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들의 천국, 그곳에 갈 생각이 없다
가톨릭 일꾼 기사; 2025.02.24 11:07
김선주 칼럼
기독교는 천국 때문에 망할 겁니다. 천국에 대한 과도한 이상이 현실세계의 윤리적 감수성을 오염시키고 도덕 질서를 무너뜨리면, 그 천국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기 때문입니다. 부조리한 현실세계의 대안으로써의 천국은 시대가 불의하고 사람들의 삶이 고통스러울 때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극락(極樂), 정토(淨土), 도솔천(兜率天), 도화원(桃花源), 유토피아 같은 것들은 사회사적인 이상들입니다. 기독교의 하느님 나라 이상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초기 기독교가 꿈꾼 것은 초월적이고 비현실적인 하느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 지배 아래 황제(Caesar)가 폭력으로 다스리는 사회를 전복시켜 하느님의 정의와 선함이 통치 원리로 작동되는 현실사회를 꿈꾸었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죽어서 영혼이 다다를 초월적 세계가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되어 평화와 안식을 누리는 것이 초기 기독교의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하느님의 정의와 선함을 이 땅에서 실현시켜야 할 거룩한 사명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의 저자는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유대의 율법과 전통에 따라 ‘하느님 나라’의 ‘하느님’을 ‘하늘(ουρανοs·天)’에 빗대어 말합니다. 거기에 ‘나라(βασιλεια)’를 결합하여 ‘하늘나라(βασιλεια των ουρανων·天國)라고 한 것입니다. 마태오의 명명(命名)에 의해 이 땅에서 실현되어야 할 하느님 나라의 이상이 죽어서 영혼이 가는 내세의 천국으로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천국’은 교회가 성장하고 권력과 유착하면서 비즈니스 담론으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하느님의 정의와 선함 대신 영혼 구원과 내세의 천국을 신앙의 궁극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안식과 평안이라는 기독교의 천국 이상은 현실에서 매우 폭력적인 모습을 띱니다.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으로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버립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정의나 선함이 아니라 기독교가 표방해 온 교리의 표지(標識)에 따른 것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말은 그것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인간도 그 표지 안에 거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거칠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정의와 선함이 아니라 자기 집단의 신념과 신조에 따라 사람을 지옥과 천국으로 나누어 버리지요. 그리하여 자기 집단의 신조 밖에 있는 타자를 지옥으로 보내버리고 자기와 동일한 신념을 가진 자들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몰아 부칩니다. 여기서 천국의 성격이 규정됩니다. 자기가 믿고 따르는 신념과 자기 집단의 신조에 반하면 지옥에 간다는 주장, 그것은 자기와 동조되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 천국이라는 논리입니다.
이것을 천국이라 한다면 그 천국은 파시스트들의 천국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신조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지옥으로 쓸어 넣어 버리고 동일한 신조를 공유한 자들만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나라, 그 나라가 천국이라면 그 나라의 통치자는 하느님이 아니라 히틀러나 무솔리니, 스탈린, 이승만, 박정희 같은 자들일 것입니다. 윤석열이 내란을 책동하는 과정에서 노상원이 수첩에 메모한 수거 대상자 명단과 그들을 몰살시킬 계획에는 이러한 천국의 이상이 내재돼 있습니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자들은 지옥불로 태워 버리고 우리들끼리 즐기는 이상사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기독교 파시즘이 꿈꾸는 천국과 같습니다.
손현보 목사가 말합니다. “이승만 정신을 계승하자”고. 손현보 씨는 이승만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 이외에 그가 악랄한 인격자이고 국민의 생명을 학살한 독재자라는 사실은 지워버립니다. 그가 기독교인이란 사실이 모든 가치를 초월하는 절대성을 갖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현보 씨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아시아 최초로 기독교 국가를 세우는 것이 하느님이 한국 교회에 주신 사명”이라고. 그는 예수의 복음과 성서의 가르침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 형식이 지배하는 것을 기독교 국가라고 보는 것입니다. 손현보 씨가 말하는 게 기독교 국가라면 그 기독교 국가는 파시즘이 지배하는 국가입니다. 전광훈이나 손현보 류가 주장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이름의 파시즘입니다.
이들은 천국이라는 이름의 파시즘 왕국을 꿈꾸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독교 국가라는 이상으로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황교안 같은 장로 대통령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교회 장로라는 사실 이외에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시킨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이 대통령이 되었거나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반기독교적인 정책이나 세계관이 이 세계의 윤리와 사회를 무질서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들이 윤리 없는 천국을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교회들이 천국이라는 파시즘 왕국을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천국을 다스리는 하느님은 파시스트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의 천국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오늘을 천국처럼 살 수 있도록 사랑과 위로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면 혹시 아나요? 껍데기를 벗는 날, 하느님이 나를 당신의 품에 깊이 안아 주실지.
김선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