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동양 특히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아주 잘 나타나기도 한 것이 아편전쟁이요 그 두려움을 극복한 것도 아편전쟁을 통해서일 겁니다. 서유럽은 당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결코 중국의 인구를 따라가지 못 했습니다. 우선 당시 중국인의 평균수명보다 영국인의 평균수명이 짧았고(대개의 영국인이 산업노동자라 과도한 노동에 시달려서일 겁니다.) 무엇보다 새로 개척한 식민지인 호주, 남아공, 미국, 캐나다등으로의 인구유출도 심각한 지경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프랑스의 경우도 아프리카 식민지로 빠져나가는 인구 특히 임신이나 출산이 가능한 젊은 층의 노동인구 유출이 심각했고 독일은 새로 복속한 동유럽의 영토로 독일의 도시 노동자들이 농민으로 땅을 불하받아 나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광대한 영토에 인구를 가진 중국은 유럽인들에겐 넘기 힘든 산과 같았습니다. GNP뿐 아니라 일인당 소득에서도 서유럽은 결코 중국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기술적 우위와 정치적 음모가 중요시 되었습니다.
사실 아편은 명나라때부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대략 영국인들의 인도지배와 프랑스인들의 베트남지배가 고착화 되고 동인도회사를 통해 이 아편이란 열대작물이 공급되던 시기는 식민화보다 빨랐습니다. 무엇보다 본국정부보다 동인도회사가 먼저 상업적 진출을 했고 명 말기에 이미 스페인령 멕시코에서 은이 대량 유입되 물가앙등이 될 것이고 아편은 영국과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대량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 앙등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불량화폐가 아닌 순은으로 은을 정련해 쓸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의 재화의 양은 무한해 보였습니다. 더구나 시민혁명등을 거쳐 자라난 유럽의 시민의식이 중국에는 없고 오직 황제의 밑에 똘똘 뭉친 중국인만 있었습니다.
아마 그 정도 영토의 유럽제국이 있다면 산산히 분리독립 할 것인데 중국의 경우 끄떡이 없던 것에 유럽인들은 놀랍니다. 아편도 명에 이어 청왕조의 중기까지 완벽한 단속을 통해 약재외의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이 아편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대략 조선조 정조경이니 19세기 초엽부터입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중국인들의 아편수요에도 불구하고 중국경제는 적어도 외형상 끄떡 없어 보였고 영국 왕이 보낸 사절에게 통상을 요구하자 중국의 천하는 넓어 교역이 필요없으니 조공물에 상응한 황제의 선물이나 받아가라며 거지 적선하듯 물건을 주고 쫓기까지 했답니다.
이런 경제, 군사적 위위는 결국 아편전쟁이란 전쟁을 통해 완전히 깨어집니다. 이 아편전쟁 이후 홍콩을 뺐긴 것은 사실 경제 군사적으로 너무 미비합니다. 하지만 그 뒤 중국인들은 오랫동안 서양인 컴플렉스에 시달리죠. 이번 홍콩 반환은 일단 이면에서 홍콩이 가진 경제력 흡수도 흡수지만 중국인들의 심리에 자부심을 불어 넣은 쾌재라고 중국인들은 자찬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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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 쓰기위해 봤는 영화입니다. 뭐 그리 좋은 작품같지는 않지만, 레포트 그대로 올리겠습니다. 금욜까지 내는건데 울 동호회님들 혹시 미비된점이나 틀린점이 있으시면 가차없는 비판 부탁 드립니다^^
1.영화 "아편전쟁"을 보고...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내가 가진 편견이랄까... 하는 것들을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의 시작은 당시 청나라의 사정을 서술하면서 시작된다.
