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내가 하고 싶은것 은 도시인이 꼭 가봐야 할 기운이 솟는 명당 22곳
그 중에도 제일 첫번째 추천 장소가 남해 금산의 보리암 입니다.
서울에서 진주 까지 1000 리 인데 거기서 다시 삼천포 대교를 지나서
바다를 건너 남해섬 이라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명당이라고 생각되는곳을 찾아서 기도를 드리면
이상하게도 어려운 문제가 실타래 풀리듯이 풀리는것은 차를 타고
가면서 문제들을 집중해서 생각해서 인지 실마리가 풀린다.
내가 찾는곳은 꼭 절만은 아닙니다.
천주교 성지인 감곡 매괴성당도 기도발이 잘받는 곳이고 , 계룡산
향적산방은 김일부 선생님이 정력을 펴낸곳 입니다.
환벽정은 명당이라기 보다 경치 좋은 자리에 정자를 지어 놓고
충주호의 멋있는 풍광을 감상하면 한시름 놓고 자연과 벗하는 곳 입니다
어쨋든 나는 남해 보리암을 찾아 보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찾다가
이번에 과감하게 새벽 6시에 서울을 출발 했습니다. 오창휴게소에서
아침으로 콩나물 라면을 먹고 , 봄 풍경에 젖어서 사방에 물오른 들판을 보다 보니
큰 대교가 나타났다.
어제밤비로 하늘도 맑고 대교 밑으로 남색의 바다가 보인다.
남해의 특유의 섬들이 점점히 떠 있는 모습이 우리 고향 진도와 비슷해서 좋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보리암 으로 가는 제일 주차장에 도착 했는데
그래도 일찍 와서 인지 제1주차장에는 차는 많치 않았는데 제2주차장이 수리중이라
많은 차량을 수용 못하니 차 한대가 내려 오면 한대가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는 열번째 대기차였는데 언제 올라갈지 기약은 없다.
다른 방법으로 마을 버스가 셔틀로 있는데 요금은 왕복 2천원인데 만석이 되어서야
출발하는데 손님이 거의 없어서 언제 갈지 모른다고 한다.
시간이 없는 우리 같은 손님에게 가는 방법은 택시타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를 기다리듯이 택시가 한대 기다리고 있어서 편도 7000원에 탔다.
엉겁결에 택시를 탄지라 차안에 핸드폰을 두고 내렸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야 되는데 돌려 갈수도 없고 해서 그냥 올라갔다
꼬불꼬불 했지만 산길을 2차선으로 아주 건설에 놓은것은 우리의 도로 건축술의
발전 덕택으로 느끼면서 경치도 ,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20분 정도 오르니
제2 주차장 에서 내려서 다시 넓은 산길을 한참 오르니 앞에 장군봉과 형리봉이
보인다. 우리는 먼저 금산에 정상으로 올라가서 고려말 조선 초에 잦은 왜구의
침범을 알려주는 봉수대가 있었다 , 적이 발견 되면 한개의 연기나 불을 피었고
적이 가까이 오면 2개, 그리고 상륙하면 3개, 접전이면 4개등 그 숫자를 늘어서
상황을 알렸던 봉수대가 남앗고 앞의 큰 바위에는 학자 주세봉의 글도 음각 되어
있었다. 올라오는 길은 영암 월출산 처럼 가는 시누대(검정대)가 울창하게 서 있는 대나무
숲을 지나 왔다.이제 부터 금산 38경 구경이 시작 되었다.
1. 망대 2. 문장암 3. 대장봉 4.형리암 5.탑대 6.천구암 7.이태조기단 8.가사굴
9.삼불암 10.천계암 11.천마암 12.만장대 13.음성굴 14.용굴 15.쌍홍문 16.사선대
17. 백명굴 18.천구봉 19.제석봉 20.좌선대 21.삼사기단 22.저두암 23.상사바위
24.향로봉 25.사자암 26.팔선대 27.촉대봉 28.구정암 29.감로수 30.농주암 31.
화엄봉 32.일월봉 33.흔들바위 34.부소암 35.상주리 석각 36.세존도 37.노인성 38.일출경
오늘 내가 볼수 있는것은 일박도 하지 않는 상황인지라 일년에 3번만 보아도 행운이라는 노인성도 밤이 아니므로 볼수 없고
바다위에서 불쑥 튀어 나오는 일출광경도 볼수 없으며 내가 아는 만큼만 보이니 이중 몇개나 볼지가 의문이다.
그러나 최대한 보고 듣고 돌아가야겠다.
정상에서 내려와서 보리암으로 가지않고 우리는 능선을 따라서 단군성전으로 갔다.
단군성전을 보니 마치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보는듯했다 .
하눌님의 아들 환웅 그리고 단군이 태어났으니 삼위가 일체인데 표현은 서로 다른 일체를 강조했다.
성전도 불교식으로 모셔져 있는것은 인간이 알고 있는 상상의 세계가 그런가 봅니다.
성전을 관리하는 분은 성전 부근을 잘 관리해서 농사를 잘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곳에서 살면 참 건강 할것 같다고 생각 했습니다.
단군성전을 지나서 진시황의 아들 부소의 전설이 있는 부소암을 찾아서 한참 내려 갔습니다
부소암은 인간의 뇌와 비슷하게 생겼다.
