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漏는 흘러 나가는 것? 혹은 흘러 들어오는 것?
아니면 흘러나간 것이 흘러 들어 오고, 흘러 들어 온 것이 또 다시 흘러 나가는 것인가?
S35:243 http://cafe.daum.net/pali-study/9akK/349
11.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오염원들이 흐릅니까?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Kathaṃ, āvuso, avassuto hoti? Idhāvuso, bhikkhu
11. [목갈라나] "벗들이여, 탐욕이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35:244
그는 ‘제발 가시가 나를 찌르지 않았으면!’이라고 하면서
마음 챙겨서 나아갈 것이고 마음 챙겨서 물러날 것이다.
So satova abhikkameyya, satova paṭikkameyya – ‘mā maṃ kaṇṭako’ti.
그는 '가시가 나를 찌르지 말기를!'이라고
새김을 확립하고 나아가거나 새김을 확립하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성자의 율에서는 이를 일러 가시라 한다.”
Evameva kho, bhikkhave, yaṃ loke piyarūpaṃ sātarūpaṃ, ayaṃ vuccati ariyassa vinaye kaṇṭako’’ti.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 어떠한 사랑스런 형상이나 즐거운 형상이라도
그것은 고귀한 님의 규범에는 가시에 불과하다.
7. “이를 가시라고 안 뒤 단속과 단속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Iti viditvā [kaṇḍako. taṃ kaṇḍakoti iti viditvā (sī.)] saṃvaro ca asaṃvaro ca veditabbo.
7.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알고 난 뒤에 제어와 제어하지 못함에 대해 알아야 한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단속하지 못하는가?
‘‘Kathañca, bhikkhave, asaṃvaro hoti?
수행승들이여, 제어하지 못함이란 무엇인가?
여기 비구는
Idha, bhikkhave, bhikkhu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러운 형색에는 열중하고 사랑스럽지 않는 형색은 혐오한다. 35:244]]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러운 형색에는 열중하고 사랑스럽지 않는 형색은 염오합니다.
그는 마음 챙김을 확립하지 못한 채 머물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일어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어버리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cakkhunā rūpaṃ disvā piyarūpe rūpe adhimuccati, appiyarūpe rūpe byāpajjati,
anupaṭṭhitakāyassati viharati parittacetaso,
tañca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yatthassa te uppann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parisesā nirujjhanti
1) 시각으로 형상을 보고 사랑스런 형상에 몰입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형상을 혐오하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도량이 좁아지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혜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12.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는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에서 오염원들이 흐르고, 귀에서 인식되는 소리들에서 오염원들이 흐르고,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에 대해서 오염원들이 흐르고, 혀로 인식되는 맛들에서 오염원들이 흐르고,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에서 오염원들이 흐르고, 마노로 인식되는 법들에서 오염원들이 흐른다고 합니다.
Ayaṃ vuccati, āvuso, bhikkhu avassuto cakkhuviññeyyesu rūpesu…pe…
avassuto jivhāviññeyyesu rasesu…pe… avassuto manoviññeyyesu dhammesu.
12. 벗들이여, 그는 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상에 대해 번뇌가 있고,
청각으로 인식되는 소리에 대해 번뇌가 있고, 후각으로 인식되는 냄새에 대해 번뇌가 있고,
미각으로 인식되는 맛에 대해 번뇌가 있고, 촉각으로 인식되는 감촉에대해 번뇌가 있고,
정신으로 인식되는 사실에 대해 번뇌가 있는 수행승이라고 합니다.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만일 마라가 눈을 통해서 그에게 접근하면
마라는 그에게 들어갈 기회를 얻고 사로잡아 버릴 대상을 얻을 것입니다.
Evaṃvihāriñcāvuso, bhikkhuṃ cakkhuto cepi naṃ māro upasaṅkamati
labhateva māro otāraṃ, labhati māro ārammaṇaṃ
Evaṃvihāriñcāvuso, bhikkhuṃ cakkhuto cepi naṃ māro upasaṅkamati
labhateva māro otāraṃ, labhati māro ārammaṇaṃ
…pe…
jivhāto cepi naṃ māro upasaṅkamati,
labhateva [labhetha (ka.)] māro otāraṃ, labhati [labhetha (ka.)] māro ārammaṇaṃ…pe…
manato cepi naṃ māro upasaṅkamati, labhateva māro otāraṃ, labhati māro ārammaṇaṃ.
