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 40장입니다.
1-2절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하나님을 야단치면서 가르치는 모습인 욥에게 감히 전능자를 탓하겠느냐 하십니다.
변론하고 책망하듯 하나님께 말로 논쟁을 하며 따지니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어디 한 번 대답해 보라하고 다그치고 계시는 코미디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욥의 대답이 나옵니다.
3절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4절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나는 미천하오니, 가치 없는 사람, 멸망 받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높아서 대꾸할 말이 없고 다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라고 합니다.
5절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젠 계속해서 대꾸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는 순간이 와야 비로소 구원이 시작이 됩니다.
6절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폭풍우는 호통소리입니다. 뇌성으로 말씀하심은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번개는 순간적인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절대
강퍅(완고)하지 말라고 히브리기자는 말합니다. 말씀을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7절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
대장부 같이 강해져라 허리는 힘의 근원, 그 허리를 묶고 묻는 것을 대답하라하십니다.
8절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너의 의 때문에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하겠느냐? 나의 심판을 폐하겠느냐?
요일1장은 만일 죄 없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든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행위가 바로 하나님께 대드는 겁니다. 신약시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무용지물로 알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지금 자신이 옳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밤낮 옳다 그르다 타령만 하고 하나님의 의를 찾지 않습니다.
9절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소리를 내겠느냐”
팔은 기운이 나가는 통로입니다. 사람에게 기운이 나가는 통로는 입과 손바닥,
그리고 발바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처럼 네가 소리를 우렁차게 낼 수 있느냐? 하십니다.
10절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고 영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
제발 좀 그렇게 하라, 네 영적 차원을 좀 높여라, 대장부가 되라는 겁니다(7절)
하나님이 욥을 보시기에 너무 작다는 말씀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설교자들이
회중들의 귀에 맞추느라고 너무 작아진 모습으로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중입니다.
11절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되”
10절처럼 된 후에 이렇게 한 번해 봐라 교만한 자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두더지 머리를 때리듯 내리 누르라고 하십니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위엄과
존귀와 영화와 영광의 옷을 입은 후에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나 바울처럼...
12절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낮추며 무릎을 꿇게 하고 그 처소에서
밟아서 낮아지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도록 끊임없이 묵사발을 만들어가야만 그를 살려내는 겁니다.
13절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들의 얼굴을 싸서 은밀한 곳에 둘지니라”
티끌인 존재는 티끌 속에 감추어 버려라 얼굴은 존재와 자존심 같은 것이며
자존심이 인간의 목숨인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는 ‘없다’가 되어야죠.
14절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내가 인정하리라 이 말씀은 내가 경하하리라는 뜻입니다. 너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겠다고 하시는데 이 세상 사람은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15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짐승을 어떻게 다루시는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것들을 좌지우지 하십니다. 곧 말씀이 모든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옳다 그르다 장군멍군하면서 자신이 흙덩어리뿐임을
고백하지 않고 자신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습니다. 거지도 깡통을 큰 걸차고
자존심을 뒤로 감추어야 하는데 요즘 거지는 자존심을 앞에 차고 다닙니다.
1,000원짜리 한 장 주면 사람을 뭘로 보냐면서 던져버리고 가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복종이 되어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순종하는 자들은
그 고난을 통해 다른 사람을 복종하게 하고 자존심을 무장해제 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자라야만 다른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제자가 되어야만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을 수가 있으며 그리스도의 계시를 가져야만 자신의 존재를 보게 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송축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