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안절부절못한다. 특별한 일도 없는데 불안하다. 무엇 때문일까? 평생 불안하게 살아온 후유증인가? 가끔 이런 병이 재발한다. 어떤 때는 약을 먹기도 하지만 이 초조한 가슴을 펜을 들어 넋두리라도 하고 나면 아무 일이 없었던 것 같이 잔잔해진다.
뒤돌아보면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지난날의 고통. 밤이나 낮이나 태풍이 휘몰아치는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바라면서 살아온 날들. 태풍이 지나고 나면 햇빛이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처럼 그 희망 때문에 삶의 책임을 다 해야 했기에 자아를 망각하고 어느 모퉁이에 태풍도 피할 수 있겠지.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할 때는 나는 어머니의 제사와 형부의 49제에 참석하기 위해서 언니집에 갔었다. 거센 바람소리에도 불구하고 워낙 피곤했던 몸이라 잠을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람도 잦아지고 비도 그친 뒤이다.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방송에서는 남쪽지방에 큰 피해가 났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언니집이 있는 울진에서는 큰 피해는 없다고 했다.
조카와 망향정에 가 보니 집 채 만한 파도가 누런 황토물이 되어 무섭게 바위에 물기둥을 일으켜 하늘 높이 올랐다 바다로 간다. 자연이 화가 많이 났다. 온정에 가 보았다. 냇가에 있던 상점들이 폭우에 휩쓸려 다 바다로 갔다고 했다. 승용차들도 떠내려가다 언덕에 걸쳐 있었다. 누런 황토물이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를 내면서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바다로 줄달음친다. 주민들은 암담한 얼굴들이다. 지난번 태풍 로사 때만큼이나 피해가 컸다고 한다. 위로의 말도 도와줄 아무런 힘도 없다. 나뭇가지 하나하나 치우고 있는 손길이 애처로웠다. 그 자리에 서 있는 내 자신이 미안했다. 천재는 인간이 미리 막을 수는 없지만 인재는 사람들의 안일함에서 오는 악습이다.
태풍 매미는 순식간에 인명과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갔다. 매미란 놈은 한여름 짧은 생을 한탄하여 그렇게 피를 토하듯이 울어 지새우는가? 삶도 누런 황톳물에 휩쓸렸다면 이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 삶의 무게 때문에 병이 들었다. 다시 일어서야 하고 재건해야 하는 것을 결심했지. 늦었지만 태풍이 씻겨간 아픔을 잊어버리자. 뒤돌아보지 말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끈을 잡을 수 없으면 놓아버리고 연연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나면 푸른 창공을 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