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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석코너 원문보기 글쓴이: 청심
양양 탐석 여행 2013. 02. 16[土] |
비움의 미학[美學]
얼마 전 부들초 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시는 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애석 생활을 시작한지는 2년여 남짓 밖에 안 되셨다는 부들초님을 처음 뵙고 대화 하면서 조선시대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에 오른 방랑시인 ‘김병연’을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김삿갓의 호는 ‘난고[蘭皐]’이고 별호가 ‘김삿갓’이다. 알려진 대로 자신의 집안 내력을 모르는 김병연은 과거에 응시하여 그의 할아버지를 조롱하는 시제로 장원급제를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들은 후 조상을 욕되게 하였다며 자책하여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한 그는 장원급제한 곳과 묘지가 강원도 영월에 있으나 태어난 곳은 경기도 양주이다.
내가 부들초님을 뵙고 ‘김삿갓’이란 실존 했던 인물(픽션도 가미 되었겠지만...)이 떠오른 이유는 수석을 취미로 시작하면서 주로 강원도 일원 지역으로 탐석을 다니셨고 지금까지 즐기셨다는 다양한 취미 생활의 정서가 낚시 등과 현재 진행형인 수석[壽石]을 즐기는 과정이 전국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일이고 김삿갓이라고 알려진 초상화를 보면 공교롭게도 부들초님과 씽크로율[synchronization] 100% 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래서 지난 번 영종도 탐석을 다녀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헤르메스님께서 부들초님의 닉네임을 바꾸어 드리라고 나에게 숙제를 주셨다. 그래서 떠오른 인물이 방랑 시인 김삿갓인데 그 첫째 이유는 앞에서와 같이 김삿갓과 많이 닮으셨다는 이유이고, 두 번째는 애석 생활을 시작하며 주로 탐석을 다니신 곳이 강원도 일원이며, 마지막으로 님의 현재 닉네임이 ‘부들초’인데 내가 생각한 ‘부초[浮草]’의 한자말 풀이가 방랑 생활을 했던 김삿갓의 생애와 오버랩 되며 현재의 닉네임과 흡사한 어감에 따라 ‘부초’라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핸폰 문자로 의견을 여쭈니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 다행이다.
지난 13(日)에 양양 탐석을 다녀 온 뒤로 27[日]에는 영종도도 함께 다녀왔었다. 영종도 탐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부초님께서 얼마 전 경기 광명시의 모 갤러리에서 “영종도 산지석을 접했었는데 크기와 칼라도 좋아 소장하고 싶어 오늘 그런 작품을 부지런히 찾았는데 못 찾았다” 며 아쉽다는 말씀을 하시기에 마음이 걸렸다. 그래서 문득 내가 탐석하여 소장하고 있는 크기도 좋지만 모암과 칼라가 좋아 나름 아끼던 동 산지석 작품이 떠오르기에 선물로 드리겠다고 일방 약속을 하고 며칠 뒤에 전해 드렸다. 그런데 마음에 드셨는지 답례로 술 한 잔 함께 하자는 문자를 주셨기에 개인적으로 술은 좋아하지는 않지만 흔쾌히 약속을 하고 13일 저녁 시간에 세진님과 함께 관악구 신사동에서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석담[石談]을 나누었다. 사실 술 한 잔은 구실이고 이렇게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취미 생활의 별미가 아니겠는가? 또한 석정[石情]을 바탕으로 교류한다는 것은 더 없이 이상적인 만남이라는 소견이다.
그 선물석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부초님의 말씀과 같이 상호 정보도 교환하고 도움을 준다는 의미에서 석정을 베푸는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애석 생활하는 본질의 의미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이해관계가 배재된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한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말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취미생활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궁극적으로 주는 사람이 즐겁고 받는 사람이 더 즐거운 석정[石情]을 나누는 과정인 것이다.
내가 수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20여 년 전에 모 원로님으로 부터 받은 한 점의 선물석이 계기가 되어 그때 그 잔상[殘像]이 너무도 크기에 역설적으로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선물하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애석 생활을 해온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애석 생활의 근간은 이해관계가 없이 선물하는 과정 즉, 석정을 베풀고 좋은 취미라 여겨지는 것에 대하여 주변 지인들을 겨냥한 홍보 그 자체로, 작품의 좋고 나쁨을 떠나 좌대까지 만들어서 애석인과 비 애석인 및 직장 동료 혹은 이웃사촌 등에게 수석 작품을 선물한 개수가 1,000여 점은 족히 넘겠다.
