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게 두렵지 않은 노후 삶의 터전은 어디서 누구와 늙어갈까.
동아일보, 서영아 기자, 2022. 11. 6.
지난달 23일자 디지털 100세 카페 ‘실버타운에 꽂힌 50대 한의사 부부’ 기사는 조회수(63만 회)도 상당했지만 비판적인 댓글이 무척 많았다. 무엇보다 주인공 부부가 말하는 실버타운과 독자들이 저마다 머릿속에 그리는 실버타운이 너무도 달랐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아 입소하는 요양원과 혼동되거나 미인가 시설들과 헷갈리는 듯한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 기회에 한국의 노인주거복지 현황을 점검하고 노후 주거의 요건에 대해 생각해보자.
1. 실버타운에 대한 법적 규정 없다.
‘실버타운’이란 용어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주거복지시설은 양로시설,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의 세 가지가 전부다. 양로시설은 다시 유료와 무료로 나뉜다. 법적으로 말하면 한국에 ‘실버타운’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속칭 실버타운이라고 하면 고령자를 위한 아파트 혹은 레지던스 같은 시설을 뜻한다. 100세대 이상 규모에 각자 자기 집에서 살면서 공동식당과 피트니스센터 사우나 도서관 등 커뮤니티시설을 이용하고 의료 인력이 상주하며 주민들의 건강을 돌본다.
자립생활이 가능한 건강한 시니어(부부중 한사람이 60세 이상)들이 입주하며 모든 비용은 입주자들이 부담한다. 공동식당이 있지만 각자 집에서도 취사가 가능하다.
이런 시설은 전국에 약 40곳인데, 대부분은 노인복지주택으로, 일부는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돼 있다. 엄밀히 말해 실버타운은 관련 통계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계통체계 없이 방치돼 있었다.
예컨대 명실상부한 최고급 시설인 ‘클래식 500’은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돼 있다. 수원 유당마을과 경기 용인 노블카운티는 당초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됐다가 노인복지주택으로 변경했다. 국내 첫 시니어타운인 유당마을이 생긴 1988년 당시 노인복지주택이란 개념이 없고, 유료 양로시설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분양형’과 ‘임대형’ 노인복지주택이 생겼지만 부실운영으로 문닫는 곳이 속출해 사회문제화하자 2015년을 기준으로 분양형이 폐지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인복지주택으로 인가받았지만 실제로는 아파트로 변질된 실버타운도 여럿 있다. 커지는 관리비부담을 이유로 식당이나 커뮤니티 시설 운영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과 실버타운 기능을 기대하고 입주한 주민들 사이 갈등을 빚고 있다.
2. 실버타운과 요양원은 다르다.
여기에 작은 요양시설들이 너도 나도 ‘실버타운’이란 이름을 쓰고 있어 혼란을 부추긴다. 개중에는 미인가 시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낸 2022년 노인복지시설 현황을 찾아보니 정원 10인 이하 작은 양로시설 이름에 ‘실버타운’이 붙은 곳이 무척 많았다. 독자들이 각자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기준으로 실버타운에 대해 정의내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참고로 흔히 요양원이라 불리는 요양시설은 ‘의료’복지시설에 속한다. 장기요양 1~2급과 3급 일부에게 입소자격이 주어지고 장기요양보험의 지원을 받는다. 거주자가 모든 비용을 내는 실버타운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이지희 사무국장은 “일정 규모를 갖춘 유료 양로시설과 노인복지주택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서 시니어타운(실버타운)만의 법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단체는 나아가 혼란의 근원이 되는 실버타운이란 호칭 대신 ‘시니어타운’이라 부르자고 주장하고 있다.
3. 건강 그 이후에 대비하는 美은퇴자 커뮤니티, 日 유료 양로원이 있다.
사실 실버타운을 직역하면 고령자(silver) 소도시(town)로, 미국의 은퇴 커뮤니티를 가리킨 말이다. 1960~70년대 건설업자들이 기후 좋은 지역에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은퇴자들을 모집했다. 이런 은퇴자 커뮤니티가 2만개 넘게 생겨났다.
