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화폐에 새겨진 “In God We Trust” 라는 문구가 등장한 지 50주년을 맞아 미국 헌법상 제정분리원칙 위반여부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미주지역 기독일보에 따르면, 냉전시대에 무신론적 공산주의의 위협에 직면했던 미국이 1957년 10월 1일에 처음으로 화폐에 등장시키기 시작한 “In God We Trust” 문구는 이후 1984년에 등장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2003년 갤럽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인 90%이상이 동전에 넣는 구절에 찬성 의사를 표했으며, 2004년 또 다른 리서치에는 미국인 다수가 “Under God”란 구절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것에 동의했다. 그런데 2006년 인디아나 주에서 한 반기독교주의자 마이클 뉴도우라는 사람이 “In God We Trust” 와 관련한 반대의견을 제기해 법정 공론화를 통해 논란을 일으킨바 있다고 한다. 다른 법정에서는 특정한 4구절 “In God We Trust"를 인용하지하지 않더라도, 미국 내 법, 교육 시스템을 통해 창조주를 연상케 한다는 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가 고수하고 있는 기독교 지지입장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을 공식적으로 언급해 불신자를 배척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비판과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국인이 “In God We Trust"라는 모토가 대다수 미국인에게 창조주를 연상케 하며, 자국의 풍부한 신앙적 유산을 인정하게 한다고 더 퓨 포럼 Religion & Public Life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땅은 원래 셈족인 인디언들의 땅이었지만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들어온 청교도들에 의해서 개척되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성경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뿌리치고 척박한 땅에 들어와 풍토병과 열악한 환경과 싸우면서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그들은 1620년 9월 신앙의 성별을 위해 메이플라워호에 올라탄 102명이 그해 12월 아메리카 대륙에 무사히 도착한 후 10년 사이 1만8천 명의 이민자들로 인구가 불어났으며, 그리하여 청교도 지도자들은 경건한 새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시민권을 가진 이민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인이어야만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들은 이주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순결과 선을 위함”이라고 했다. 그 후 계속해서 오직 성경에 약속된 자유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려는 믿음의 사람들이 신대륙을 많이 찾아들었다. 오늘날 400년이 채 못 되는 미국 역사의 정신적 지주는 바로 청교도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탄생 이래 서구 문명국가 중 유일하게 교회와 국가의 분리 원칙에 기초하여 세워진 나라이다. 그러나 현재 이민자들은 신앙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과 불평등 그리고 안락함과 자녀교육 등 기타 이유로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되자 원래의 목적과 취지는 차츰 차츰 퇴색해 버리고, 온갖 잡신들을 가지고 들어온 이민자들과 함께 창녀 교회인 카톨릭이 다시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정치를 “가증한 음녀들의 어미”에게 다시 허락하고 말았다. 미국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이기를 포기한 지 오래 된 것이다. 이제는 시민들의 인권에 눌려서 “In God We Trust”라는 국가적 신앙의 모토마저 사라져버릴 날이 도래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시민의 권리가 무엇보다도 우선시되고, 창조주 하나님을 얘기하면 차별이니 강요니 하면서 반발하는 사악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들의 입술로 다양성을 외치면서 왜 하나님만은 안 된다는 것인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 강요하는 것이 되는 것인가?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만한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에 그처럼 혼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외쳐대는데 뭐가 그리도 잘못 되었단 말인가? 악령에 사로잡혀있는 이곳 미주지역사람들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하루 종일 욕지거리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루 종일 기쁠 때나 감격스러울 때나 기분 나쁠 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혼돈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에 몇 년 전 물의를 일으켰던 강의석이라는 청년이 미션스쿨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사건이 있었다. 법정은 강의석 군에게 학교가 배상하라는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건학 이념보다 개인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강의석 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인권 앞에서는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육하고자 하는 뜻으로 세운 학교가 성경보다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의 법적 잣대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한 것이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는 말씀은 진리이다. 해 아래서 행해지는 일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것이다.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미국이든 한국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권을 앞세워 창조주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이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내가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을 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의 고통이라』(전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