사실 석실 탐방을 다니다 보면 일부 아타까운 애석인을 쉽게 접하게 된다. 나름 추억이 있고 감상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겠지만 그 것도 어느 정도이지 심지어 어떤 곳은 고물상 수준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어차피 인간은 유한한 삶으로 인하여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예견된 일이고 우리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 또한 처음 주인은 자연이었거늘 자연의 나이에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찰나의 시간 동안 잠시 우리가 빌려서 보관하고 즐기고 있는 것임을 상기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도 과거도 그랬고 지금도 비우고 있는 중이지만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10년, 20년 잘 즐겼으니 다른 시작하는 젊은 예비 애석인 들을 위하여 가져온 곳 즉 자연으로 되돌리라고 감히 충고하고 싶다. 그래서 새로운 것과 빈자리가 또 아쉬우면 자연을 벗 삼아 정서적으로나 건강에도 좋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탐석을 즐기며 새로운 것을 만나 규모도 적게 또 채우면 되는 것을...... 채우고 계속 채우기만 한다면 본디 인간의 한없는 욕심은 끝이 없는 동물이기에 절제의 미, 비움의 미학[美學]이 아쉽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집 무너질 일 있는가?
2월 16일[土] 부초님과 또 양양 탐석을 계획하였다. 탐석 가기 전 날 관악구 조원동 소재 맛 좋기로 소문난 ‘남도 추어탕 족발’에서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애석인들과 번개팅이 있었다. 상호 오랜만에 만난 석우[石友]이기에 이어지는 석담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애주가의 술잔 움직임이 바쁘다. 좌로 부터: 그랑피아님, 헤르메스님, 부초님, 세진님, 청야님, 초행자님 다음 날 04:30 명가(홍건표)님도 함께 만나 전 날 부초님께서 과음을 한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내가 운전하겠다며 서울을 출발하였다. 그런데 올림픽대로를 진입하는 흑석동에서 승합차의 시동이 갑자기 꺼진다. 순간 당황하였지만 애마의 주인이신 부초님은 지금까지 이런 현상은 없었고 별 이상이 있겠냐며 염려 말라고 하시기에 올림픽 대로를 진입하여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일기 예보와는 다르게 피부로 느껴지는 추위가 좀 덜하여 마음이 가볍다. 그런데 고속도로 끝 지점인 홍천IC를 통과하면서 또 시동이 꺼진다. 재차 시동을 걸고 진행하는데 1km도 못 가서 또 시동이 꺼지기를 반복하여 칠흑 같이 어두운 국도 변에서 상당히 난감하였다. 그래서 차량 정비 전문가이신 세진님께 새벽 전화를 하여 현재의 차량 증세를 설명하니 겨울에 장기간 주차한 디젤 차량에서 흔히 보이는 증세로 연료 펌프가 얼었거나 수명이 다하여 발생되는 현상이니 공업사에 가서 수리 조치를 받으란다. 그런데 강원도 국도변에서 그 것도 이른 시간에 영업 중인 공업사를 찾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다급한 심정으로 공업사를 찾을 생각에 인제읍으로 들어갔으나 07:00경에 영업 중인 곳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보험사에 연락을 하였더니 출동한 기사도 연료 펌프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으로 미봉책으로 임시 조치를 취해 주며 신속히 수리를 받으란다. 어쩔 수 없이 시속 50km 내ㆍ외의 거북이 속도로 진행하면서도 연료 분사가 많이 필요로 하는 경사로에서는 어김없이 시동이 꺼지기를 반복하면서 양양 산지에 도착하니 10:00경으로 계획했던 시간 보다 3시간 늦게 산지를 도착한 것이다.
아무튼 긴장되고 고생은 하였지만 확 트인 동해의 바다와 돌밭을 보니 예상치 않았던 변수들로 인한 고생을 보상 받는 기분이었다. 양양 산지 전경 부초님의 망중한 물 씻김이 좋아서 담았다. 흐름이 좋다. 좌: 명가님, 우: 부초님 좌: 명가님, 우: 본인(청심) 좌로 부터: 명가님, 부초님, 본인(청심), 설봉님 귀로에 산지 인근에서 사업장을 운영하고 계시는 설봉님을 만났다. 언제나 함박웃음으로 일행을 맞이해 주시는 설봉님이 정겹다.
부초[浮草] / 청심
세월 따라 흘러가며 호탕하게 노닌대도 병들고 시들해져 강과 바다를 돌고 돌아 들 꽃도 무성한 무심한 세월을 떠도는 김삿갓인가?
한 잔의 취기에 방황하며 부초 같은 인생을 안주 삼아 천년 근심을 안고 살아가는 정처 없는 나그네 걸음은 갈지자 되어
물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따라 자연에 유기된 돌[石]을 친구 삼아 세월을 표류하는 부초 같은 형[兄]이시다. 좌: 본인(청심), 우: 부초님 |
첫댓글 늘 좋은 만남 을 갖고 계시는 청심님이 있기에 방랑자는 더욱 즐거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