(1)줄거리
시대는 청나라 도강제 20년 영국의 아편수출로 인해 일반 서민층은 물론 황궁에 드나드는 관리들에게도 아편의 마수가 뻗치면서 청나라는 국가적인 위기마저 맞게 된다. 급기야 도강제는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강직하기로 소문난 임칙서를 흠차대신으로 임명하여 아편밀매의 현장인 광동으로 보낸다. 한편 임칙서는 파견 가기 직전 자신에게는 존경하는 선배이자 현제 황제에게는 스승이기도 한 황실 관리가 아편에 찌든 상태로 황제의 어명으로 잡혀 포박당한 모습까지 보게 된다. 황제는 그 관리를 보여주면 현재 아편으로 인한 폐해가 이 정도라는 언지를 주며 강력하게 단속을 해서 아편을 근절시키라고 명을 내린다. 영화는 다시 중국 광동지방으로 오고 있는 영국 국적의 아편 밀무역선으로 카메라를 돌린다. 서구 문물에 심취한 중국 청년 용아는 아편을 가득 실은 영국배를 타고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 온다. 하지만 그는 생김새만 중국인일뿐... 머리는 변발이 아닌 서구식 단발로, 종교는 크리스트교로 개종한 상태이다. 임칙서의 도착과 거의 동시에 광동으로 들어온 영국배에서 부패하고 아편에 찌든 청국관리와 영국인 사이의 밀거래가 이루어진다. 바로 당시 아편이 얼마나 쉽게 청나라로 들어 왔는지 보여주는 장면인 듯 하다. 선상거래를 끝내면서 임칙서를 조심하라는 언지를 영국인에게 준다. 한편 광동으로 부임한 임칙서는 아편굴등을 단속하며 아편을 퇴치하기 위해 힘쓴다. 아편굴에서 체포된 사람들은 모두 사형... 형은 외국인들이 머무는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영국배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던 용아는 그만 단속나온 청국관리들에게 잡히고 사형당할 위험에 처한다. 용아가 사형당하기 직전 친하게 지내던 영국인 처녀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 자리에 있던 임칙서는 영어를 능통하게 하던 용아를 직접불러서 만난다. 용아를 통해서 서양문물이나 제도에 대해 조금 알게된 임칙서는 영국인들에게 아편을 내놓라고 최후 통첩을 보내지만, 영국인들은 회의를 통해 이를 거부한다. 화가난 임칙서는 강제로 그들의 아편을 몽땅 빼앗아 소금물에 폐기해버리고 외국인 거주지역을 봉쇄한다. 강경책으로 나오는 임칙서에 놀란 영국인들은 본국에 구원요청을 한다. 한편 임칙서는 아편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일단 관리들부터 모범을 보여야된다며 아편에 찌든 관리들을 처단한다. 구원 요청을 받은 영국의회에서는 격론이 벌어지고... 결국은 무역에의 이익이 우선해야된다는 의견에 9표차이로 청국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미 전쟁을 예상했던 임칙서는 광동지방에 군대를 집결시키고 일전을 벌일 준비를 한다. 철갑선과 신식 대포로 무장한 영국군은 광동지방에 청국군대가 대규모 집결한 것과 임칙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북경쪽으로 기수를 돌려 천진항으로 향한다. 사정거리가 긴 신식대포와 기동력을 이용한 영국군 전함에 청국군대는 맥없이 무너진다. 한편 영국군이 천진으로 향한걸 임칙서는 알고 있었지만 통신망의 허술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천진항에 상륙한 영국군에 놀란 도강제는 강화를 맺을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임칙서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시킨다. 영국군의 교활함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청국군을 생각하며 임칙서는 눈물까지 흘리며 관직을 버리지만 이렇게 쉽게 영국에게 항복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피력한다.영국군을 달래기 위해 보냈던 여자가 흉기를 소지하고 있다가 영국군에게 적발당하고 영국군도 다시 강화를 맺는데 불신을 보내고 청국군은 다시한번 일전을 결의 한뒤(내가 중국여행때 갔던 천단 공원이 나왔다) 전열을 정비하고 영국군과 다시 전투를 벌이지만... 그역시 영국군의 신식무기와 전술에 무너진다. 마지막 장면에는 청국 장수가 영국군과 같이 폭사 하는 장면도 나온다. 결국 황제와 그의 자손들은 옛날 선조들이 있는 사당에서 흐느껴 울며 영화는 끝난다.
(2)감상
1997년 7월 영국의 홍콩반환기념으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라서 그런지 중국인들의 시각이 전부 반영된 영화였다. 영화의 초점은 주로 임칙서에게 맞추어져있다. 영국인들 수뇌부 오죽하면 영화중에 영국여왕까지 임칙서에 관심을 보이던 것처럼 나온다. 과연 영화상에서 임칙서는 어떤 인물로 부각 되었을까? 아마도 난세를 타계하기 위한 영웅의 이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강직한 성품으로 자신의 수하에 있는 관리들부터 깨끗이 하는 장면이나 단순히 무식하게 서양을 배척하는게 아니라 용아를 통해서 서양의 문물을 배워보려고 하는 장면, 마지막까지 싸워보자는 의견을 개진하는 장면들을 보면 당시 바람직한 관리상일 뿐 아니라 지금의 중국인들에게도 이 영화를 보면서 교훈이 되도록 하기 위한 인물설정이라는 것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역대 황제를 모신 사당에서 황실의 핏줄을 이을 후손들이 통곡하는 모습 또한 아편전쟁은 중국 근대사의 장을 이제 펼친 것 일뿐, 앞으로 그들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닥칠 것 임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시대극으로서 당시의 상황을 당사자의 시각에서 본 것이 다른 흥미위주의 시대극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영화중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베이징에 있는 천단공원이 나오는데, 직접 가본적이 있던지라 반갑기도 했다.
