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호는 아직도 젊었다.
소양강의 물빛은 짙었다. 소양호 바람은 살갗을 파고드는 차가운 칼바람이었다. 유년의 추억이 깃든 한탄강 칼바람이 생각났다. 방안 걸레가 꽁꽁 얼어서 아랫목에서 녹였던 기억과 뜨거운 물 한 바가지로 세수하고, 발 씻고 난 물을 엄마가 걸레를 녹여서 방을 닦던 추억이 소양호 얼음 위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다.
새벽바람에 서울에서 달려와 소양호를 바라보았던 잊힌 시간을 이제 20여 년이 지나서 길어 올리고 있다.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시간을 아름다운 보석으로 두레박에 담아서 길어 올리고 있다. 마중물이 되어 주었던 많은 사람이 생각났다. 너무도 감사한 인연들이 두레박에 가득 담겨서 오르고 있다.
춘천으로 가는 기차는 여전히 낭만적이고 젊은 날의 초상화처럼 기적을 울리며 달리고 있다.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 불렀던 선배들은 지금 어디에서 나처럼 추억하며 빙그레 웃을까. 긴 머리를 유행했던 디스코 머리로 곱게 땋아서 손수건으로 댕기를 묶고 다녔던 자그마한 여자아이를 기억은 할까,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소양호를 산책했다.
춘천에 오면 꼭 먹어야 할 것 같은 닭갈비를 먹으러 명동으로 향했다. 얼마 전에 다녀온 중국의 천안문을 다시 찾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골목을 가득 채웠다. 닭의 소리로 가득했다. 여기저기서 닭의 노래가 차가운 골목을 흔들었고, 아랑곳 없이 사람들은 한 마리를 잡아먹고 가야지만 속이 후련할 듯 사람들로 가득한 가게를 기웃거렸다. 이 집도 저 집도 만원 사태고 우리도 예쁜 씨암탉을 기어코 한 마리 먹고 가야 한다는 사람처럼 표를 받아들고 줄을 섰다.
자리를 잡고 커다란 프라이팬에 야채와 뼈를 발라낸 닭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볶아주는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마냥 부러웠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를 보면 먹고 있는 사람은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을까. 혼자서 객쩍은 생각을 하는 사이 차례가 되었고 운이 좋게 따스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북새통 시장 같은 식당에서 닭을 한 마리 잡아서 먹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양배추와 양파 대파로 자꾸 젓가락이 갔다. 몇 마리의 닭이 죽었을까, 넉넉잡아 백 마리는 넘을 것 같았다. 홀로 웃다가 고개를 저으며 뼈 없는 닭을 냄새도 없이 맛있게 요리한 춘천의 명물 닭갈비를 아수라장 속에서 맛있게 먹고 아직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속을 여유롭게 빠져나왔다.
겨울의 속살을 보러 강촌으로 갔다. 아득하게 먼 시간 여행이었다. 강촌은 세월처럼 참으로 많이 변했다. 빛바랜 사진을 들고서 찾아 나선 여행이었다. 이제는 화려한 갖가지 색으로 칠해졌다. 눈 쌓인 그림 같은 작은 집에서 꼬마전구가 별빛처럼 밤을 밝혀주던 요술 집에서 춘천의 밤은 슬프도록 빛나고 있었다. 강촌의 추억은 서설로 살고 싶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풍경 속의 시로 살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