홀로 정상에 올라 밤을 샌다면 과연 제가 살아 남을수 있을까요 ?
"불"이란 사람 사니형님이 올려주신 "항고밥" 사진에 보이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8000 미터급 고봉에서 침낭도 없이 쭈그리고 앉아 혼자 밤을 새고 살아 남다니..그것도 각성제 몇알만 갖고...아! 생각만 해도 겁이 덜컥 납니다.
퀴즈 : 비밀결사조직 "오프스데이"의 아시아측 총 책임자. 코드명 골드스프링(goldspring) 성배옆에서 울린다는 5개의 금잔을 갖고 산악회에 위장취입 성배를 찿기 위하여 암약중. 건배를 주도하나 성배를 찾기 위한 일련의 과정의 하나임.
댓글 읽는 재미가 산행기 읽는 재미만큼이나 쏠쏠합니다. 여기 계신 한 분 한 분 모두가 별 같다는 생각을 어제저녁부터 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별이 될 수 있을지.... 요즘, 영 자신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