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재활용센터 / 김남수
천막조각 덧댄 지붕아래 플라스틱 꽃들 환하게 매달린 모범재활용센터 권씨가 건초더미 같은 폐지무더기에 호스로 물을 뿌린다 이 바닥에서 수 십 년 가랑잎처럼 뒹구는 활자를 거둬들여 부활의 도시로 전송시켰지만 큰 불 작은 불 한 번도 기록하지 않았다고 호스질로 하루하루를 마무리한 덕에 모범생 두 아들 대학 나왔다고 입에 침이 고인다 불끈 오른팔에 노을이 감긴다 권씨가 베푸는 물세례 고분고분 근수 불어나는 폐지더미들 블록 담 벽에 기댄 바람 빠진 자전거도 함께 젖는다
골목을 밀고 당기며 집게차가 들어선다 아침 햇살이 달려 나와 덜컹거리는 양철 대문 빗장을 푼다 부활을 꿈꾸는 폐지더미들, 서로가 생각을 섞으며 집게손에 매달린다 집게차가 골목을 닫고 사라진다 강서구 화곡동 872번지 모범 재활용쎈터, 겨울에도 꽃이 핀다
감나무 집
그 집을 감나무 집이라 불렀다
서른에 혼자된 할머니가 삯바느질로 평생 모은 재산
감나무 한 그루에 마음 홀려
장만한 구로동 변두리, 마당 움푹 내려앉은 집
기차가 지나가며 구들장을 흔들면
이끼 낀 기와 지붕위로 박꽃이 하얗게 올라가고
달빛이 진저리치며 감나무 가지에 걸터앉았다
제비들은 휘영청 뻗은 가지를 처마 밑 까지 끌어당겼다
옆집 권씨가 매매 흥정 붙이던 날
‘나무 베는 작자는 천만금 내놔도 어림없지 아~암, 어림없지’
손사래 치던 고집 센 노인
발 아래 평상 하나 내놓고 길 가던 사람들을 불러들이던
늙은 감나무 그늘
할머니는 그해 가을 중풍으로 눕더니
봄이 오기 전 흐드러진 감꽃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침 골목이 왁자하다
낯선 장정 두엇, 감나무 그늘 아래 연장통을 내려놓는다
줄자가 담벼락과 감나무 사이를 가늠한다
‘담장을 헐고 주차장을 무상으로 만들어드립니다’
현수막이 허공에서 바쁘게 펄럭댄다
다닥다닥 열린 감꽃이 베어지고 담장이 사라지고
인부들이 흙마당을 시멘트로 덮어씌우는데 한 나절도 길었다
녹색주차마을만들기 구청 현수막은
녹색위에 회색을 덧칠했다
그 집을 지날 때면 발 등에 감꽃이 떨어진다
지금은 검은 그랜저가 서있는 감나무 자리
해마다 두어 접의 감을 내놓던 그 나무가 어느새
내 속에 들어와 감꽃을 피우고 있다
2003년 제21회 마로니에 백일장 시 입선
2008년 <평화일보> 신춘문예당선
다시올문학 여름호 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