부소암을 돌아서 들어가니 작은 철문이 있고 쓸어져 갈듯이 작은 초가에 억지로 함석을
올려서 비를 피하듯이 지어놓은 작은 암자 부소암이 있고 부처님과 아미타불 과 약사여래가
협시하고 16나한이 비좁은 불당을 꽉 매우고 있었다.
예불을 하고 나니 해인사 기획국장으로 계시는 善照 스님께서 염주를 하나 선물해준다.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이 암자의 유래를 물었고 지금 까지 내가 알고 있는 부처님의
수인과 탱화 , 16나한에 대해서 질문햇더니 착실한 불자 처럼 보셨는지 이곳 암자를
둘러 쌓고 있는 거북이 등에 타고 있는 코끼리 바위, 관세음 보살이 멀리 남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큰 거북이 머리를 길게 늘여 가면서 온갖 힘을 모아서 사람을 출산하는 모습
큰 물개가 날개를 펴듯이 내려 오는 바위며 물이 조금씩 나오나 가물지 않는 작은 샘터에
용과 거북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등 여러가지 를 소개해준다.
목이 한참 마른데 적당히 떠 먹을 물이 없어서 물한컵 요청 했더니 시원한 물한컵 주면서
이왕이면 여기서 공양을 하고 가라고 하신다.
마침 시간이 12시인데 우리는 도시락 준비도 없이 그냥 보리암 에있는 해수 관세음 보살만
보고 갈려고 했다 금산의 38경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고맙다고 공양 하겠다고 했더니 평상위에 밥상을 차린다.
그런데 밥상을 차린후 한참이 지나도 밥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갈려고 했더니 제가
공양 한다고하니 그때 쌀을 씻어서 밥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반찬은 즉석해서 한 음식은 없고 고추 짱아치, 멸치 조림, 김치 그리고 갓김치 까지
5가지에 버섯을 넣은 미역국으로 흰쌀밥에 먹으니 너무 맛이 좋아서 더 먹고 싶은데
말은 못하고 있는데 스님께서 밥을 한주발 퍼 와서 내 밥그릇에 한그릇 가득 담아주어서
사양하지 않고 2그릇을 먹으니 이제는 힘도 나고 피로도 사라지는것 같아서 본격적인
산행을 할것 같다. 여기 보리암의 선조 스임은 해인사 기획국장이시면서 이곳 부소암
은 일주일에 2-3일 주후반에 계신다고 한다. 해인사를 온적있는가 물어서 다음에 갈려고
한다고 하니 명함을 주면서 해인사 올때 보여 주면 모든게 무사통과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문에 들어 온 이유는 13살적 가난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시절에 할머니
따라서 절에 오니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좋았다고 한다. 제수용 유과, 약과는 물론이고
풍부한 과일 들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절에서 속가의 집으로 안가겠다고 우겼다고
한다. 그 기억이 17살 고등 학생에게 입시지옥의 에서 탈출은 절 밖에 없다고 해인사로
도망쳐 오니 집에서는 고등학교라도 졸업 하고 가라고 설득했으나 그에게 절은 입시지옥에서
벗어난 자유 천지요, 마음대로 먹고 놀수 있는 천국 아니 극락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했으나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군종 승은 물론 안되었지만 군종병도
쉽지 않아서 일반병으로 근무하다 제대 한후 다시 해인사로 들어 왔다고 한다
그후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큰 스님들을 찾아서 공부도 하고 승가대학도 나오셨다고 합니다
도를 많이 닦은 만큼 승려들에게도 그만큼 부가 따른다고 합니다.
젊음이 한창 일때는 여자와 돈의 유혹이 많아서 그것을 극복하고 참 스님이 되는길은
오직 도를 닦고 부처님을 공부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합니다.
세속을 잊고 도를 닦으면 재물은 가만히 있어도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곳은 큰 화강암 바위들로 삥 둘러있어서 명당중에 명당으로 기도발이 아주 잘 듣는곳 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려 오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오늘 밥상을 차려주고 시중을 들어준
분은 서울서 기도하려고 오신30대 중반 정도 되신분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중에도 많은 관광객이 부소암의 경치에 반해서 사진들 찍느라 바뻤다.
밥을 먹고 상사바위로 가면서 상사 바위의 전설을 들었는데 신분의 차가 있는 조선시대
주인집 딸을 짝 사랑한 머슴의 애달픈 이야기 입니다.
상사 암에서는 9개의 구정( 九井)을 찾으면 행운이 있다고 하는데 어제밤에 비가 와서인지
훨씬 많은 물이 괸 구멍이 있었다.
좌선대 를 돌아서 쌍홍문을 지나면서 서늘하고 음산한 쌍홍문 멀리서 보면 해골 같은
굴속에서 어두워서 선글라스를 잠깐 머리 위로 올렸는데 그 이후 선글라스를
찾지 못했다. 차안의 세계에서 피안의 부처의 세계는 나의 선글라스 쓰는 모습으로는 허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금강산에서 금강문을 지나면 새로운 세계가 보이듯이 부처의 세계는
정말로 많은 관광객이 분주히 저마다의 소원을 기원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