벗들이여, 이와 같이 지내는 수행승에게
악마가 시각을 수단으로 접근해도 그 악마는 기회를 얻고 대상을 얻으며,
악마가 청각을 수단으로 접근해도 그 악마는 기회를 얻고 대상을 얻으며,
악마가 후각을 수단으로 접근해도 그 악마는 기회를 얻고 대상을 얻으며,
악마가 미각을 수단으로 접근해도 그 악마는 기회를 얻고 대상을 얻으며,
악마가 촉각을 수단으로 접근해도 그 악마는 기회를 얻고 대상을 얻으며,
악마가 정신을 수단으로 접근해도 그 악마는 기회를 얻고 대상을 얻습니다.
그는 [이들에 의해서] 제압된 자요, [이들을] 제압하지 못하는 자라 합니다.
그러면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再生]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며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죽음을 가져오는 그러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이 그를 제압합니다.
adhibhūto, anadhibhū, [anadhibhūto (sī. syā. kaṃ. ka.)]
adhibhaṃsu naṃ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그는 오염되고 다시 태어나고 두려움을 몰고 오고 괴로움을 가져오고
미래에 생사를 초래하는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에 정복당한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이와 같이 오염원들이 흐릅니다.
Evaṃ kho, āvuso, avassuto hoti.
벗들이여, 탐욕은 이와 같습니다. S35:243
S35:240
[*Kathañcāvuso, indriyesu guttadvāro hoti?]
마노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말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말라.
만약 그대들의 마노의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대들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런 그대들은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라.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mā nimittaggāhino ahuvattha, mā anubyañjanaggāhino.
Yatvādhikaraṇamenaṃ mani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ha, rakkhatha manindriyaṃ, manindriye saṃvaraṃ āpajjatha.
정신으로 사실을 인식하더라도 그 인상에 집착하지 않고 그 연상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가 정신능력을 이렇게 제어하지 않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불만의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 그를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제어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정신능력을 보호하고 정신능력을 수호한다. S35:240
S35:231
마노로 인식되는 법들에 대한 탐욕이 아직 존재하고 성냄이 아직 존재하고 어리석음이 아직 존재하여,
탐욕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고 성냄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고 어리석음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으면
마노로 인식되는 아주 사소한 법들일지라도 일단 마노의 영역에 들어오게 되면
그것들은 마음을 괴롭히게 된다. 하물며 현저한 대상들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마노로 인식되는 법들에 대한 탐욕이 아직 존재하고 성냄이 아직 존재하고 어리석음이 아직 존재하여,
탐욕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고 성냄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고 어리석음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Yassa kassaci, bhikkhave, bhikkhussa vā bhikkhuniyā vā
manoviññeyyesu dhammesu yo rāgo so atthi, yo doso so atthi, yo moho so atthi,
yo rāgo so appahīno, yo doso so appahīno, yo moho so appahīno,
tassa parittā cepi manoviññeyyā dhammā manassa āpāthaṃ āgacchanti pariyādiyantevassa cittaṃ;
ko pana vādo adhimattānaṃ! Taṃ kissa hetu?
Yo, bhikkhave, rāgo, so atthi, yo doso so atthi, yo moho so atthi,
yo rāgo so appahīno, yo doso so appahīno, yo moho so appahīno.
6)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수행승이나 수행녀라도
정신으로 인식되는 사실에 대해 탐욕이 있고 성냄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는데,
탐욕을 아직 버리지 않았고 성냄을 아직 버리지 않았고 어리석음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면,
만약 조금이라도 정신으로 인식되는 사실이 정신의 길에 나타나도 그것이 실로 그의 마음을 압도하는데,
하물며 많다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정신으로 인식되는 사실에 대해 탐욕이 있고 성냄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는데,
탐욕을 아직 버리지 않았고 성냄을 아직 버리지 않았고 어리석음을 아직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5.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앗삿타 나무나 니그로다 나무나 삘락카 나무나 무화과 나무와 같은
유액을 가진 나무가 있는데 싱싱하고 윤기가 흐르고 부드럽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날카로운 도끼로 이런 나무의 여기저기를 자르면 유액이 흘러나오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거기에는 유액이 있기 때문입니다.”
‘‘Seyyathāpi, bhikkhave, khīrarukkho assattho vā nigrodho vā pilakkho vā udumbaro vā
daharo taruṇo komārako.
Tamenaṃ puriso tiṇhāya kuṭhāriyā yato yato ābhindeyya [bhindeyya (syā. kaṃ. sī. aṭṭha.),
abhindeyya (katthaci)] āgaccheyya khīra’’nti? ‘‘Evaṃ, bhante’’.
