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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라기엔 너무 크고 볼 것 많은 제주
늘 쳇바퀴 돌 듯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잊고 어디론가 며칠 프리하게 떠나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시간적, 주머니사정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그러지 못한 것이 다반사다.
이러한 와중에 뜻하지 않게 지난주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제주여행(?)을 다녀왔다. 완전하게 프리한 상태로 여행을 한 것은 아니지만 기분 전환하기에는 충분할 만큼은 되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있다. 그래도 집을 떠난다는 자체가 마음을 들뜨게 하고 새로운 것들을 접한다는 기대감으로 가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들어 밖에서 잠을 잔 것을 세어보니 네 번이나 되었다. 홀가분하게 떠나는 여행이라기보다는 대부분 공적인 일로 가서 여행이라는 말이 퇴색된 감은 있다.
유일하게 사적인 모임에서 지난 5월 통영을 간적이 있는데 이때 일정이 겹쳐 동기회의 팔공산 산행은 가질 못했다. 10월엔 경주에서 1박2일간의 워크숍, 11월엔 서울, 파주, 인천 등지의 1박2일의 견학이었고 마지막으로 제주도를 간 것이다. 제주도는 이제껏 운 좋게 3번째 갔었는데 신혼여행과 지난 2005년에 마누라와 함께 갔었고 이번엔 솔로도 아니고 감춰둔 애인하고도 아닌 30명의 직원과 함께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번 제주도행은 예정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초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해외 배낭여행이 잡혀있었으나 최근 고환율로 인해 해외연수는 자제하라는 지침으로 국내로 돌리게 되었고, 세외수입 증대와 관련이 있는 부서 직원들을 위한 국내연수와 합해 지면서 인원수가 대폭 늘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부서 배당된 인원은 2명, 일단 난 제주도를 갔다 온지 얼마 안 되어 제외하고 직원 2명을 신청했다. 그런데 연수 5일전 갑자기 가사사정으로 도저히 갈질 못하겠다는 직원이 생겨, 하는 수 없이 내가 대타로 가게 된 것이다.
너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탓도 있겠고 너무 맘이 들떠서 그랬는지 몰라도 떠나기 이틀 전에야 마누라한테 신고를 했다. 반응이 영 시원찮다. 첫마디가 또! 혼자가나? 최근 연거푸 외박(?)을 한터라 그럴 만도 했다. 한마디로 혼자 잘 논다는 투다.
출발 당일 아침, 10시까지 공항에 가면 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좀 있다. 길 떠날 때면 항상 처제의 여행가방을 이용하는데 마누라가 미리 빌려 놓아 양말과 세면도구, 옷가지 몇 개를 챙겨 넣었다. 날씨가 좀 추울 것 같아 여분으로 외투 하나를 더 가지고 갈까 말까 하다가 아무래도 가져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항상 외출용 옷장 속에 있어야 할 그것이 없다. 이방 저방 찾아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본 마누라의 눈초리가 심상찮게 돌아간다. 결벽증이 심한 마누라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대충 챙겨가지 뭘 그리 찾느냐며 퉁명스럽게 쏘아 붙이며, 걸레를 들고 내 발자국 자취를 지우며 따라다닌다.
몇 번을 오락가락하다가 처음 찾던 그곳에 보이지 않던 외투가 떡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눈이 삐었구먼! 그것도 못 찾고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방을 어지럽히나 며 핀잔을 준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게 다녀와야지 하며 마음을 다 잡으며 짐을 챙겼다. 그런데 이어지는 잔소리가 그칠 줄을 모른다. 마누라 두고 혼자 가니 기분이 째져 어제 밤에 잠도 못 자 헛것이 보이 더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럴러니 했다. 잠시 후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꺼지라는 소리가 내 귓전을 때린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참아 왔던 감정이 그만 폭발했다. 들고 있던 외투를 던지고 빌려온 여행가방을 땅바닥에 팽겨 쳤다. 기분 좋게 잘 다녀오라는 말은 못할망정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란 말이지? 오냐! 알았다” 말만 남기고 횅하니 나와 버렸다.
