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말 없는 소녀>
1.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안타까운 영화를 만났다. 사람들의 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 이야기하는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소박하고 잔잔한 장면을 만날 수 있었다. 섬세하고 깊은 감성을 지녔지만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던 한 소녀가 진정으로 사랑을 베풀어주던 사람들과 짧지만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 그것은 그녀의 일생을 지배하는 강렬하고 선한 각인으로 남을 것이다. 때론 그러한 기억이 현재의 고통을 더욱 배가시키는 슬픔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그녀는 결국 좋은 ‘사랑’이 주었던 기억의 힘으로 굳건하게 성장할 것이라 믿고 싶다.
2. 영화 <말없는 소녀>는 무관심하고 무뚝뚝하며 약간은 폭력적인 부모를 둔 한 소녀가 어머니의 임신으로 잠시 낯선 친척과 살게 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0살 안팎의 소녀 A는 집에서 특별한 아이로 취급받는다. 형제자매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침묵 속에서 살아가며 학교에서도 언제나 따돌림 신세이다. 그녀에게 세상은 온통 억압의 모습으로 다가올 뿐이다. 어느 날 어머니의 산달이 가까워지자 돌볼 아이를 줄일 목적으로 A는 아이를 잃고 부부만 살아가는 늙은 친척에게 잠시 맡겨진다. 조금의 애정도 없이 아이를 맡기고 떠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친척 부부는 아이를 가여워한다. 그렇게 시작된 세 사람의 동거는 ‘말없는’이라는 제목처럼 잔잔하면서도 고요한 침묵의 시간 속에서 전개된다.
3. 영화는 특별한 말이 없지만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들의 모습과 따뜻한 돌봄 속에서 점점 밝아지는 소녀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은 진정한 관심으로 상대를 대하면서 만들어지는 신뢰의 관계라는 점을 영화는 그려나간다. 아이의 머리를 찬찬히 빗어주고, 아이에게 집안일이나 농장일을 가르쳐주면서 아이는 조금씩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말없는’아이라고 따돌림받았지만 사랑을 받고 생활하면서 아이는 현명한 모습을 보였고, 필요할 때 필요한 말과 행동을 적절하게 하게 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아이가 말이 없다고 했을 때, 친척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필요할 때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현명한 아이야.” 사랑으로 연결되었을 때, 아이의 진정한 면모가 발견된 것이다.
4. 하지만 엄마가 출산을 하고 A가 돌아갈 시간이 되자, 무거운 침묵이 다시 그들을 감싼다. A는 돌아가고 싶지 않고 친척도 보내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는 없다. A가 떠나는 날,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일념에 물을 떠 오려다 웅덩이에 빠져 감기에 걸리고 만다. ‘헤어짐’을 마주한 소녀의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아이를 돌봐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는커녕, 감기에 걸린 것에 불평하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친척 부부는 돌아간다. 그때 A는 떠나는 친척 부부에게 뛰어간다. 그녀의 달리기는 농장에서 보낸 즐거웠던 추억의 달리기였으며, 짧지만 찬란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달리기였다. 영화는 친척의 품에 안긴 소녀의 모습과 소녀를 데리려 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동시에 편집함으로써 소녀의 아름다웠던 기억과 현재의 안타까움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사랑’을 맛본 사람에게 ‘사랑’이 없는 시간은 더욱 힘든 시간이겠지만, ‘사랑’을 알기 때문에 그녀에게 다가올 시간은 그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닐 것이다.
5. 영화 <말없는 소녀>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장면과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내면의 변화를 사소하지만 설득력있는 동작이나 대사를 통하여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사랑이라는 것이 결코 화려하고 요란한 표현이나 행동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에서, 상대를 안타까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을 알 수 없다는 현대적 담론과 문화 속에서 ‘말없음’도 충분히 진정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아니 오히려 ‘말없는’ 사랑이 진정으로 상대를 아끼고 소중하게 돌보는 방식일 수 있음을 영화는 증명한다. 영화의 장면 속에 흐르는 고요한 시간과 침묵의 장면은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라는 권고이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첫댓글 - 아름다운 만남 아름다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