이중 1960년대에 아리조나에 세워진 은퇴 커뮤니티 ‘더 선 시티(인구 2만 6000명)’나 이를 본따 플로리다에 조성된 ‘더 빌리지(인구 12만 여명)’는 ‘타운’을 넘어 ‘도시’ 규모로 몸집이 커지고 있다. 이런 곳들은 중산층 정도의 자산과 현금흐름만 있으면 ‘평생 수고한 은퇴자가 백만장자처럼 여생을 즐기는 공간’이라 불린다.
시니어타운은 건강할 때 입소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은퇴자 커뮤니티에는 지속적 돌봄(Continuing Care and Retirement Community: CCRC)이라는 개념이 작동 중이다.
시니어들이 건강하게 입주해 일정 수준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받으며 건강을 지키고, 건강이 악화되면 타운 내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노화 정도에 따라 △자립생활형 △직원이 가사를 돕는 형 △24시간 간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으로 주거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4. 빈 곳 많은 한국의 노인주거복지주택 정책이다.
미국만큼 땅이 넓지 않은 일본에서는 유료 노인홈이 발달했다. 과거에는 건강이 나빠지면 노인홈을 퇴소하고 간병이 가능한 시설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개호(돌봄과 간병)가 지원되는 ‘특정시설생활개호’ 지정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같은 노인홈에서 살면서 개호가 필요해지면 그 시설 직원에게 서비스를 받는 방식인데, 이 경우 개호 비용은 개호 보험에서 지원해준다. 입소자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을 줄이고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시니어타운은 건강할 때에만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부 요양시설을 갖춘 시설들(유당마을 더시그넘하우스 삼성노블카운티 시니어스타워계열)이 있지만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많이 든다.
장기요양급여 중 시설급여는 노인의료복지시설(요양원,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2019년부터 시니어타운에서도 방문요양 방문목욕 방문간호 등의 재가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장기요양 3~5등급이 여기 해당된다. 하지만 1~2등급을 받아 집중적인 요양이 필요하면 시니어타운을 나와 요양원으로 옮겨야 한다.
5. 최초 입주연령 80세 이하로 제한하는 곳 늘었다.
공빠TV의 문성택 씨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웬만한 시니어타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한다. ‘삼성 노블카운티’ ‘더시그넘하우스’ 등 최고급 시니어타운들이 올해부터 최초입주 연령을 80세 이하로 제한하고 있으며 대기 기간 2년을 감안해 78세 이하까지만 대기 리스트에 올려준다는 것. 내년부터는 모든 실버타운이 이런 원칙을 도입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일단 들어간 뒤에는 100세가 넘더라도 다른 문제가 없다면 생활할 수 있다).
2014년 실버타운 현황을 망라한 저서 ‘실버타운 간 시어머니, 양로원 간 친정엄마’를 펴냈던 이한세 스파이어 리서치 앤 컨설팅 대표는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실버타운이 여유가 있었는데 최근 서울경기 지역은 꽉 찬 상태다. 그렇다보니 연령제한이나 인터뷰를 강화하는 등 입주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배경에는 고령화의 진전, 시니어 타운에 대한 인식 변화도 있지만 아파트가격 급등도 한몫한 듯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삼성 노블카운티가 문을 연 2000년대 초만 해도 서울 압구정동 30평대 아파트를 팔아야 입주보증금을 냈는데, 아파트가격이 10배 오르는 동안 입주보증금은 거의 제자리를 지켰다“는 것. 서울 웬만한 지역에 아파트를 가진 고령자라면 집을 전세주기만 해도 그 돈으로 시니어타운 보증금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지희 사무국장은 중산층을 위한 시니어타운이 늘어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저소득층은 무료 양로시설이나 고령자 임대주택도 늘어나고 있지만 중산층은 사회적 부양(扶養)에서 소외된 감이 있다”며 “다양한 주체가 시니어타운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중산층 고령자들의 요구를 충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시니어타운은 노후를 생각하는 시니어에게 여러 선택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
6. 한국 고령자 절반 이상, 거동 불편해져도 내 집에서 살고 싶다.