마누라한테 제대로 대접도 못 받는데 이참에 집을 확 나와 버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났지만 그러기엔 뭔가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일단 제주도 여행이나 마무리하고 다시 생각해도 될 것 같아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행아침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여서 그런지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눈을 감고 한참을 가다가 우연찮게 여행가방을 내려보고 있는데 아까 던진 충격으로 그런지는 몰라도 약간의 금이 가 있다. 빌려온 것인데... 어쩌면 좋아? 즐거워야 할 마음이 찹찹하다 못해 우울하기까지 하다.
공항에 도착할 무렵 마누라한테서 문자가 5통이나 연속으로 들어온다. 내용은 지나온 일들로 내게 섭섭했던 일들이 대부분이여서 대꾸할 가치도 없어 안 했는데 마지막에 잔소리에 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출발시간보다 이른데도 이미 일행들이 많이 와 있다. 얼마 안 있어 여행가이드가 오더니, 오늘 안개가 많이 끼어 연착이 된단다. 한번 꼬인 실타래는 더 꼬이기 마련인가 보다. 무려 3시간이나 늦게 제주도에 도착했다. 바로 앞선 비행기는 아예 결항을 한데 비하면 불행 중 다행이 아닌가 하며 위안으로 삼았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되다보니 모든 여행일정을 다시 짜야할 형편이다. 휴식시간도 없이 바로 대기한 관광버스에 올랐다.
정작 여기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제주도는 누구나 한두 번은 가 본적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상세하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굳이 내가 느낀 점을 말하라면 여행버스마다 “아름다운 제주” 문구가 있는데 여기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섬이라기보다는 볼 곳이 아주 많은 관광의 보고라고 표현하고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백번 물어봐야 한번 가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로 본론을 대신하고 현지 가이드 통해 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3일 동안 안내를 맡은 가이드는 제주도 토박이였다. 방언도 잘하고 우리 나이 때인 중년의 여성으로 가이드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제주도를 소개하면서 2006년도에 특별자치도로 바뀌었는데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뉘고 인구는 55만명으로 대구 달서구정도라는 것이다. 제주도 면적을 쉽게 익히려면 “한팔이오”(1,825㎢), 한라산 높이를 알려면 “일로 구경오십시요”(1,950m)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제주도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 들고 있다고 한다. 나라별로 구별하는 방법은 파리가 빠진 맥주를 주고 반응을 실험하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인은 예의바르게 슬며시 옆으로 밀쳐놓고 새로 시키고, 독일인은 맥주의 나라답게 파리를 건져내고 먹고, 인디언은 파리를 안주 삼아 마신단다. 일본인은 약삭빠르게 파리도 팔고 맥주팔고 그 돈으로 새로 시켜먹고 한국인은 욕부터 한단다.
첫째 날은 연착되는 바람에 일정이 축소되어 공항에서 인접한 제주자연사박물관과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선녀와 나무꾼” 두 군데를 갔다. 박물관은 3번째로 대충 건성으로 훑어보고 선녀와 나무꾼은 과거 6~70년대 읍 소재지 정도의 마을 축소해 그대로 전시해 놓았다고 보면 된다.
30여 년간 그 당시 생활상을 개인의 집념으로 하나 둘 모아 이루어졌다고 한다. 과거속의 한편의 드라마 속으로 빠져들게 충분했다. 지는 해를 배경삼아 기념사진 한 컷 찍고 제주시내 바닷가 근처의 횟집에서 저녁식사로 하루해를 마무리했다.
저녁식사자리에서 이번 견학을 통해 뜻 깊은 추억을 만들자며 몇 차례 건배제의에도 소주잔에 입술만 적셨고 호텔에 와서도 룸메이트는 이방 저방 다니며 새벽 2시까지 술잔을 기울였지만 난 더 이상 입에 대지 않았다. 여행 내내 소수한잔 반, 조껍데기 막걸리 한잔이 다였다. 술을 먹을 만큼 슬프거나 기쁘지 않았고 내키지도 않았다.
둘째 날 아침, 전날 일기예보가 딱 맞아 떨어졌다. 어김없이 비가 주럭 주럭 내린다. 당초 계획된 일정은 완전히 무시하고 비올 것을 대비해 가이드가 안내하는 데로 갈 수 밖 없다.
수퍼에서 우산을 사들고 찾아간 곳은 제주의 서쪽부근으로 분재예술원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분재원의 안내원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아가씬지 총각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곱상하게 생긴 안내원이 15분 동안 현란한 말솜씨를 뽐내는데 분재예술원이 아니라 말의 예술원인 것으로 착각을 할 정도다. 그의 말 하나 하나가 한편의 시구로 엮어져 나왔다.
