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눔 자원봉사를 다녀와서.
새 학기에 고2 담임을 맡게 되면서 야심찬 계획을 준비했다. 아이들에게 성적과 대학 이외의 세상에 대해서도 그들의 순수와 열정이 필요함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주말을 이용해서 첫 외출을 시도했다. 그곳은 마라톤 대회장이었다. 각자의 능력과 컨디션에 맞춰 레이스를 선택하게 했고, 완주의 기쁨과 목표를 향한 땀방울, 그리고 몸에서 전해오는 강한 심장의 박동을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나도 할 수 있구나. 세상엔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구나.” 라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옛말도 있듯이, 이번에는 그 여세를 몰아, 아이들과 1박 2일 봉사활동을 준비했다. 숙식을 같이 하면서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의 숨은 끼와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솔모루성당에서 전국 장애인 봉사캠프에 참가했던 인연을 통해서 알게 된, 성가정의 집 세실리아 수녀님께 불쑥 전화를 드리고, 우리 아이들과 제가 할 수 일이 있을까 조심스럽게 여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마침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릴 장애인 마라톤대회에 도우미 역할을 부탁하셨다.
우리 아이들과 학급에서 장애우와 함께 하는 봉사활동에 대해서 걱정 반 우려 반 함께 의견을 나눠가면서 나는 우리 사회의 밝은 희망을 발견했다. 아직 부모님 품을 벗어나 본 경험도 적고,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은 애들이라 생각을 했건만, 많은 아이들이 동참을 하겠다고 했고, 성격 급한 녀석들은 벌써부터 때를 쓰기 시작한다.
우선 부모님들과 학교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 봉사활동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음을 역설했고 선뜻 허락을 받아냈다. 그다음부터는 아이들과 함께 장애우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우리가 배려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조심해야 될 것, 봉사활동 간에 마음가짐 등등 사전 교육을 실시했다.
애들은 사전 교육보다는 1박 2일 버라이어티를 연상하고는 들뜬 기분에 어서 출발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막상 허락을 받았지만, 과연 애들이 잘 할 수 있을까? 괜히 장애우 식구들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 행사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 순간 번뜩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뭐? 주님이셨다.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그 부족함을 채워주시리라는 믿음과 은총을 간구하였다.
놀토 금요일 오후 출발 당일! 부담임 선생님과 나, 그리고 우리 귀염둥이 17명은 마중오신 마르코 선생님의 봉고차에 타고 성가정의 집을 향했다. 벌써 마음은 그곳에 있었다. 애나 어른이나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점은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은 성가정의 집에 도착하는 순간,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우리 세실리아 수녀님의 소개교육을 받고, 1박 2일의 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아마도 많은 말씀을 해 주셨지만, 특히 “학생여러분은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소중한 사랑 나눔에 동참하셨습니다. ”라는 말씀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또한 1박 2일 동안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실 수 있기를 기도해 주셨던 점에 감사드린다. 덕분에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었기에. 그리고 짝이 될 장애우 언니 누나들에 대해서 자세한 정보를 수녀님으로부터 듣고, 메모하고 숙지하려는 아이들의 맑은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저녁 석식 시간, 아이들과 장애우 식구들이 첫 대면의 순간이었다. 얼굴엔 긴장감이 역역했다. 시선을 맞추질 못했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침묵이 흘렀다. 난생 그렇게 어색한 식사시간은 처음인 듯 아이들은 식당을 벗어나기 바쁘게 저희들끼리 쑥떡쑥떡.... 나 역시!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잘 이끌어 갈지 걱정이 앞섰다.
