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보타산에 계시던 보살님이 오늘은 이 도량에 친히 왕림하셨다 하였는데
이 도량은 중생이 있는 현장을 말합니다. 고난을 당했을 때 언제 어디서든지 간절하게 부르면 그 소리를 관하여 신통의 묘한 힘을 보여 주시는 관세음보살님은 늘 중생과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마지막 구(句)의 첫구절을 보면 '금일(今日)'라 했는데
어떤 곳에서는 금조(今朝)라고 한 곳도 많습니다. 《석문의범(釋門儀範)》등 의식문을 보면 '금일(今日)'로 되어 있습니다만 앞 구절의 작야(昨夜)와 댓구를 이루어 금조(今朝)로 한 곳도 있음을 밝혀 둡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주련의 글은 관세음보살님으로부터 가피를 받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감읍하여 벅찬 감동으로 지은 글입니다. 바로 일엽관세음보살(一葉觀世音菩薩)님이 중생을 구제한 영험담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은이는 발해국의 어느 변방의 군수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연유를 요약해 이해를 도와 보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불교이야기>방에 올려져 있습니다.
옛날 발해국의 어느 변방에 한 군수가 있었는데, 외국의 배 한 척이 바닷가에 닿았는데 진기하기 이를 데 없어 바닷가로 나가 구경을 하고 있는데 배 안의 어떤 사람이 나와 군수에게 공손이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들은 바다 가운데 있는 나라 사람인데 일년에 한 차례씩 봉래산 신선이 처녀를 데리고 와서 자기 나라의 착한 연분이 있는 사람과 해상놀이를 한다고 하면서 그 신선이 군수와 연분이 있다며 배 안으로 초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수는 신선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배에 올랐는데, 타자 마자 쏜살같이 해중으로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군수와 백성들이 놀라서 소리쳐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배가 일주일 가량 달려 섬나라에 닿았고 군수는 영문도 모른 채 그 나라 서울의 왕에게 끌려갔습니다. 왕의 탑전에 부복하고 있으려니 왕이 하는 말이 공주가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인지라 인황(人黃)을 써야만 나을 수 있는데 그곳에는 인황을 가진 자가 하나도 없는데 이 군수만이 인황을 가졌다는 말을 들었기에 데려왔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죽을 목숨이니 원망하지 말고 편안히 응한다면 죽은 후라도 벼슬을 주고 후세에 이름을 전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기지를 발휘하여 기꺼이 응하는 척하면서 살아날 방도를 강구했습니다. 사람의 황이란 것은 우황(牛黃)과 달라 고생을 하면 그 황이 마르는 법이라며 잡힐 때 너무 놀라고 고생을 해서 황이 마른 듯 하다며 이레만 휴가를 주고 조용한 곳에서 산해진미로 몸을 보양하면 황이 잘 번성하여 약이 될 것이라 아뢰었더니 왕은 그럴 듯 하다며 좋은 처소에 두고 음식을 잘 먹이되 달아나지 못하도록 감시를 잘 하라고 왕명을 내렸습니다.
군수는 어렸을 때부터 불법을 신앙하여 '관음경'을 매일 세 번씩 독송하고 관세음보살 성상을 붉은 연꽃 바탕에 그려서 항상 가슴 속에 호신불로 모셔온 독실한 관음신자였습니다.
군수는 이레 동안 불철주야 관음경을 외기로 결심하고 침식을 잊고 정진하였습니다. 이레가 되던 날 밤 그는 곤히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한 소복을 한 부인이 앞뒤 치마가 절반이나 젖은 몸으로 나타나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웬 잠을 그다지 곤하게 자느냐? 그만 일어나거라."
군수가 깜짝 놀라 깨어보니 부인은 간 데 없고 날이 환히 밝아 있었고 좌우를 살펴보니 자기가 늘 공무를 보던 발해국 변방 고을 동헌이었습니다. 하도 놀라워서 가슴에 모셨던 관세음보살 성상을 살펴보니 허리 아래로는 온통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지에서 살아난 군수는 걷잡을 수 없는 기쁨과 관세음보살님의 신통한 묘력에 감탄해서 글을 지었는데 바로 이 주련의 사구게입니다.
이 게송은 이와 같은 관세음보살의 영험이 있기에 관음법회 등 의식을 행할 때에 관세음보살님께서 법회에 왕림하셨음을 찬탄하는 게송으로 널리 애송하고 있습니다. 즉 관세음보살 가영(歌詠)이나 탄백(歎白)에 나옵니다.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 관음력을 항상 염하여 항상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세요. 나무 구고구난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 백우 _()_
첫댓글 관세음보살님의 영검에 경탄을 하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_()_
관음전에는 흔히 이 주련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요. 그런데 이 뜻을 정히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_()_
계속 반복되면 저절로 많은 법우님들이 이슬에 옷이 젓 듯이 훈습되지 않을까 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
감사합니다.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