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일인의 감동의 글(한국 손기정 선수에 대하여) ‘스테판 뮐러’라는 독일인이 개인 홈페이지의 글을 편집한 영상
당신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지도를 펴기 바란다. 당신이 알고 있을 중국과 일본 사이에 한반도가 있고 그곳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보일 것이다. 이야기는 이 조그만 나라의 어느 마라토너가 주인공이다. 이 나라는 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놀랍게도 2000년간 한 번도 자주성을 잃어본 적이 없는 나라이며, 이 나라의 국민들들은 ‘나라’ 대신에 '민족'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어느 여름날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 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의 감동적인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1936년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때 두 일본인이 1위와 3위를 차지하였다. 헌데 시상대에 올라간 이 두 일본인 승리자들의 표정은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말 불가사의한 사진.... 왜 두 사람은 이런 슬픈 모습으로 시상대에 서있는 것일까? 당시 식민지의 한국 청년들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개인의 꿈을 접고 살았고 이 두 청년들은 달림으로써 자신들의 울분을 표출해야만 했다.
이 두 청년들은 많은 일본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뛰고 또 뛰었다. 달리는 내내 이 두 청년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승리했고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조국 한국의 태극기 대신에 일장기가 있었고, 스탠드에도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때 이 두 청년의 표정이란.... 그들은 깊게 고개를 숙인 채 .... 한없이 부끄럽고 슬픈 얼굴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뉴스를 전한 한국 신문이 일장기를 지워버리자 일본 정부는 이 신문사를 폐간시키고 만다.
이 우습고도 단순하면서 무지하기까지 한 탄압이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침내 이 민족은 해방되고 한 번의 전쟁을 치른 후, 한강의 기적 을 통해 스페인보다도 포르투갈보다도 더 부유한 국가를 만들고 만다.
그리고는 1988년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이른다. 불과 50여년 전 태극기조차 가슴에 달 수 없었던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개막식, 성화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작고 여린 소녀 마라토너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은 사람은... 1938년 그날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웠던 승리자, "손" (손기정)이었다. 백발이 된 이 슬픈 마라토너는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애와 같이 즐거워하지 않는가!!
어느 연출가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역사란 이처럼 멋지고도 통쾌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나 보다. 이 때 한국인 모두가 이 노인에게, 아니 서로에게 얘기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기를 바랬다. 이처럼 굉장한 이야기가 이대로 보존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놀라운 정신력으로 그들이 50년 전 잃어버렸던 금메달을 되찾고 만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영조'는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과 독일의 선수들을 따돌리고, 마침내 월계관을 따내고 만 것이다.
경기장에 태극기가 올라가자 '황' 은 기쁨의 눈물과 함께 왼쪽 가슴에 달린 태극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탠드로 달려가 비운의 마라토너 '손' 에게 자신의 금메달을선사하곤 깊은 예의로서 존경을 표한다... 황영조를 가슴에 포옹한 손기정은 말이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는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인은 폭력과 거짓과 다툼이 아닌 불굴의 의지로써 고통을 극복한 민족이다. 이 이야기는 슬픈 눈물로 시작된 역사를 기쁨의 눈물로 바꿔가는 민족을 보여준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했던 인간과 국가와 민족의 존엄성을 한국인 보여주었다.
도서관에 달려가라,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선 두 한국인의 사진을 찾아라... 당신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다.
------------------------------------------------------ 마라톤의 손기정,남승룡 선수를 기억해 주세요.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결승전.
12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골인 지점에 힘겹게 나타난 사람은 미국인도, 유럽인도, 독일인도 아니었다. 아시아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조선(Korean:한국)의 청년이었다.
그는 세계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물리치고 뜨거운 태양 아래 마지막 직선 코스를 사력을 다해 힘겹게 달렸다.
그의 이름은 손기정. 그의 뒤를 이어 미국의 하퍼가 들어오고, 또 다른 조선 청년 남승룡이 들어왔다.
조선의 청년 손기정과 남승룡이 올림픽 마라톤에서 나란히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손기정과 남승룡은 감격도 하지 않았고, 환호도 하지 않았다. 뛰는 동안 내내 자신의 발을 괴롭히던 일제의 신발을벗어 놓고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시상대에 올라서도 손기정과 남승룡은 내내 고개를 숙였다.
스타디움에 일장기가 오르고 일본 국가가 연주되자 손기정은 우승자에게 주어진 월계수 꽃다발로 자신의 옷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렸다.
꽃다발조차 없던 남승룡은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다.
1936년 8월 9일,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서서 나라를 빼앗긴 설움에 남몰래 울던 손기정과 남승룡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만 한다. 마라톤에 대한 우리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만이 그날의 조선 청년 손기정과 남승룡에게 그나마 아주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손기정은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태어나 열 여섯살 때부터 압록강을 건너 중국 단동을 오가며 일을 했다. 가난 때문에 차비가 없어 늘 걸어 다니고 뛰어 다녀야만 했다. 그는 마라토너가 됐고, 올림픽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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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호미숙-자전거랑 사진여행[호미호미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호미숙 호미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