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김정효 씨(56ㆍ서울 용산구 한남동)는 요즘 주가가 조금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억원을 투자했던 주식을 아들에게 증여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주식 가격이 폭락해 지금은 3500만원쯤 하는 것 같아 3000만원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증권의 경우 3000만원 이하일 경우에는 신고할 필요도 없고 증여세를 낼 필요도 없이 증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차 59㎡ 아파트를 갖고 있는 정학영 씨(가명ㆍ59)는 이 아파트를 아들에게 증여할 계획이다. 정씨는 "재건축에도 시간이 걸릴 것 같고 또 내년에 증여세율이 인하되면 증여세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불황으로 자산가치가 하락하자 이를 '증여' 기회로 활용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주식의 경우 가치가 떨어진 지금 증여할 경우 증여세를 크게 줄이거나 안 낼 수 있고 또 미래 가치 상승분까지 고스란히 넘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진 데다 증여세율을 현행 10~50%에서 6~33%로 인하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어 증여가 활기를 띠고 있다. 또 종합부동산세 가구 합산 과세가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종부세를 줄이기 위해 배우자에게 증여하려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정학영 씨가 가지고 있는 개포동 주공1차 59㎡를 가격이 14억9000만원이었던 지난해 증여했을 경우 4억2200만원을 증여세로 내야 했다. 하지만 11억6500만원으로 떨어진 올해 증여할 경우 증여세는 2억9400만원으로 30% 이상 줄어든다. 여기에 내년부터 증여세율이 인하되면 증여세는 1억3660만원으로 67% 이상 줄어들게 된다.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가구에서 증여를 시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씨는 "집을 어떻게든 처분해야 하는데 팔 경우 내야 하는 양도세가 부담스러워 이참에 아들에게 증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PB센터에도 최근 들어 고객들의 증여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증여는 증여세율 인하가 확정될 내년 이후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인하된 증여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철 신한은행 PB그룹 세무사는 "증여에 관심을 가지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며 "증여세율 인하가 확정되고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지면 증여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가구별 과세를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종부세를 줄이기 위해 배우자에게 증여하려는 2주택 보유자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사는 정 모씨(51)는 한 통신회사 주식을 7000만원어치 구입했다 지금은 그 가치가 30% 이상 하락했다. 정씨는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팔까 고민하다 이를 딸에게 증여하기로 했다. 정씨는 "증여세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금 증여하는 자산이 5000만원 정도지만 이것이 또 크게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이 미래를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일반인뿐 아니라 기업 오너들도 불황을 증여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자료를 보면 주요 그룹과 중견 기업 오너의 미성년자 자손들이 최근 잇따라 주식 매수에 나서고 있음이 확인된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손자ㆍ손녀는 10월 31일과 11월 3일 주식 3710~3910주를 증여받아 주주로 이름을 올렸고, 정몽선 현대시멘트 회장 1994년생 손녀도 최근 보유 주식 수를 늘렸다. 최평규 S&T그룹 회장 1995년생 장남은 11월 14일 그룹 지주회사인 S&T홀딩스 주식 4만여 주를 매입하면서 보유 주식을 17만주로 늘렸다. 배종민 문배철강 대표이사 1999년생 아들도 10월 28일 5000주를 사들여 지분을 6만1050주로 늘렸고 이필웅 풍림산업 회장은 10월 15일과 17일 보유 주식 505만주 중 115만주를 아들 이윤형 전무 등 친인척 8명에게 증여했다. 불황을 증여 기회로 활용하는 것은 자산가들에게 고전적인 방식으로 꼽힌다. IMF 외환위기 이전인 1997년 증여세 신고자는 3만4150명이었으나 IMF 충격으로 경기가 바닥을 친 1998년에는 4만8639명으로 크게 늘었다. 1999년과 2000년 다시 3만명대로 줄어들었다가 2001년과 2002년 다시 4만9000명과 5만5000명대로 증가했는데 이 당시에는 IT 거품이 꺼지면서 코스닥 주식을 증여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2004년에는 증여세 신고자가 무려 10만3024명으로 늘어났는데 이는 그해 12월 가구별로 합산되는 종부세가 도입되면서 이를 회피하려고 증여를 활용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불황기에는 증여세 신고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더라도 자산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총 증여세액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그만큼 증여세를 줄일 수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악의 불황이 될 내년에도 증여를 하려는 사람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