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사람들과의 오랜만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더구나 그 사람이 이전보다 좀더 멋진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런 기쁨이 배가 되겠지요. 지휘자 성시연의 공연이 제게는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올해 초, 후배가
건네 준 노다메칸타빌레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오케스트라와 클래식의 매력을 알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예매한 공연이
성시연씨가 지휘하는 2월쯤 있었던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였습니다. (뭐 지금은 그 드라마의 음악을 들어도 시큰둥하지만
혹시나 자녀분에게 클래식에 쉽게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서라면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3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음악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더군다나 클래식이라는 골치아파 보이는 음악을 가까이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적도
없었지만, 그 날의 공연은 올해 내내 공연장을 쫓아다니게 한 시발점이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혁명과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장송곡(아마 "석판"이란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을 들으면서 클래식은 어렵지만 계속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공연이었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메인이었던 오늘 공연은 2월에 봤던 것보다 나아진 지휘자의
모습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2월에는 제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의 진가를 눈치채지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공연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면서도 생각했던 건데 베토벤의 협주곡은 확실히 소화하기 쉽진 않은 것 같습니다. 연주자에게나 관객에게나 많은 걸 요구하는 듯한 악성의 고집스러움 같은 것들이 느껴지더군요. 이전의 침머만의 공연과 다른 이가 연주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교해봐도 그런 느낌이 더 강해지더군요. 다소 산만한 공연장의 분위기 속에서도
무난한 연주가 이루어졌던 것 같았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협연자가 스타일이 베토벤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던 부분입니다. 제가 느낀 협연자의 스타일은 조금도 익살스럽고 장난끼 가득한 연주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것 같았습니다.
앙콜로 했던 쇼팽과 다른 한 곡(제목을 모르겠네요)에서와 같은 음악에 더 재능을 발휘할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오케스트라나
피아노 자체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둘을 합쳐놓았을 때의 조화라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연주였습니다.
공연을 예매하고 난 후에 까페 게시판에 올리신 전람회의 그림을 다운받아서 무던히도 들어서 그런지 멜로디나 연주가
생소하지 않고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그림들을 표현한 건지 굳이 모르더라도 음악만으로도 어떤 분위기의 그림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만큼 기분좋은 음악이었습니다. 얼마 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떠올라서
더 기분좋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느낀 성시연 지휘자의 스타일은 "거침없이", "힘차게", "역동적으로"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방식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곡을 마무리하는 솜씨는 훌륭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을 위해서 중간중간의
클라이막스들은 조금 절제하였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아마도 서서히 긴장을 높여가다가 마지막에 정리
하는 여운을 좋아하는 제 스타일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의 예술의 전당에서의 공연과 달리 유난히 산만했던 오늘 공연장의 분위기에서도 침착하게 자신들이 보일 수 있는 것들을
다 보여준 무난한 공연이었습니다. 모든 곡이 끝나고 관객들의 반응도 훌륭했고 마지막 앙콜곡에서 관객과 하나가 되어
연주하는 모습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성시연 지휘자가 여자, 남자를 떠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훌륭한 지휘자로
성장해나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첫댓글 공연후 막바로 올리는 후기 글은 참 읽기가 편합니다.음악회의 감흥이 그대로 전달되니까요.자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피아니스트는 쇼팽을...오케스트라는 베토벤을 연주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었습니다.역동적인 성시연의 지휘도 참 좋았습니다.
성시연의 비팅은 여전히 역동적이었으나 올초 공연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고 보스톤 심포니나 LA필을 지휘해본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정마에 이후를 담보하는 훌륭한 지휘자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데얀 라지치는 개성있는 연주를 보여주었고 2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낮게 으르렁 거리는 연주와 이를 토닥이는 피아노의 서정적인 대비가 좋았습니다.
전람회의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 한다는 것에 경이로움 마져 느끼는 건 아직 클라식음악에 대한 미숙에서 오는 것이겠죠? 그리고 협주자들의 앵콜 곡들은 모두가 다 연주하기 힘든 거 같은 아주 빠른 손 놀림의 곡들을 하던데 청중들이 많이 듣고 잘 아는 그런 곡들을 연주 한다면 더 호응이 있지 않을까 초보자 생각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피아니스트의 연주보면 상당히 유연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강한 포르테에서도 베토벤적인 야무진 소리보다는 세련된 예쁜 소리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두번째 앵콜곡이었던 스카를랏티 소나타에서도 호로비츠처럼 톡톡 튀는 듯한 다이나믹과는 다른 즉흥적이면서 물흘러가는듯한 자유스런 연주였던거 같습니다. 암튼 즐감했습니다.
2월 공연의 쇼스타코비치 5번에 대한 큰 실망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공연은 그때의 실망감을 환호로 바꿀만 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베토벤 협주곡은 여전히 불편했지만, 전람회의 그림은 정말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큭히 키에프의 문이 마칠때에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더군요. 이날의 관악기는 정말 오케스트라를 삼켜버릴듯한 기세였습니다. 브라보...
SPO 잡지의 공연 후기에서 읽고 여기서 다시보니 반갑네요. 음악을 듣고 평범한 우리네가 느끼는 감상은 대부분 비슷한 모양입니다. 저 역시 피아노를 들으며 쇼팽을 생각했거든요...물론 음악의 전문가들이야 모든 면에서 훨 다르겠지만 그래도 공연장엔 전문가만 앉아 계시는 게 아니기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귀와 눈도 즐겁게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연주자야말로 진정한 프로라 생각되는군요. 성시연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이 사라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