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깽이풀>
고백 1
다리 괴고 앉은 마음 / 분명 부처였고 도인였다. / 삼천세계 코 끝에 매달렸고 / 우주법계 숨구멍에 들락거려 / 신통자재 마음이니, / 무엇이 부러우며 무엇이 두려울꼬! / 주장자 떨쳐 짚고 버린 중생 구한다고 / 우선 먼저 속가집을 찾았는데......
고백 2
내 산으로 떠난 뒤 / 어머님 알콜중동 / 집안은 풍비박산 / 빚장이들 등살로 / 야반도주 하였다네.
고백 3
외가댁을 찾았더니, / 한겨울을 빨지 않아 / 냄새나는 잿빛옷에 / 더덕더덕 기운 외투 / 박박 깍은 빈대머리
고백 4
외할머니 까무러쳐 외사촌들 놀라는데 / 깨어나신 외할머니 요강단지 집어 던져 / 아직도 그 흉터를 경책으로 지닌다네.
고백 5
이놈아 그 꼴이 그리 좋아 / 청상과부 에미, 할미, / 미련없이 버렸드냐.
고백 6
그 산길이 그리 좋고 / 거지 같은 그 모습이 그리 좋아 / 형제까지 버렸드냐.
고백 7
장손노릇 어찌하고 / 종손노릇 어찌하며 / 조상님들 어찌볼래 / 미쳤다는 네 어미는 어찌하고 / 중풍 걸린 네 할미는 / 어디 가서 찾겠느냐.
고백 8
이놈아! 이놈아! / 인물낳다 애지중지 키운 놈이 / 이 꼴이 웬말이냐.
고백 9
가거라 이놈아! / 네놈 한몸 좋으려고 / 부모형제 버렸으니, / 큰 중놈 되거들랑 / 땅 속에 묻혔어도 이 헬미 맺힌 한을 / 그 여이 풀어다오. / 가거라 이 몹쓸놈아!
고백 10
세상을 한마음에 주무르던 / 대장부는 어데가고 / 회환에 떠는, 나약한 사내의 오열만이 / 빈 하늘 울리었네.
<노루귀>
고백 11
분명 부처였고, / 온 법계가 내 품에 있었건만 / 그건, 아무런 힘도 없는 망상 속의 자아선정 / 말라버린 지혜껍질 자아도취 꿈이었네.
고백 12
십년을 앉았은들 백년 동안 / 벽을 본들 / 자아도취 망상선정 / 내 영혼 구할건가. / 서럽고 원통하다. / 누구한테 속은 거냐. / 부처야! 나와 봐라. / 조사야 나오너라.
고백 13
네가 죽든 내가 죽든 / 누가 죽든간에 다시 한번 뚫어보자. / 걸망을 울러메고 산길을 오르는데 / 가을새 울음소리 왜 그리 슬펐던지
고백 14
道는 순리인데 / 어거지 육단심이 통할 수 없는 것을...... / 결국은 상기병에 걸리고 말았으니 / 승려의 수행생활 이것으로 끝이 났네.
고백 15
중 노릇도 끝이요 속가 연도 끝났으니 / 갈 곳은 뻔한 곳 자살을 결심했네. / 그런데 강물에 빠지자니 추울 것이 두려웁고 / 활복을 하자하니 아플 것이 두려우니 중생들의 요사한 맘 알고도 모를 것을...... / 깊고 깊은 산 속으로 소주 열 병 울러메고 죽으러 가는 젊은 승려......
고백 16
모두 다 마시였네. / 소주도 마시고 엄마도 누이도 형제도 / 내가 버린 여인마저 다 마셔버렸네. / 아래를 내려보니 오리무중 캄캄한데 / 취한 몸 못 가누고 그대로 떨어졌네.
<희어리>
고백 17
하늘에 별들 빛나고 달빛 요요하니 / 이곳이 극락인가 지옥인가 극락일 리 만무한데 / 볼따귀를 찝어 보니 아픈 것이 분명하네.
고백 18
떨어진 곳 낙엽 쌓여 몸둥이가 멀쩡하니...... / 죽음마저 안 되는가. 내 몸뚱이 죽이는 것 / 그것마저 못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체왈 무엇인가? / 초겨울 싸늘함이 온몸을 스미는데 / 죽을 수도 없는 운명 뼈 속까지 서러웁네!
고백 19
누가 이기나 다시 한번 해보자 / 죽을 힘이 남았으니 다시 한번 뚫어보자 / 상기병이 위로 올라 머리가 터진단들 무슨 여한 있단말가.
고백 20
우유 몇 통 사들고서 / 평소에 보아둔 김씨 사당 들어갔네. / 집은 낡고 마루창은 구멍나서 / 초겨울의 시린 바람 / 온몸을 떨게 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