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 답사(남양주 지역)
1. 경춘선은 70-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는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청춘의 뜨거움과 안타까움이 기차를 탔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각인’처럼 남아있을 것이다. 그만큼 ‘경춘선’은 낭만과 추억의 상징이었다. 과거의 기차는 현대식 전철로 변했고 추억을 소환하는 갖가지 장치들은 이제 사라졌음에도, <춘천가는 열차>라는 노래처럼 경춘선은 여전히 특별한 설렘을 동반하는 코스임에 분명하다.
2. 오늘은 경춘선의 ‘남양주’ 역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 곳은 서울과 가까운 관계로 가평이나 춘천 지역 역처럼 애틋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경춘선 전체 역을 살펴본다는 취지로 답사를 시작했다. <사릉역>에서 내려 <금곡역> 쪽 방향으로 걸었다. 중간에 ‘사릉’이 보였고 ‘연산군묘’가 안내되어 있다. 남양주는 어느 지역보다도 왕릉이 많은 곳이다. <금곡역>에서도 ‘홍유릉’에 대한 방향 안내가 있었다. 한때 왕릉에 대한 호기심으로 답사를 자주한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관심이 줄었다. 왕릉 특유의 호적함과 여유로움이 왕릉 답사의 장점이지만, 대부분 왕릉이 보호를 이유로 접근 금지인 경우가 많고 전형적인 시설이 주는 반복적인 느낌이 더 이상 특별한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가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돌을 찾는 여정’에서 대부분의 ‘왕릉’은 제외되어 있다.
3. <천마산역>과 <마석역>을 둘러보고 마석역에서 대성리역을 향하는 자전거길을 따라 갔다. 마침 겨울눈이 제대로 들과 길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폭설 수준의 눈은 귀가의 걱정도 잠시 잊게 하고 오로지 눈이 지닌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으로 스며들게 만들었다. 혼자서 <눈이 내리네>를 크게 부르며 어둠과 눈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장면 속을 묵묵히 걸었다. 진짜 겨울을 느낀다. 마석역은 남양주이고 대성리역은 가평에 속한다. 한 구간의 역이어서 1시간 안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상당히 멀다. 거의 2시간이 걸리는 코스였다. 걷는 동안 하늘과 길은 모두 어둠에 잠겼다. 만약 어떤 정보도 없다면, 갑자기 길이 주는 공포에 휩싸일 것 기분으로 어둠과 눈은 온 세상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제 약 1주일간 본격적인 겨울의 맛이 지속된다고 한다. 대성리역에 도착하고 나서 이제 청량리역 이후의 경춘선 역의 이름을 모두 기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처럼 ‘이름’을 기억하고 장소를 기억할 때, 그 곳은 나에게 <어린왕자>가 이야기했듯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첫댓글 - 어둠과 눈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장면 속을 묵묵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