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가운)과 녹색(수술복)은 오랫동안 의료계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색으로 통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같은 ‘색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백의의 천사’들이 컬러 옷으로 갈아입은 지는 이미 오래다.
90년대 중반부터 알록달록해지기 시작한 간호사 가운은 이제 컬러 간호사복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인터넷시장에서 광고경쟁을 벌일 만큼 일반화됐다. 오히려 새하얀 간호사복을 찾아 보기가 힘들 정도다.
이런 흐름이 최근 들어 의사들에게도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그동안 주로 개인병원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의사들의 ‘패션 마케팅’이 최근에는 대형 종합병원과 제약사, 각종 대국민 의료캠페인 등 의료·제약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의료계가 권위를 벗고 세련된 복장으로 고객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는 것.
연세대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은 새 병원을 신축하면서 옷도 조금은 색다른 ‘양복형 가운’(사진)으로 갈아입었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종전의 긴 가운과 달리 길이를 40㎝가량 짧게 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멋스러움을 한껏 살렸다.
강남에 국내 최대 규모의 새 병원을 짓고 있는 가톨릭의료원도 의사 가운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를 위해 구매 담당부서에 전담팀을 구성, 의료진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등 분석작업에 들어갔다. 보수적 성격이 강한 가톨릭의료원이 의사들의 복장을 바꿀 경우 상당한 파급이 예상된다.
이같은 ‘패션 마케팅’은 단순한 복장변화에 그치지 않고 의료단체들이 펼치는 대국민 인식 극복 캠페인의 주요 홍보수단이 되고 있다.
한국여자의사회는 최근 창립 50주년을 맞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자선 패션쇼를 열었다. 입양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뜻에서 30대부터 80대까지, 전공의·대학총장·교수·병원장 등 여의사 50여명이 모델로 나서 큰 관심을 끌었다.
매년 9월 ‘전립선암 예방-블루리본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대한비뇨기과학회도 캠페인 기간에 전국의 모든 비뇨기과 의사들이 블루리본으로 디자인된 넥타이를 매고 진료하는 이색행사를 벌여 주목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의료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히 그동안 일반인들과 괴리된 이미지가 강했던 의료계에 패션 마케팅이 도입되면서 호응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