일부의 여자아이들은 설거지를 하거나, 식당 정리를 하고, 남자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실외 조경작업을 했다. ‘저마다 열심이다. 그래! 주님을 믿어 의심치 말자! 모든 걸 주님께 맡기자. 아이들도 저마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일을 것이다. 믿자! 애들을.’ 이렇게 마음을 추스르고 숙소에서 집을 풀고 아이들 방배정과 세면시간을 줬다. 그리고 마르콘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장애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추가로 보충 설명을 해주셨다. 아이들의 마음가짐이 저마다 굳은 결의를 한 듯하다. 자신 있단다. 그래 믿자. 내가 너무 늙은이 흉내를 내는 것은 아닌지 자꾸 뒤통수가 멋쩍다.
내일부터 새벽 4시 30분부터 강행군이 기다린다. 긴장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과 한 자리에 모였다. 각자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진실게임도 하고, 또 약간의 경품(?)을 준비해서인지 노래도 한 곡씩 멋들어지게 부른다. 그렇게 아이들과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D-day 새벽 4시 30분! 비몽사몽간에 아이들을 집합시키고, 세면하고 간단히 출발 준비를 했다. 산속이라 서늘한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장애우 언니 누나들이랑 야외 나들이하기에 참 좋은 날씨라 생각했다. 우리 식구들 잘 다녀오라고 주님께서 힘써 주셨나보다.
각자 오늘 짝이 된 언니 누나들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오른다. 몇몇 언니들은 힘이 센 녀석들이 번쩍 안아 차에 태우고, 그렇게 출발 준비를 마치고 서울로 버스는 출발하였다.
버스 안에서 나들이 하는 언니들을 위해서 아이들은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함께 한 언니들에게 간식 드시는 것도 거들고, 다정하게 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언니와 함께 다정한 포즈를 취하면 셀카를 찍는 녀석들, 그렇게 봄나들이는 즐거움이 그득했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출발을 서둘렀건만 마라톤 행사장에 도착하니, 해는 중천에서 떠 있고 한 낮의 태양은 뜨거웠다. 마치 장애인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우리 모두의 마음처럼. 출발 기념 단체촬영을 하고 출발선에 섰다. 어떤 아이는 휠체어를 밀고, 또 다른 아이들은 언니 누나의 두 손을 꼭 잡는다. 성가정의 집 언니 누나들도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대회에 임하는 열정만큼은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태세다.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에 함께 저마다의 속도에 맞춰 정해진 코스를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함께 한 자원봉사자들의 격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으며, 그렇게 행복한 레이스를 펼쳤다.
때 아닌 무더위에 성가정의 집 언니와 누나들은 얼굴이 상기되고, 이마에 땀방울도 매쳤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삶의 희망을 품고 환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그 모습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거리의 시민들에게도 모두 감동을 주었고, 사랑 나눔은 이렇게 행복함인 것을 실감하게 했다.
마지막 결승점! 완주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언니 누나들과 아이들의 환한 미소는 미술관의 명화보다도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렇게 모두 몸성히 오랜만의 봄나들이를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해서 가졌던 기우는 멀리 던져 버리고, 화창한 봄날 식구들과 함께 한 모두의 마음에는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 깃들었다. 또한 건강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그 축복을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은 충만될 수 있음을 깨닫는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들을 배웅하시는 수녀님의 웃는 모습에서 우리들의 1박 2일 사랑 나눔이 저마다와 성가정의 집 식구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아이들도 식구들과 헤어지는 아쉬움과 다음에 꼭 한 번 다시 오리라는 약속을 뒤로하고 포천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아이들은 말한다. 우리가 언니 누나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우리들이 더 많은 것을 얻어왔다고, 바로 마음의 평화, 삶에 대한 감사, 등등
성가정의 집 식구들 , 그리고 병상에 계신 보나 원장님, 세실리아 수녀님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 모두모두 건강하시고 주님의 평화 안에서 기쁜 하루하루를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009년 5월 10일
포천 송우고 교사 이재봉 스테파노
봉사활동을 다녀와서.hwp
첫댓글 좋은 글 감사드려요 그 때의 순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네요 학생들에겐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했는데 첫 만남에 많이 어색했지만 헤어질땐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선하신 뜻이 선생님을 통하여 더욱 풍성하여 지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