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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진直進”의 사전적 의미는 “똑바로 곧게 가다.”입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나아가는 자세, 선택한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태도, 역경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의지 등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William Ernest Henley는 열두 살 때 결핵성 골수염을 앓았습니다. 열일곱 살 때는 왼쪽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견디기 힘든 혹독한 시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아프리카 공화국 8대 대통령Nelson Mandela이 27년이나 이어진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외웠다는 “불굴, 정복되지 않은”등의 뜻을 가진 제목Invictus의 시를 썼습니다.
Out of the night that covers me,
나를 덮은 이 밤의 어둠 속에서,
Black as the pit from pole to pole,
남극에서 북극까지 깊은 구덩이처럼 검은 이 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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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fell clutch of circumstance
어쩔 수 없는 환경의 손아귀에 걸려들어도
I have not winced nor cried aloud.
나는 굴하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Under the bludgeonings of chance
우연이 내리치는 위험 아래에서도
My head is bloody, but unbowed.
내 머리는 피투성이지만, 굽혀지지 않았다.
Beyond this place of wrath and tears
분노와 눈물의 이 땅 너머엔
Looms but the Horror of the shade,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And yet the menace of the years
세월의 위협이 다가와도
Finds and shall find me unafraid.
나는 두려움 없이 맞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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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제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절대로 굽히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맞서며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정복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어려서부터 극한의 슬픔을 알아버렸다는 그鄭浩承는 일곱 번째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수록되고,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면서 국민시 반열에 올라서게 된 “수선화에게”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수선화는 물속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 응시하다 죽음을 맞게 된 청년이 꽃이 되었다는 신화Narcissus에서 유래했습니다. 꽃말은 “자기애, 자존심, 고결, 신비, 외로움” 등입니다. 사실, 인간은 모두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입니다.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현듯 찾아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만 외로운 것은 아닙니다. 새도 외롭고, 산그림자도 외롭고, 종소리도 외롭습니다. 시인은 하나님마저도 외롭다고 노래합니다.
겨우 열두 줄밖에 되지 않는 시를 통해서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무려 일곱 번이나 사용하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외롭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왜 외로운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그의 주장대로, 외로움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됨의 조건입니다. 외로운 것이 정상입니다. 오히려 외롭지 않은 것이 비정상입니다. 특히, 시인은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라고 노래합니다.
오지도 않을 전화를 기다리면서 외로움을 키우지 말라고 노래합니다. 차라리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고 노래합니다. 당장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삶이 어떠하든 살아내라고 노래합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외로움의 반대말은 누군가를 기다리다 마침내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길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 상관하지 않고 쉬지 않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만남이 아니라 걸어감입니다.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나아가는 자세입니다. 오랫동안의 심사숙고 끝에 선택한 길을 쉬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태도입니다. 피눈물을 흘려야 할 정도로 지독한 역경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의지입니다.
곧 직진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누구도 보여줄 수 없고, 누구도 갈 수 없는 외롭고 고독한 길을 평생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돌아보고 묵상하는 사순절 절기 세 번째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같은 지위를 가지셨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높이지 않으셨습니다. 지위에 따르는 이익을 누리려고 고집부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때가 되자, 오히려 하나님의 지위를 버리셨습니다.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종의 지위를 취하셨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철저히 당신을 낮추셨습니다. 겸손과 순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삼 년 반 동안 이어진 공생애 내내 쉬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온갖 병든 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고쳐주셨습니다. 귀신들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서서 함께 먹고 마시며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이라고 자처하던 자들의 삶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야 했었지만, 자취를 감춘 채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던 사랑과 자비를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베풀어주셨습니다.