2.위대한 역사에 대한 환상: 아편전쟁
(1)역사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역사에 대한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역사학의 의미를 두고 실체진실의 발견이 중요하다는 사고가 지배하던 근대에는 역사란 단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였고, 실제로 역사가들 또한 주관적인 것이 아닌 객관적으로 비판적이 아닌 온건하게 모든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서술했다.
하지만 E H 카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단지 과거사실의 나열이 아닌 무수한 과거의 사실들 중 역사가의 취사선택에 따라 취해진 것이 역사적 사실로 나타난다고 했다. 과연 이 말은 틀리지 않는 것이 역사적인 관점 즉 史觀에 따라 똑같은 사실이 전혀 다른 식으로 서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실은 좀더 무게를 두어 서술하고 역사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경시하거나 빠뜨리는 바람에 그 진실마저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사는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사상적인 지팡이 일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하기 때문에 당시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조명하느냐에 따라서 동시대인들의 행보마저도 바뀌는 것이다. 가까이서 예를 들자면 일제가 심어준 식민사관이 그러하다. 그들은 그걸 무기로 우리의 의식을 바꾸고 없애려고 까지 했으니... 이처럼 역사는 단순한 게 아니라 당대사람들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2)위대한 역사에 대한 환상: 아편전쟁
영화를 본 뒤 책을 읽고 나니 필자의 감상평은 좀 의외의 것에 맞추어져 있었다. 중국 근대 역사의 출발점은 그들이 원해서 선택한 지점이 아닌 외세의 강요에 의한 아편전쟁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운요호 사건에 따른 강화도 조약으로 우리나라는 근대사의 출발점을 열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중국의 근대사의 시작이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어쩌면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느 정도의 동질의식을 느끼며 다시는 이런 치욕적인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쪽으로 기울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은 판단을 했다. 즉 (1)에서 전술 했던 "역사"의 조명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흥미를 위해서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 의미를 보자면 1997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하는 시점에서 만들어진 영화이다. 물론 홍콩이 영국으로 넘어간 것은 아편전쟁의 결과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홍콩문제는 중국에게 단순한 영토의 반환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중국의 근대사의 출발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바로 아편전쟁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중국의 역사는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19세기는 근대화로 인한 고통과 시련이 끊임없었고, 20세기는 이데올로기와 다시 경제 문제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런 그들에게 과거를 다시 더듬어 보고 현재의 그들을 생각할 여유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홍콩문제 또한 어쩌면 영원히 그들의 영토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20세기 공산주의 혁명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도 그들은 다시 개혁을 통해서 세계적인 강국이 되었다. 그리고 때를 같이 하여 드디어 그들의 숙원인 홍콩(香港)을 되찾은 것이다. 홍콩의 반환은 이점에서 의미가 큰 것이다. 항상 홍콩을 생각하면 수치심까지 느꼈을 중국인들에게 홍콩 반환은 바로 치욕적이었던 근대사의 청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근대사의 출발점인 홍콩의 할양, 그리고 다시금 현재 그 치욕적이었던 과거사를 정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홍콩을 되찾았다며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교훈이 되는 것이다. 이런 교훈은 다름아닌 역사를 통해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항상 이렇게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안주감 만을 주지는 않는다. 바로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하는 것이다. 홍콩반환에 따라 기념으로 만든 영화 "아편전쟁" 또한 단순한 역사적 사실인 아편전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로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그들이 앞으로 나갈 방향을 보여주는 역사가가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역사란 오로지 글로만 서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감독의 생각은 아마 이러지 않을까?
"보아라 우리 중국인들이여!!
우리에게는 저런 치욕적인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섰다. 이제부터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다시는 저러한 역사가 없기 위해 오히려 저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
영화 "아편전쟁"을 이렇게 비판적인 시각에서 본 필자의 의견에 동감하는 바이다. 단순히 흥미위주의 이벤트 형식으로 만들어서 기념하는 것이 아닌 역사의식을 잠재한 영화이며, 중국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면서,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우리에게는 경계의식을 한번쯤 가지게 할 수 있는 영화이다.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