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봄비가 웅산行을 가로막다.
(속내를 들어 내지 않는 새벽하늘에 겁먹고 주저앉다)
광주는 어제 하루 종일 고만고만하게 봄비가 내렸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일대에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지만
이번 비는 오늘 오전까지 계속되다 그치고 중국대륙에서 불청객인 황사가 불어올
것이라는 기상청예보가 있었다.
고비사막에서 황사를 날라 오는 서풍(西風)은 예전에는 토양에 양분을 공급하는
순기능을 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또한 일본열도를 거쳐 불어오는 봄날의 습한 동풍(東風)도 새싹을 깨우고 목마른
초목에 갈증을 풀어주는 봄비를 데려오는 전달자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서풍에 실려 오는 중금속을 걱정하고,
동풍에 섞여오는 방사성물질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생각해보라! 비 그친 그 자리에 모래바람 불어온다는데,
우리 모두가 무서운 동풍, 답답한 서풍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은 경남 진해시, 창원시에 걸쳐있는 웅산을 산행하는 날이다.
웅산은 금광산악회에서 정기적으로 매년 이맘때 쯤 다녀왔던 山인데, 시가지와
해군기지주변에 심어진 수많은 벚꽃이 피기시작하면서 벚꽃이 피는 계절에 맞춰
진해군항제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벚나무는 팔만대장경의 목판 재료로 쓰일 만큼 재질이 좋은 나무다.
하지만 일본의 國花라는 이유로 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벚나무는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이다. 제주도와 화엄寺주변의 왕벚나무자생지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국민식수(植樹)에 의한 애림의식을 높이고, 山地의 자원화를 위해 제정한 식목일도
지난 지 3일이 되었다.
식목일 날 전국 각지에서 국민들이 정성들여 심은 어린나무가 이번 비로 잘 자리기를
기대해본다.
이 날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해 화창해진다는 청명(淸明),
청명과 식목일이 같은 날에 들어있어 가뜩이나 바뿐 봄날 일정(日程)을 대변해 주고
있는 요즘이다.
농가에서는 바쁜 농사철로 들어가는데 논밭의 가래질, 논밭 둑 다지기, 보리밭 매기,
채소 파종 등을 시작하느라 일손 구하기가 힘들 정도란다.
찹쌀로 빚은 청명주(淸明酒)를 마시고, 또 이때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한 해
동안 먹을 간장을 담그기도 한다.
서해에서는 곡우 무렵까지 작지만 연하고 맛이 있는 조기잡이로 성시(盛市)를
이루기도 하였다.
웅산은 높이가 670m이며, 곰山, 시루峰이라고도 한다.
산세가 가파르고 잡목림이 울창하며 동쪽의 화山, 서쪽의 장복산과 한 능선으로
이어지며 東南쪽 진해만으로 흘러드는 아홉 내와 北西쪽 마산만으로 흐르는 남천의
발원지이다.
해군사관생도들의 훈련코스로도 이용되는 시루峰은 천자峰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함경도에 살던 성이 李씨인 사람이 조상의 묘지를 구하기 위해 명당자리를 찾아
전국을 돌다가 이 봉우리에서 큰 구멍이 두 개 뚤 린 좋은 묘 자리를 발견하였다.
두 개의 구멍 중 첫째 구멍에 묘를 쓰면 자손 중에서 임금이 나고,
둘째 구멍에 묘를 쓰면 천자가 나올 명당이었다.
이 씨는 하인인 주 씨에게 자기 조상의 유골을 둘째 구멍에 놓도록 일렀다.
그러나 하인은 주인 모르게 자기 부친의 유골을 둘째 구멍에 묻고 주인이 준 유골은
첫째 구멍에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 첫째 구멍의 후손 중에 조선 태조인 이성계가 태어나고, 둘째 구멍의 후손 중에
明태조인 주원장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주원장(1328-1398년)은 이성계와 거의 동시대 인물로 중국 명나라를 세우고 명태조가
된 인물이다.
그제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로 일컫는 한식(寒食)이었다.
한식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기원은 중국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이보다는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로 불을 만들어 쓸 때
이에 앞서 일정 기간 옛 불을 금한 예속(禮俗)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청명과 한식이 겹치거나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아 차이 없음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농가에서는 이날 농작물의 씨를 뿌린다고 했다.
어제부터 내린 비는 여전하다.
새벽에 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어둠을 핑계로 그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전 중에 비는 갠다고 했지만 방사성물질이 섞인 황사가 한반도로 유입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방사성물질이 불어와도 극미량으로 인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전국에 내린 빗물을 분석한 결과 전국 11곳에서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되었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세슘도 검출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비옷에 우산까지 쓴 사람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죄다 마스크를 하고 있다.
이런 살벌한 모습을 신문과 TV에서는 사진과 영상보도로 내 보내고 있다.
서울과 일부지방에서는 초등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내가 바라보는 하늘처럼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한다.
“여보! 도시락 쌀까요?”
아내가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데,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약이라도 올리려는지 한낮도 채 되기 전에 하늘은 맑게 개이고 해가 나왔다.
문뜩 바라보니 꽃피는 소리가 세상에 가득한 봄날이다.
하얀 목련, 노란개나리, 붉은 진달래, 분홍벚꽃이 시나브로 꽃망울을 터트린다.
매화가지는 흰 꽃을 이고 설원처럼 펼쳐있다.
한줄기 봄바람에 ‘후드득“ 꽃비가 내리는데 진짜 비도 내리고 있다.
몰아치는 비바람이 꽃의 단명을 재촉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만, 꽃이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의 詩, 낙화에서)
한식은 지났지만 해코지하던 귀신들이 하늘로 올라가 “손”이 없는 날이라는데
이제라도 조상님 산소 찾아가 성묘하고 무덤을 돌봐야겠다.
망월동시립공원묘지에 누어있는 둥근 무덤들 그 위에 우우우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잔디를 보아라,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피어나는 4월이다.
부지깽이를 거꾸로 꽂아도 새싹이 돋는다는 생명의 달이 아닌가.
(2011년 4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