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高宗) 「명」『인』 조선의 제26대 왕(1852~ 1919). 이름은 희(희@). 자는 성림(聖臨). 안으로는 대원군과 명성 황후와의 세력 다툼, 밖으로는 구미 열강의 문호 개방 압력에 시달렸다. 1894년 갑오개혁을 단행한 뒤 일본의 힘을 빌려 내정 개혁을 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97년 국호와 연호를 각각 대한(大韓)과 광무(光武)로 고치고 황제라고 칭하였으나,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퇴위하였다. 재위 기간은 1863~1907년이다.
《老石先生文集 二》쪽143-144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廟號高宗也者不用可也
失國九年陽一月 悲哀王몽 時陰曆戊午十二月日也因山日乃己未二月日而陽曆三月一日也當是時朝鮮人所聞悲哀王遭飮毒物而歿其實倭虜博文之養女裵貞子以毒物殺之云云京衆憤而擧義呼之曰萬歲萬歲謂之曰萬歲義擧倭虜總督府感危急而唐慌乃定廟號曰高宗時余年五十五以喪母居喪中不能運身焉嗟乎失國王之稱也有高則是欺而詐之之譎計也廟號高宗也者不用可也只以悲哀王用之宜當當矣高宗四十四年之紀也者以悲哀王四十四年替之可也
배달말로 뒤쳐 드리겠습니다.
<묘호 '고종'이라는 것은 쓰지 않음이 옳으니라>
나라잃은 9년(1919) 양력 1월 어느 날에 비애왕이 돌아갔는 데 그때가 음력 무오 12월 어느 날이니라. 인산일이 바로 기미년 2월 어느 날이었는데 양력으로는 3월 1일이었느니라. 이러한 일을 당한 그때 조선사람들의 소문에는 비애왕이 독극물을 마시고서 죽었는 데, 그 내막은 왜로 (이등)박문의 수양딸 배정자가 독극물로써 죽인 것이라 했느니라. 서울 군중들이 분개하여 정의를 들고 일어나 외치기를 만세만세라 했느니라. 그것을 일컬어 <만세의거>라 했느니라. 왜로 총독부가 위급함을 느끼고서 당황하여 이내 묘호를 정하기를 <고종>이라 했느니라. 그때 내(로석선생) 나이가 55이었느니라. 모친상을 당한 거상 중이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느니라. 아아 나라를 잃은 왕을 일컫는 말에 높을 <고>가 있으면 속이고 또 속이는 엄청난 휼계(속임 계략)이니라. 묘호 고종이라는 것은 쓰지 않음이 옳으니라. 다만 비애왕으로 쓰는 것이 마땅하고도 마땅한 것이니라. 고종 44년이라는 실마리를 비애왕 44년으로 바꾸는 것이 옳으니라.
백성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 사료를 올렸습니다. 따라서 <고종>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바르게 해 주기 바랍니다.
고종(高宗)「명」『인』 조선의 제26대 왕(1852~ 1919). 이름은 희(희@). 자는 성림(聖臨). 1897년 국호를 대한(大韓), 년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황제라고 칭하였으나,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이등박문의 협박에 의해 퇴위당했다. '고종'이라는 묘호는 조선총독부에서 지은 것이다. 사호(史號)는 비애왕(悲哀王). 재위 기간은 1863~1907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