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352장 십자가 군병들아(Stand up, stand up for Jesus)
작사 : 조지 더필드(George Duffield, 1818~1888)
작곡 : 조지 웹(George James Webb, 1803~1887)
이 찬송가의 가사를 작사한 더필드 목사는 1818년 미국 펜실바니아 주의 카리슬에서 태어났다. 그는 예일 대학과 유니온신학교를 졸업하였고, 목사가 된 후에는 부룩클린, 필라델피아등지에서 목회하였다. 당시는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부흥회가 개최되었고 뛰어난 부흥사도 많이 배출되던 시기였다. 1858년 필라델피아에서는 더들이 타잉(Dudley A. Tyng)이라는 목사가 혜성처럼 나타나 놀라운 영적각성운동을 일으켰다. 타잉은 당시 감독과 교회의 젊은 목사(29세)로서 대단한 웅변가였다. 또한 그는 노예제도 폐지의 열렬한 주창자로서 끊임없이 반대파의 암살 위협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던 목사였다.
1858년 3월 30일 부흥회 기간 중 그는 운집한 5,000여 명의 청중에게 출애굽기 10장 11절의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는 말씀으로 설교를 아였다. 그날의 설교로 1,000명 이상의 결신자가 생겼다고 한다. 그로부터 4일 후 타임 목사는 일꾼들이 옥수수 터는 것을 보러갔다가 한 쪽 팔이 기계에 말려 들어가 절단되었고, 과도한 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타잉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더필드 목사는 며칠 전 부흥집회에서 열변을 토하던 타잉 목사와 그의 설교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에서 영감을 받아 집에 돌아와 “십자가 군병들아...”를 작사하였다.
이 찬송가의 곡조는 작곡가 웹이 1837년 작곡한 가요“동이 트고 종달새 우네”로서 이것은 당시 스미스 목사가 작사한 찬송시 “예수의 전한 복음”에 붙여져 널리 불리고 있었다. 1864년 더필드 목사가 연합군 사령부의 초청을 받아 그곳에 설교하러 갔을 때, 그는 사병들이 낯익은 가사를 “예수의 전한 복음”이라는 찬송가 곡조에 맞추어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때서야 그는 군악대에서 군가처럼 불리던 찬송시가 사실은 자신의 것임을 깨달았다.
이 찬송은 **「십자가 군병들아」**로, 그리스도인을 영적 전쟁에 부름받은 그리스도의 군사로 묘사하면서,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복음과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충성할 것을 권면하는 찬송입니다.
해설
1절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기 들고 앞서 나가
담대히 싸우라 주께서 승전하고 영광을 얻도록
그 군대 거느리사 이기에 하시네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여기서 ‘십자가 군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또한 로마서 6:13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따라서 ‘일어나라’는 말은 영적으로 잠들어 있지 말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깃발 들고 앞서 나가 담대히 싸우라」
성경에서 군대의 깃발은 소속과 지휘체계를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름을 위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에서 싸우는 사람입니다.
시편 60:4은“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영적 싸움에서 필요한 것은 인간적인 용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담대함입니다.
에베소서 6:12은 우리의 싸움이“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라고 가르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사람을 적으로 삼는 싸움이 아니라 죄와 사탄과 악의 세력에 맞서는 영적 싸움입니다.
「주께서 승전하고 영광을 얻도록」
전쟁의 최종적인 승리자는 인간이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5: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성도의 싸움은 자기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싸움이어야 합니다.
「그 군대 거느리사 이기게 하시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가 싸우지만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14:14에서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찬송은 인간의 능력을 강조하는 찬송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의지하는 찬송입니다.
2절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그 나팔 소리 듣고
곧 나가서 싸우라 수 없는 원수 앞에 주 따라 갈때에
주 예수 힘을 주사 강하게 하시네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1절과 동일하게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과 사명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어난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적 결단이 아니라 복음의 사명을 실제 삶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나팔 소리 듣고 곧 나가서 싸우라」
성경에서 나팔은 하나님의 백성을 소집하거나 중요한 사건을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민수기 10:2은 나팔을 만들어 회중을 소집하도록 했습니다.
신약적으로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듣고 사명을 수행하는 공동체입니다.
오늘날 성도에게 들려오는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 없는 원수 앞에 주 따라 갈 때에」
그리스도인은 원수가 많고 환경이 어렵더라도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6:12은 영적 원수의 실체를 말합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나 성도는 원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주 예수 힘을 주사 강하게 하시네」
이 찬송의 핵심적인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베소서 6:10: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우리의 힘으로 영적 싸움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주의 능력으로, 주의 힘으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3절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네 힘이 부족하니
주 권능 믿으라 복음의 갑주 입고 늘 기도 하면서
너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라
3절은 특히 에베소서 6장의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네 힘이 부족하니 주 권능 믿으라」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스가랴 4:6: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인간의 재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3:5:“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을 믿어야 합니다.
「복음의 갑주 입고」
여기에는 에베소서 6장의 전신갑주가 배경에 있습니다.
5에베소서 6:13–17에서 바울은 성도에게 다음과 같은 무장을 명령합니다.
전신갑주 의미
진리의 허리띠 진리 안에서 살아감
의의 호심경 그 리스도의 의를 의지함
평안의 복음의 신 복음을 전할 준비
믿음의 방패 사탄의 불화살을 막음
구원의 투구 구원의 확신과 소망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
따라서 ‘복음의 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무장하여 세상의 죄와 사탄의 공격에 맞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늘 기도하면서」
전신갑주를 설명한 다음 바울은 곧바로 기도를 강조합니다.
에베소서 6: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즉 영적 전쟁에서 기도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무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1)고 하셨습니다.
「너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라」
모든 성도가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각자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2:“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따라서 목회자는 목회자의 자리에서, 장로는 장로의 자리에서, 집사는 집사의 자리에서, 성도는 성도의 자리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했느냐보다 맡겨진 일에 얼마나 충성했느냐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4절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이 날에 접전하고
곧 개가 부르라 승전한 군사들은 영생을 얻으며
영광의 주와 함께 왕노릇 하리라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마지막 절에서도 다시 한번 일어나라고 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이 일회적인 결단이 아니라 끝까지 지속되는 싸움임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10:36:“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이 날에 접전하고 곧 개가 부르라」
여기서 ‘개가(凱歌)’는 전쟁에서 승리한 군사가 부르는 승리의 노래를 뜻합니다.
성경에는 승리 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5장에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신약에서도 마지막 승리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은 그리스도의 최종적인 승리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성도의 현재의 싸움은 최종 승리가 보장된 싸움입니다.
「승전한 군사들은 영생을 얻으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성도가 싸워서 영생을 벌어 얻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3:16:“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찬송의 표현은 구원받은 성도가 믿음 안에서 끝까지 충성한 결과로 영생의 완성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영광의 주와 함께 왕노릇 하리라」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종말론적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함께 성도가 왕 노릇할 것을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5: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또한 디모데후서 2:12:“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그러므로 이 찬송의 마지막은 현재의 고난 → 믿음의 싸움 → 승리 → 영생 →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광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 절의 성경적 구조
이 찬송을 설교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매우 아름다운 구조가 됩니다.
① 1절 — 일어나라
십자가 군병으로 부르심
② 2절 — 싸우라
주님의 힘으로 영적 전쟁
③ 3절 — 무장하라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기도
④ 4절 — 충성하라
끝까지 싸워 승리와 영광에 참여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받은 성도는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권능으로 무장하여 기도하며 맡은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