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에서는 전국이 폭염으로 몸살을 앓는 요즘에도 군불을 때고 산다. 해발 450m 고원이어서 아무리 무더운 여름에도 밤만 되면 산에서 내려오는 한기에 으스스하기 때문이다.
무릉리는 해발 800m 이상의 산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 운일암·반일암 등 집채만한 암석이 절경을 빚어내고 명덕봉(846m)과 명도봉(863m) 사이에 주자천 계곡이 5㎞가량 이어진다. 밤이 되면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어둠속에서 반딧불이가 춤을 춘다. 기암절벽에 청산옥수(靑山玉水)라더니 이곳이 딱 그 형국이다.
- 하늘엔 별 숲엔 반딧불이 -
무릉리는 중국 송나라때 난을 피해 조선으로 건너온 한 학자가 이곳에 도착, ‘동쪽 오랑캐(東夷) 나라의 무릉도원같다’고 해 붙여진 무릉이(武陵夷)라는 이름이 변형된 것이다. 실제 무릉리를 처음 방문해 산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본 사람은 누구나 ‘아, 이곳이 무릉도원인가’하며 감탄을 뿜어낸다.
무릉리는 백제시대 군사훈련장으로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정감록’는 외세의 침략때 피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은신처로 무릉리를 꼽고 있다. 그만큼 산 기운을 받는 곳이라는 얘기다. 일제시대때는 무릉리에 지금보다 4배나 많은 주민이 살았다. 농촌이 그렇듯 이곳도 급속도로 쇠퇴의 길을 밟아온 것이다.
주민들은 무릉리를 일으켜세우는 길을 그린투어리즘에서 찾았다. 그 불은 1990년 서울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내려온 박희종·남궁선순 부부가 지폈다. 이들 전직 교사부부는 무릉리의 서늘한 기후가 천혜의 자연자원이라며 이것을 도시민들에게 팔자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울창한 숲과 차가운 물을 자원으로 삼아 자연비경과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팔자고 10여년을 설득했다. 일교차가 큰 환경에 잘 자라는 당귀, 백궁, 더덕 등을 심어 특화하자고 역설했다. 73가구 주민 185명 중 대부분이 60~70대 노인층이어서 그린투어리즘을 이해시키는 데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어 무릉리를 찾는 도시민들은 매년 조금씩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1,000명을 넘어섰다. 2002년에는 진안군으로부터 ‘으뜸마을’로 선정됐고 2003년에는 농림부의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됐다.
농림부 이봉훈 서기관은 “무릉리는 고원 특성을 잘 반영해 고랭지 농사체험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지역 어메니티(amenity)와 경관 보전에 매진하는 우수마을”이라고 평가했다.
- “무릉도원 따로있나” 감탄 -
무릉리는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방문자센터와 황토방, 체험농장 등을 만들었다. 또 군의 지원을 받아 복숭아나무 4,000그루를 가로변에 심었다. 무릉리 방문객이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자는 전략이다.
최근 대전 서구 탄방동 주민들이 무릉리를 찾아 무릉리 주민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대전시민이 무릉리에 원하는 것과 무릉리 주민이 대전시민에게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28일에는 전주 송촌동 주민들이 방문했다. 화가·문인 등도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전남대 최수명 교수는 “자연자원과 주변 명승지와 연계해 농산물과 관련된 이벤트 마련이 무릉리가 도약할 수 있는 계기”라고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유상오 전문위원 399635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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