‘‘Taṃ kissa hetu’’? ‘‘Yañhi, bhante, khīraṃ taṃ atthī’’ti.
2. [세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앗싸타, 니그로다, 벨라카, 우둠바라와 같은
유액나무들의 어리고 부드러운 나무가 있는데,
사람이 그것을 날카로운 도끼로 곳곳을 자르다면, 유액이 나오겠는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세존]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유액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S35:231
S12:32
‘도반들이여, 나는 안으로 해탈을 하였고 모든 취착이 다 하였기 때문에
번뇌들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그러한 마음 챙김으로 머물며,
또한 나 자신을 경멸하지 않습니다.’라고 저는 이렇게 설명하겠습니다.”
'벗이여, 나는 안으로 해탈하여 [54] 모든 집착을 소멸하고 올바른 새김을 확립한다.
올바른 새김을 확립하는 까닭에 번뇌가 따르지 않고 자신을 게을리 관찰하지 않는다.'라고 대답 하겠습니다.
그 질문을 받으면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ajjhattaṃ vimokkhā khvāhaṃ, āvuso, sabbupādānakkhayā
tathā sato viharāmi
yathā sataṃ viharantaṃ āsavā nānussavanti, attānañca nāvajānāmī’ti.
Evaṃ puṭṭhohaṃ, bhante, evaṃ byākareyya’’nti.
<벗이여, 나는 ‘안으로 벗어나(=안으로 해탈하여)’ 一切의 取를 止滅하고 여실한 사띠(sati)에 머문다.
여실한 사띠(sati)에 머무는 까닭에 번뇌가 수반되지 않고 我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저는 그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http://cafe.daum.net/pali-study/8Y5j/63 S12:32
savati : [su + a] flows.
savati [sru; cp. sk. srotas stream; gr. r(eu_ma, r(e/w to flow; ags. strēam=stream; oir. sruth] to flow
āsavati : [ā + su + a] flows.
Assavati [ā + sru] to flow J ii.276 (= paggharati C.). Cp. also āsavati.
Anvāssavati [anu + ā + savati, sru] to stream into, to attack, befall
Avassuta (adj.) [Sk. *avasruta, pp. of ava + sru, cp. avas- sava]
1. (lit.) flowing out or down, oozing, leaking J iv. 20.
-- 2. (fig.) (cp. anvāssava & āsava) filled with desire, lustful
Assu1 (nt.) a tear
[Vedic aśru, Av. asrū, Lith aszarà, with etym. not definitely clear: see Walde, Lat. Wtb. under lacrima]
paggharati : [pa + ghar + a] flows forth; oozes; drips; trickles.
sarati1 [sṛ given by dhtp 248 as "gati"] to go, flow, run, move along
sota : [nt.] the ear. (m.), a stream; torrent; flood.
Āsava [fr. ā + sru, would corresp. to a Sk. *āsrava, cp. Sk. āsrāva.
The BSk. āśrava is a (wrong) sankritisation of the Pāli āsava, cp. Divy 391 & kṣīnāśrava]
that which flows (out or on to) outflow & influx.
1. spirit, the intoxicating extract or secretion of a tree or flower, O. C. in Vin iv.110 (four kinds);
B. on D iii.182 (five kinds) DhsA 48; KhA 26; J iv.222; vi.9.
-- 2. discharge from a sore, A i.124, 127 = Pug 30.
-- 3. in psychology, t.t. for certain specified ideas which intoxicate the mind
(bemuddle it, befoozle it, so that it cannot rise to higher things).
Freedom from the "Āsavas" constitutes Arahantship,
& the fight for the extinction of these āsavas forms one of the main duties of man.
On the difficulty of translating the term see Cpd. 227.
See also discussion of term āsava (= āsavantī ti āsavā) at DhsA 48 (cp. Expositor pp. 63 sq).
See also Cpd. 227 sq., & especially Dhs trsl. 291 sq.
-- The 4 āsavas are kām˚, bhav˚, diṭṭh˚, avijj˚,
i. e. sensuality, rebirth (lust of life), speculation and igno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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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과 마음을 '물질'과 '정신'이라고도 한다.
이를 다른 말로 '오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오늘 연꽃님의 글에서>
身心 = 名色 = 5蘊 ?
......이 부분 특히 [5蘊=名色]에 대한 (교학적) 정리가 되지 않아 혼란이 됩니다.
身心 = 名色 = 5蘊 ? 또한 5取蘊은?
이 3~4가지 용어의 범주는 아주 조금씩 다를 것 같습니다. 즉 동의어는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