당시 세상을 호령하고 있었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와 편견은 물론 온갖 견제와 회유와 위협과 압박에 굴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맞서 진리를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영원한 죽음과 저주와 지옥 불구덩이라는 파멸로 몰아붙이는 허물과 죄를 스스로 짊어지셨습니다. 단번에 해결하기 위해서, 육체적으로는 초주검이 될 정도로 엄청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정신적으로는 죽는 순간까지도 따르겠다고 다짐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해서 떠나버리는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영적으로는 영원 전부터 완벽하게 하나였던 하나님과 분리되는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직진하셨습니다. 사도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a)라고 외쳤습니다. “믿음의 주ἀρχηγός”는 “시작하게 하는 지도자, 길을 먼저 여는 개척자” 등의 뜻입니다. 탐험대 선두, 군대 선봉, 길을 개척하는 사람 등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거룩한 희생을 통해 영원한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만들어주는 믿음의 길을 처음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이τελειωτής”는 “완성하는 사람, 끝까지 이루는 사람” 등의 뜻입니다. 영원한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만들어주는 믿음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길은 저와 여러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걸어가셨습니다. 믿음은 저와 여러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습니다. “바라보자ἀφοράω”는 “시선을 고정하고 집중하여 바라보다, 목표를 바라보다” 등의 뜻입니다. 다른 것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오직 한 대상만 집중해서 바라보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믿음의 주인 동시에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직진하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12:1b)라는 증거에 따르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직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무거운 것ὄγκος”을 버려야 합니다. 이는 “무게, 부담, 덩어리” 등의 뜻입니다. 지나친 걱정, 세상 욕심, 부끄러운 습관, 끝없는 집착, 영적 게으름 등을 가리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경주할 때면 달리는데 방해가 되는 무거운 옷은 물론 각종 장식과 불필요한 물건까지 모두 다 벗어 던져버렸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마라톤대회에 참석하는 선수들은 일반 러닝복보다 훨씬 얇고, 겨우 50-100g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공기저항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몸에 완전히 밀착되고, 땀이 빠르게 마르는 소재의 상의를 입습니다. 짧고, 옆이 크게 갈라지고, 허벅지 움직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초경량의 하의를 입습니다. 탄성력이 대단히 뛰어나고, 추진력을 증가시켜 주고, 가볍기까지 한 러닝화를 신습니다.
거기다 마찰 방지와 통기성이 좋은 양말까지 신습니다. 최근에 벌어지는 마라톤 경기 기록이 빨라진 이면에는 달리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최대한 제거한 첨단 복장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직진하기 위해서는 방해하는 모든 무거운 것들을 절대로 아까워하거나 아쉬워하지 말고 반드시 제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직역하면 “쉽게 둘러싸는 죄 또는 쉽게 얽히는 죄”입니다. “쉽게 얽히는easily entangling, 계속 달라붙는easily besetting, 집요하게 붙는clinging”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다 결국 넘어지게 만드는 거짓말, 음란, 분노, 교만, 두려움 등 하나님을 외면한 채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죄를 가리킵니다. 덩굴이 발을 감아 넘어지게 만드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솔직하게 인정하고 제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직진하기 위해서는 인내로 경주해야 합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를 직역하면 “인내를 통해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자”입니다. “인내ὑπομονή”는 단순한 참음이 아닙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경주ἀγών” 역시 단순한 달리기가 아닙니다. 치열하게 벌어지는 힘든 경쟁이나 싸움을 가리킵니다. 특히 경주는 단거리가 아닙니다. 마라톤입니다. 인내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달리자τρέχωμεν”입니다. 명령이 아닙니다. 권면입니다. 공동체적입니다.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궁금해집니다.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12:1a)입니다. 전후 구절을 볼 때, 그들은 믿음의 선배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나아가는 제사를 통해서 믿음을 나타냈습니다. 여호와와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부르심에 순종하여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갔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아들을 여호와께 희생 제물로 내놓았습니다. 나이가 많았음에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약속의 후손과 언약을 믿음으로 계승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바로의 자리를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믿음으로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믿음으로 성민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며 민족을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위험과 어려움을 감수하며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약속의 성취를 직접 보지는 못했었지만 믿음으로 기대했습니다. 후대에 믿음의 본보기가 되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삶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큰 격려가 됩니다. 도전이 됩니다. 다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구름같이 둘러싸고 있는 믿음의 선배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환경과 상황과 조건이 자신의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을지라도 절대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절대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은혜 안에서 값없이 선물로 주어진 믿음으로 힘을 내자고, 함께 달려보자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은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b)라고 이어집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삶을 시작하고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못 박히시는 십자가 사건 이후에 이루어지게 될 영원한 구원의 완성과 하나님께 드려질 거룩한 영광은 물론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기쁨을 바라보셨습니다. 그것을 위해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셨습니다. 조롱과 모욕과 수치를 개의치 않고 감당하셨습니다. 가장 높고, 가장 권위 있으며,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현재의 고난 뒤에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구원의 기쁨과 영광이 있다는 사실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모든 무거운 것들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잠시도 망설이지 말고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주어지는 상황의 좋고 나쁨과는 전혀 상관없이 믿음을 시작하고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직진하는 것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완성될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께 돌려질 영광까지 묵상하고 또 세상은 줄 수 없는 참된 위로와 격려를 받고 용기까지 낼 수 있는 복된 사순절 절기를 보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