150년된 분재를 소개하면서 이 나무가 이렇게 잎이 무성하고 오래도록 살 수 있는 것은 일년에도 몇 차례 뿌리와 가지를 절단하였기에 가능하다며, 인간도 과감하게 끊을 것은 끊어야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500년된 향나무가 이처럼 빛을 발하게 된 것은 물과 햇빛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곳이 세계 분재예술가, 정치인들이 방문해 극찬을 아끼는 않는 곳인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다음은 분재원에서 10여분 거리에는 있는 해피타운 공연장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태평양화학의 녹차 밭에서 기념사진을 박고 공연장에 도착하니 공연시간이 다 되어서 그런지 관광버스가 구름같이 몰려들어 삽시간에 주차장을 가득 메운다. 중국에서도 뽑혀서 온 어린여자아이들이 펼치는 기예임에도 불구하고 깜빡 깜빡 졸음이 쏟아졌다.
박수소리에 깨어나 산방산 근처에서 삶은 토종돼지로 점심식사를 했다. 제주도엔 산이 3개가 있는데 한라산, 송악산 그리고 앞뒤로 해도 같은 산방산이라 한다. 산방산은 한라산의 백록담의 물이 고인 크기와 같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나니 오락가락하던 비는 잦아들어 제주 남쪽 서귀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귀포하면 감귤이다. 지금 수입되는 귤로 많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귤 생산을 줄이고 상황버섯이다 산삼 배양근이다하며 대체 생산물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귤이 가장 맛이 있을 때는 언제인가 하면 가을, 겨울, 봄도 아닌 훔쳐 먹을 때란다.
감귤을 대체해 산삼 배양근을 키우는 농원을 방문했다. 지난번에 왔을 땐 상황버섯을 재배하던 곳이 다른 점이다. 그때 상황버섯 분말을 산적이 있다. 이번에는 사지 않을 거야라고 했는데 소개자에게 현혹되어 또 사고 말았다.
어제 하지 못한 일정까지 포함하느라 이튿날 일정이 너무 빡빡하게 짜였다. 다음 찾은 곳은 이영애가 출연한 장금이 촬영장소이고 고기잡이 하러 간 영감을 애타게 기다리다 돌기둥이 되었다는 외돌개 바위이고 그 옆에 서복전시관을 방문했다.
서복전시관은 서귀포라는 이름이 생겨난 유래를 잘 알 수 있는 곳이다. 중국 진시황이 서복(서불)을 시켜 불로초를 구하러 영주산(지금 한라산)으로 왔다가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서귀포라고 한다. 중국에서도 실존 일물로 기록이 남아 있으나 현재 이곳을 찾는 중국인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둘째 날 마지막 코스로 왔던 길은 되돌아 약천사와 국제평화밀랍인형전시관을 찾았다. 약천사는 그쳤던 비가 내린 탓과 중복 관광으로 대웅전의 웅장함만 확인하고 내려왔다. 인형전시관으로 가는 도중 가이드가 “절 구경 잘 하셨어요?” 하더니 포항에 포경사라는 절이 있는데 몽정스님과 사정스님이 살았고, 절 밑에는 할랑교와 말랑교라는 다리가 있었으며, 그곳의 면 이름이 서면하고 안서면 말라는 우스갯소리로 한바탕 웃게 했다.
국제평화밀랍인형전시관은 제주도를 방문하거나 연관이 있는 세계 각국 정상과 연애인, 예술가 들을 밀랍인형을 만들어 전시한 곳으로 실제 모습과 비슷하기는 했으나 그렇지 않는 면도 있었다. 대박은 전시관 맨 출구를 나서다가 살이 많이 찐 한 청년이 배낭을 옆에 두고 아주 피곤한 채로 의자에 기대어 코를 골며 자는 모습이다. 코를 골 때마다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실제와 똑 같다.
그날 저녁식사는 제주도 부시장이 직접 찾아와 갈치 정식을 대접받았다.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알고 보니 단체 여행을 하는 경우에 시로 연락하면 부시장이 직접 찾아와 저녁도 사고 제주도 홍보도 하는 모양이다.
