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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권영호
[저자와 대화] 아동문학가 이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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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25일 교육자이며 아동문학가인 이오덕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권정생 시비 하나 세워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권정생 선생이 그 흔한 냉장고 하나 집에 들이지 않자 작은 냉장고를 구해다 반강제로 들여놓았던 사람이 이오덕 선생이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권정생이 시상식에 가지 않으려 하자 끌다시피 데려갔던 사람도 이오덕이다.
선생은 세상과 작별하면서도 열두 살 아래의 벗 권정생을 염려했다. 열두 살 차이에도 선생은 권 선생을 한번도 하대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존경과 우정으로 권정생을 대했다. 권정생 선생은 ‘이오덕 선생이 있어 나는 살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오덕 선생이 세상을 떠나던 날 권정생 선생은 종일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상가에 가는 대신 자신의 방식대로 홀로 이오덕을 떠나보낸 것이리라.
이오덕 선생이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있는 이유가 권정생과 벗하며 30여년 편지를 주고받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권정생 선생을 발굴하고 그의 작품이 발표될 수 있도록 지면을 찾아다닌 사람이 이오덕이었다. 이미 중견 아동 문학가이던 이오덕은 기독교 잡지에 실렸던 동화 ‘강아지 똥’을 읽고 무명의 권정생을 찾아갔다. 이후 이오덕은 권정생 필생의 후원자가 됐다. 서울과 대구의 잡지사와 출판사,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권정생의 글을 실어달라고 부탁했고, 권정생에게 글쓰기를 독려했다. 선생은 권정생의 글을 들고 무시로 서울을 오르내렸다. 이오덕 선생은 어째서 무명작가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알리는 데 그토록 혼신의 힘을 쏟았을까?
이오덕 선생은 정직한 글쓰기, 제대로 된 글쓰기, 우리말 사랑을 가르치고 실천했다. 권정생의 글을 실어달라며 잡지사와 출판사를 찾아다녔던 것도 제대로 된 아동문학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선생이 평생 강조한 것은 지식의 글이 아닌 참 삶을 가꾸는 글쓰기였다. 그는 권정생에게서 그 희망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글이야말로 허례가 없는 참글이라고 믿었고, 우리 아이들에게 바로 그런 글을 읽고 쓰게 하고 싶었다.
선생은 “권정생 선생의 글이 내 생각과 가장 가까워요. 어린이 문학은 아이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람답게 자라도록 아이들을 위해 쓰는 것이 바람직한 문학이지요.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동문학은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판타지, 공상, 기괴한 이야기만 만들어내서는 안됩니다. 평론가들이 괴상해요. 그런 것들을 장려하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생은 “아이들은 원래 그리고 쓰기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쓰고 그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어른들이 거짓 글짓기, 남의 그림 흉내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이 선생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보고 듣고, 겪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쓰고 그리게 했다.
‘일하는 아이들’(고침판/보리)은 1952년부터 1977년까지 이오덕 선생이 가르쳤던 농촌 아이들의 시를 모아 펴낸 책이다. 1978년 펴냈다가 절판됐지만 20년이 훌쩍 지나 다시 출간됐다. 이 책은 선생이 부임했던 안동, 상주, 문경, 경주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쓰게 한 시다. 160여명의 아이들이 쓴 272편의 시인데 자연과 더불어 사람답게 사는 삶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실린 아이들 글에는 별난 내용도 깜찍한 재주도 없다. 아이들은 다만 보고 들은 것을 정직한 말로 토해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말 교육과 참 글쓰기 교육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이오덕 선생이 자신이 쓴 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 책이기도 하다.
2008년 8월엔 ‘일하는 아이들이 그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출간됐다. 이 책에 실린 338점 그림들은 대부분 1960년대 이오덕 선생이 상주 청리초등학교, 경주초등학교, 안동 임동동부 초등학교 대곡분교장에서 가르친 아이들의 그림이다. 책에 실린 그림과 시는 정감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심정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
이오덕 선생은 실존주의, 신비평 위주의 문학과 난해시 등 국적 불명의 문학이 판칠 때 우리 문학, 우리 땅, 우리 민족 삶의 근간인 농사를 찬미했다. ‘일하는 아이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등 농촌 어린이 글모음집이 그런 책이다. 김지하, 신경림, 황석영 등이 이른바 어른 문학을 통해 산업화 과정에서 드러난 사회적 병폐를 짚었다면, 선생은 어린이 문학을 통해 상처를 짚었다. 어린이 문학에 판타지가 판칠 때 선생은 농촌 어린이들의 정서를 어떤 치장도 없이 드러냈던 것이다.
선생은 19세이던 1944년에 주왕산 아래 부동 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고 1986년 60세 되던 해에 경북 성주 내서초등학교 교장으로 명예퇴직했다. 그는 정직한 글쓰기를 고집했고 현실을 그대로 담은 사회성 짙은 글도 썼다. 그러다 보니 정보기관과 교육청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트집 잡았기 때문이다. 퇴직한 뒤 경기도 과천에서 생활했고 94년, 95년 신장염을 앓았고 99년부터 충북 충주의 신니면 무너미 마을에서 자식과 함께 살았다.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은 3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권 선생은 마지막 편지를 이렇게 썼다. ‘선생님이 가신 곳은 어떤 곳인지…. 거기서도 산길을 걷고 냇물 돌다리를 건너고 포플러 나무가 서 있는 먼지 나는 신작로 길을 걸어 걸어 씩씩하게 살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직 이승에 남아 있는 우리들은 선생님이 남기신 골치 아픈 책들을 알뜰히 살피며 눈물나는 세상 힘겹게 견디며 살 것입니다.’
이오덕 선생도 떠났고 권정생 선생도 떠났다. 그러나 이오덕 선생이 남긴 ‘골치 아픈 책들’ ‘우리가 제대로 읽어야 할 책’들은 다시 출판되고 있다. 그의 생각을 좇아 우리말과 자연을 아끼는 사람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선생은 떠나도 떠나지 않은 셈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도움말=아동 문학가 서정오, 시인 김용락
△ 이오덕 선생은… 1925년 경북 청송 출생. 1943년 영덕 농업학교 졸업. 1944년 초등교원자격시험 합격. 43년 동안 초등교사, 교장 역임. 1954년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 발표.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와 수필 당선.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무엇을 어떻게 쓸까’ ‘우리 글 바로 쓰기’ ‘시정신과 유희정신’ ‘개구리 울던 마을’ ‘일하는 아이들’ ‘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등을 썼다. 2003년 8월 별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