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8. (충청수영성)
퇴직 후 두 번째 맞는 추석, 자영업을 시작하고 첫 명절이다. 명절을 아이처럼 기다리면서 철없던 어린 시절 이후 명절을 이렇게까지 기다려본 적은 처음인 듯싶다. 평일에는 어떠한 경우라도 고객의 입장에서 휴업하기가 여간 옹색하고 어렵지만 명절이라는 명분 있는 휴업이니 편안한 휴식이라 여겨진 까닭이리라. 결혼하여 분가를 하고 양가부모님이 떠나시고 나니 형제들의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제는 본가에서 모이는 명절 풍경은 오래된 추억이 되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명절이면 버겁고 힘들다는 생각이었건만 지나고 보니 잠깐이었고 정겨운 시절이었으니 지금의 이 시절 또한 스쳐지나가는 순간의 추억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제는 다가오는 명절도 소중하고 기다려진다. 또한 시절이 변하고 있으니 내 자신이거나 아이들에게 부담되지 않는 명절을 만들고자 몇 해 전부터 가깝거나 멀거나 여행을 즐기며 가족의 안부를 살피는 우리 집만의 명절정서가 되었다. 올해도 여전히 딸아이는 윗 지방에서 내려오고 우리는 서해안을 따라 올라가 충남 보령쯤에서 만나 추석을 보내기로 하였다. 추석을 충분히 남겨두고 숙소와 여행지를 검색하여 계획을 짜는 일 또한 나 혼자 먼저 답사를 하는 듯 설레고 재밌는 일이다. 그렇게 한 밤 두 밤을 세며 기다리던 연휴가 시작되고 아들과 남편이 함께 동행하는 연휴 첫 날의 여행을 출발하였다. 우리는 딸아이의 가족과 만나기 전 셋이서 먼저 도착하여 충청수영성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아이들과 동행하다보면 번거로움도 배가 되며 또한 아이들의 눈높이와 맞지 않은 부분이 있어 우리끼리의 한 코스를 더 잡은 것이다. 충청수영성은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계절마다 또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생각을 해온 곳이지만 딱히 경유지가 마땅치 않아 미루고 있었다. 마치 이번 명절 가족모임의 장소가 보령이어서 첫 번째 관광지로 계획하고 들르기로 하였다. 이른 점심식사를 하고 도착한 수영성은 생각했던 것보다 주변이 시골마을이고 한적한 편이라 다들 그냥 자리 있는 곳에 주차하는 분위기라서 우리도 덩달아 대충 근처에 차를 주차하였으나 지정된 주차장이 없다보니 오히려 불편했었고 오히려 돌아오는 길에 앞차가 움직이지 못할 상황에 이러러 곤혹을 치르기도 하였다. 충청수영성 입구에는 “동백꽃 필 무렵 촬영소“라는 표지판이 있고 성곽길 따라 걸을 수 있는 입구 계단이 여유로움을 더해주었다.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망화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답사를 한다. 해동지도의 수영, 조선후기 보령현 지도, 대동여지전도에 크게 그려진 건물이 영보정(永保亭)이라한다. 바다가 절벽 위에 그려져 있어 한 눈에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1896년에 충청수영이 폐영 되면서 없어졌는데 영보정 위치로 추정되는 곳에 새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객사인 운주현과 내삼문은 오천초등학교에 있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란다. 근대에 들어 도로개설이나 호안매립 등으로 인하여 훼손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충청수영성은 나머지 성지뿐만 아니라 이곳 주변 이형이 거의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목적에서 마련된 충청지역 수군지휘부로써 충남의 수군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지역 해로 요해처에 배치되었던 수군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역사적으로나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또한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답게 어디서 촬영을 했는지 팻말들이 요소마다 있고 최상단인 영보정까지 가게 되면 오션 뷰가 펼쳐진다. 수영성답게 일대가 광활하면서도 시원스럽게 경관이 펼쳐져 있었다. 다만 영보정이 수리중이라서 영보정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다소 아쉬웠지만 수영성에서 내려다 본 경관만으로도 충분히 매력 있는 곳이었다. 이곳 영보정은 우리나라최고 절경의 정자이며 다산 정약용 또한 이곳을 최고의 정자로 묘사했다는 선조들도 인정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렇게 관광지로 유명한 곳을 찾았다가도 뜻밖의 역사나 인물이나 지역의 가치성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니 이래서 여행은 떠날수록 매력이 있으며 돌아오는 매 순간마다 뿌듯하고 안온함도 있다. 오래 동안 벼르고 기대했던 충청수영성의 관광을 뒤로하고 우리 세 식구는 서울식구들을 맞으려 저문 해를 안고 대천해수욕장쪽에 마련된 숙소를 향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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