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14세기
인류최초로 향이 발견된 것은 18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이집트의 파라오왕조의 무덤안에서이다. 석고로 만든 아라바스타 항아리에 채워진 향고는 20세기 발견 당시 은은한 향기로 남아있어 전세계인을 놀라게 하였다. 향고는 손에 묻히면 녹는 끈적끈적한 물질로 냄새는 느끼한 느낌으로 마치 미타리과 식물의 냄새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또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방부성을 가진 유향이나 보류성이 높은 방향성 수지를 사용하여 3000년 동안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per fume'이라는 향의 어원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이집트 왕조들은 마르지 않은 나일강처럼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향을 애용하였고 시체의 부패방지, 보존을 위해 약품으로 사용하였다. 이밖에 일반인들은 특별한 나무나 나뭇가지를 태운 향을 신에게 공물로 바쳤다
▶ 2-3 세기 향을 사랑했던 클레오파트라
로마에서 시저를 잃은 뒤 클레오파트라는 카레선 위에서 감송과 육계의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내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다. 그녀의 뛰어난 미모 뒤엔 언제나 향유와 향고가 있었다. 당시 그녀는 매일 시돈산 감송유를 몸선, 백합 등의 향내가 담긴 향유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그녀의 집에는 46시간동안 방향을 가득채워 늘 집안을 향기롭게 했고 향로가 들어있는 사탕과자나 음료수, 샤벳트 등을 즐겨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와 로마 등지로 퍼진 향수는 귀족계급의 기호품으로 사용되었다. 그만큼 원료재배와 제조기술이 일정 지역에 국한되어 향유와 향고는 고대 귀족들에겐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고, 그래서 일반인들이 향을 갖는다는 건 꿈이었다고 한다.
▶ 10-13세기 십자군원정
투르크족에게 빼앗긴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떠났던, 7차례의 십자군원정은 동,서유럽 무역의 활로를 개척하는 기회가 되었을 뿐 아니라 로마, 그리스, 이집트의 향을 서유럽에 소개한 중요한 계기였다. 되풀이되는 원정속에서 동,서의 교통도 점차 넓어지고 후추, 육계, 클로버 등 향신료가 급속히 서유럽에 퍼졌다. 1202년에 일어난 제 4차 십자군원정은 십자군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과 합세해 콘스탄티노플을 공격, 그 결과 동쪽으로 향한 지중해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렇게해서 베네치아는 동방무역을 통해 동양의 비단과 자수품, 향료등을 들여왔고 유럽에 향수와 화장품의 원료를 조달하는 창구이자 유럽에서 부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성지탈환을 위해 떠났던 십자군 기사, 바로 이들이 당시 종교적인 열망만큼이나 유럽전체를 향료내음으로 떠들썩하게 하게 만든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 14세기 포도주와 향
오늘날 향수가 발견된 것은 바로 포도주 때문이었다. 비법은 바로 '알코올', 어느 연금술사가 오랫동안 향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그 비법을 발견한 것이다. 금을 만드는데 실패했던 그들은 포도주 증류과정 중 알코올을 발견, 각종 향신료와 섞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물, 기름 등에 의한 기제보다 모든 방향물질을 용해하는 성질이 뛰어난 '알코올'은 휘발성향을 오래 유지시켜 줄 뿐만 아니라 원료로만 머물렀던 향료를 드디어 '향수'라는 개념으로 끌어올리게 했다. 한편 최초의 알코올 향수는 로즈메리와 수지를 증류시켜 알코올을 뽑아내고 여기에 증류과정에서 나온 로즈메리의 잔여물을 첨가한 '헝가리워터'인데 오늘날의 오데코롱의 전신이기도 하다. 1370년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만들었다는데 72세의 나이에도 폴란드 국왕의 청혼을 받았다고 할 정도이니 그 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15-17세기 콜롬버스
콜롬버스, 바스코다가마, 마젤란 등이 미지의 바다에 도전했던 이유는 향료군도를 찾기 위해서라는 사실. 단지 관세를 물지 않고 인도나 동남아 등지로부터 향료를 마음껏 가져오기 위해 서쪽으로 항해를 떠났던 것이다. 당시 후추, 계피, 전향유 같은 향료는 저장한 고기, 생선의 부패를 막아주고 맛을 좋게 할 뿐 아니라 페스트나 콜레라 등 전염병을 방지한다고 믿을 정도로 약품으로 이용되었고, 금 은 보화와 맞바꿀 수 있을 정도의 대단한 재화가치를 가졌던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만으로 망망대해에 몸을 던졌던 항해가들, 바로 그들 뒤엔 항해권을 독점해 막대한 재산을 챙기려는 당시 포르투갈, 스페인왕의 야망이 깔려있었다. 한편 1508년 이탈리아 프로렌스의 성마리베라의 도미니카회 수도사는 향료조제용 아뜨리에에서 파리 노트르담사원 근처에 제 1호 향수전문점을 연 이후 향료의 메카는 이탈리아에서 비로소 파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 17세기 프랑스에서의 가죽냄새
향수하면 프랑스, 그것도 파리를 연상시키곤 한다. 그러나 오늘날 향수 산업의 큰 획을 그었던 곳은 파리가 아닌 '그리스'이다. 남부 프랑스 지방의 해발 350m의 완만한 구름위에 풍부한 지중햇살이 비추는 곳, 그라스(Glass) 그곳에서 프랑스의 향수산업이 시작되었다. 바로 최적의 자연조건 탓도 있었지만 가죽특유의 지독한 냄새를 없애기위해 향유를 쓰기 시작했다. 12세기 무렵 그리스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가죽과 유리를 수출하여 공업과 상업이 번창하기 시작, 16세기말부터 본격적으로 향료산업에 뛰어들어 향기나는 장갑, 모자, 벨트 등 향료가 섞인 피혁제품을 유행시켰다. 이때 향기의 제왕이라고 불렸던 프랑스 루이 14세는 향료와 향수를 산업으로 크게 발전시켰다. 17세기 중엽에는 여성들은 향주머니를 즐겨차고 다녔으며 그 이후 파리에는 수많은 향료, 화장품 전문점이 열기 시작했는데 특히 '르네' 점이 유명하다.
▶ 19세기 합성향료의 시대의 대두
불과 150가지의 향과 향료를 오늘날 4000여가지 이상의 물질을 추출할 수 있게 한 19세기에는 다양한 제조방법으로 비로소 향수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특정계급의 귀족이나 부자들이 이용했던 시대에서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향수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화학적인 방법으로 식물, 동물 등의 미세한 부분까지 추출하는데 성공하여, 천연향료에서 동물성, 합성향료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맡아보지 못한 다양한 향수를 만들었다. 단순히 원료에 그쳤던 향수가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범위가 확대되었던 것이다. 한편 최초의 합성향료를 만든 프랑스 화학자, 모리나드는 귀족계급이라는 특정계급에 그쳤던 향을 대중들에게 퍼뜨리게 한 일등공신역할을 했다.
▶ 20세기 패션과의 만남
1921년 패션과 향수의 만남으로 향수시장은 전성기를 맞았다. 샤넬과 조향사 어네스트보우가 만든 '샤넬 no.5' 가 바로 그것이다. 그 이후 향산업은 패션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보여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비로소 향수산업은 패션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낸 향수와 유명인의 이름을 딴 이른바 향수브랜드 시대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