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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미술관 원문보기 글쓴이: 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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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는 앵그르와 들라크루아의 대립적인 화풍을 적절히 익힌 테오도르 샤세리오(Theodeore Chasseiau)의 제자로서 전통적인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화가였다. 그러나 기존 고전주의 양식과는 사뭇 다른 그의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는 곧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Joris Karl Huysmans)와 같은 상징주의 문학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위스망스는 모로를 개성 있고 창조적인 화가로 칭송하는 한편 1884년에 발표한 자신의 소설 [거꾸로 A Rebours)]에서는 [환영]에 대해 여러 페이지에 걸쳐 묘사했다. 모로는 살로메처럼 치명적인 매력의 여성 이미지뿐만 아니라 아름답지만 연약한 남성과 자웅동체와 같은 양성적인 성적 이미지 역시 자주 그렸는데 이러한 모로의 작품들은 당대 상징주의자들뿐만 아니라 훗날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과 같은 초현실주의자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모로와 함께 샤세리오의 제자였던 당대 최대의 벽화가 피에르 퓌비 드 샤반(Pierre Puvis de Chavannes) 역시 진보적인 미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화가였다. 그의 작품은 언뜻 보면 고전적인 풍경과 인물들이 등장하는 아카데미 형식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하고 정적인 구성, 제한된 색채로 섬세한 내면의 감정을 표현한 한 편의 함축적인 시와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그 자신은 상징주의자가 되기를 거부했으나 그의 기질과 성향은 상징주의에 지극히 부합했다. 퓌비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위스망스가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반발심이 생기지만 어떤 매력이 느껴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며 그와 자신이 갖는 공통의 관심사를 인정할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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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