실제로 고령자들이 원하는 것은 내 집에서 늙어가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노인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79.8%는 ‘내 집’에서 살고 있다. 또 78.2%가 독거나 부부만인 노인 단독가구였다.
응답자 대다수(83.8%)는 건강할 때까지는 현재 집에서 거주하기를 원했고, 56.5%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31.3%는 노인을 위한 요양시설 등을 이용하고 싶다고 했는데, 가족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정든 집에서 최후까지 지내겠다는 바람은 다른 많은 선진국 노인들에게서도 확인된다. 정부도 사회적 부담을 고려해 시설이 아닌 가정이나 소규모 지역사회에서의 케어를 권장한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지역포괄케어’라 해서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퇴직 즈음해서 고령자가 살기 좋은 형태로 대대적인 주택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유행이다.
집안에서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고(배리어 프리), 욕실 바닥에 미끄럼 방지 시공을 하고 손잡이를 여기저기 다는 등. 일본 정부는 고령자주택 리모델링 비용을 개호보험에서 지원해준다.
7. 세계적 추세는 ‘내 집에서 늙어가기(Aging in place)’이다.
살던집에서 이웃과 소소한 도움 주고 받으며 늙어가는 길을 택한 사람들도 있다. 미국 보스턴에서 태동한 ‘비컨힐 마을(Beacon Hill Village)’ 모델이 그것이다. 진짜 ‘마을’이 아니고 2000년대부터 미국 베이비부머가 만들어가는 도심 속 느슨한 공동체다.
처음에는 이곳에 사는 은퇴자 10여 명이 만나 “더 나이를 먹더라도 은퇴자 공동체나 노인전용 요양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자기 집에 머물면서 정든 친구들과 교류하며 힘닿는 데까지 살고 싶다”는 데 생각을 모았다.
늙어서 겪는 소소한 불편을 서로 돕기 위해, 이들은 비영리단체 ‘비컨힐 마을’을 만들고 사무직원을 고용했다. 과거라면 가족이 해오던 일을 이웃들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 2002년부터는 일반 회원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연회비(소득과 가입 형태에 따라 110~675달러)를 받았다.
회원들은 큰일을 할 때 필요한 일손을 찾도록 서로 돕는다. 회원과 젊은이로 구성한 자원봉사자들에게 장보기나 가정 방문, 반려 동물 돌보기, 가벼운 집안일, 간단한 수리 등을 부탁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이웃들과 교류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즐긴다.
홈페이지 구석구석에는 “병원에서 퇴원해 돌아오니 모르는 사람이 내 저녁식사를 만들어 가져다줬다”거나 “60대 이웃이 공항까지 태우러 와줘 무사히 귀가했다”는 80대의 감사인사 등이 넘쳐난다.
8. 나이드는 게 두렵지 않은 노후 삶의 터전은 무엇인가?
노후라 해도 건강하고 활력 있는 시기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건 무리가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필요해지는 시기가 온다. 지금은 별 부담 없는 세 끼 식사준비가 버거워질 수도 있고 간병이 필요해지는 시기도 온다. 배우자와 사별해 어느 한쪽만 남게 되는 경우 등 예기치 않은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나 또는 배우자의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일본 최고의 노후설계사로 꼽히는 요코테 쇼타는 저서 ‘노후의 연표(나이드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중앙북스)’에서 노후 주거에 대해 어디에서(도시, 시골, 해외) 누구와(부부, 자녀와, 혼자) 어떤 집(주택, 아파트, 임대, 노인홈 등 돌봄시설)에서 살지 생각하고 늦기 전에 실행에 옮기라고 권한다.
그의 추천은 자녀와 살던 큰 집은 정리하고 병원 쇼핑 외출을 고려해 교통이 편리한 작은 아파트로 옮기되 자녀와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형태다.
고령이 될수록 시간이 남고 활동 폭이 적어짐에 따라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기 쉬워진다는 점에서 이웃과 친구, 갈 만한 장소 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노년기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반드시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화두다.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건강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동아일보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