마지막 3일째, 이번 여행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우도를 방문하는 날이다. 둘째 날은 비가 오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마지막 날로 일정으로 미뤄 놓았었다. 어제 밤에 천둥과 번개에 싸락눈까지 내리더니, 아침엔 비는 그쳤는데 바람이 몹시 불어 갈게 될지 걱정되었다. 아니라 다를까? 가이드가 애석하게 우도는 바람이 많이 불어 가질 못한다고 한다.
또 일정이 해발 500m고지에 있는 말과 연관 된 몽골리안 마상쇼 관람과 직접 말을 타보고 성읍마을 방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마상쇼는 전에 봤던 터라 느낌이 반감됐다. 그래서 눈을 쫌 붙일러니 그놈의 채찍소리에 깜짝 깜짝 놀라 캘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신혼여행 때도 하지 못했던 말 타기 직접 해 보았던 것이다. 내 의지와는 별개로 말 멋대로 가고 서고 뛰고 했다. 이번 여행 중에 가장 색다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웬걸 멋진 포즈를 취하라 하더니 사진까지 찍어 준다. 승마복을 벗고 나오니 컴퓨터로 찍은 사진으로 보여 주며 할 거냐며 묻는다. 공짜요? 했더니 3만원을 내 라는 말에 고개를 설래 설래 저었다.
말을 봤으니 말시리즈를 안 할 수가 없다.
부부말이 살다가 암말이 먼저 죽었다. 옆 집말이 숫말에게 안부를 물었다. 요즘 어떠세요?
숫말이 대답하기를 “할 말이 없네요.” 그러다가 옆집 숫말이 죽었다. 옆집암말에게 안부를 물었다. 요즘 어떠세요? “해 줄 말이 없네요.” 그래서 둘 다 외로운 처지에 있는 숫말과 암말이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데 암말이 바람기가 심하여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본 숫말에게 심정이 어떠세요? 라고 물으니 “내가 말 할을 대신 하네요.” 그래서 암말과 이혼하고 우도에 있는 소와 결혼했다. 지금은 어떠세요? 라고 물으니 “두 말할 필요가 없소” 그러다가 소가 죽어 미국으로 이민으로 갔다. 거기에는 죽죽 빵빵하고 훨씬한 말들이 너무 많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물으니 “할말이 너무 많네요.”라고 하더란다.
다음은 이번 여행 마지막 코스인 성읍을 방문했다. 이곳도 중복코스다. 더 이상 말을 않겠다. 지난번에 조랑말이 통뼈라서 서서 자며 죽기 전에는 절대로 눕지 않아 관절에 좋다며 산 말뼈분말 3개중 한개는 먹고 한개는 남 주고 한개는 얼마 전에 폐기처분하는 경험이 있어 오미자 차 만 얻어 마셨다.
점심때가 되어 제주 똥돼지 불고기와 조껍데기 막걸리를 곁들인 식사를 했다. 제주도에는 조껍데기 먹걸리가 유명하고 울릉도에는 씨껍데기 막걸리로 유명하다. 발음을 잘못하면 오해하기 십상이다. “조껍데기 막걸리”를 세자로 줄이면 조깐술이 되고 두자로 줄이면 조술이다. 발음에 신중을 기하시기 바란다.
공항으로 오는 길에 시간이 좀 남아 절물자연휴양림을 잠시 들리는 것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제주도 2박3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전체 내용을 엑기스만 뽑아내는 재주가 부족하여 적다보니 말이 많이 길어졌다. 뭐 끝까지 읽을 사람이야 있겠냐 싶고 나중에 제주도 여행가는 일이 또 생기면 조금 이나마 참고 되었으면 마음이다.
사실 동기회가 여건이 성숙되면 정기총회를 제주도 여행을 바꿔 열어 봄직하다. 일단 꿈을 꿔본다면 가능성을 열려 있는 것이다. 꿈조차 꾸지 않으면 영원히 찾아오질 않는다. 지난 2005년도 부부동반 제주도 가던 해에 모임에서 울릉도도 다녀 온 적이 있다. 동기회 전체가 가는 것은 힘이 들더라도 여건이 맞는 친구들끼리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여행 떠나는 “계”라도 만들어 바다건너는 못가도 바다로 산으로 훌훌 떠나 보자구나!
첫댓글 물건너 갔으면 건강생각, 사무실 생각, 집생각 등 잠시 접어두고 조껍데기 막걸리라도 마음 놓고 한잔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