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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은 인생을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우비고뇌憂悲苦惱라고 보셨습니다.
태어나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늙고 병나고 아픈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롭고 걱정되는 우비고뇌를 느낍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 방법은 생로병사 우비고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바로 해탈입니다.
생로병사에서 해탈하고, 우비고뇌에서 해탈하는 것만이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생로병사 우비고뇌에서 해탈하는가? 그것은 아뇩보리(無上正覺)와 마하반야(大智慧)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물질적인 것만 확보되면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평생 돈 벌다가 결국 생로병사를 맞이할 때 근심걱정이 턱을 받치니까 울면서 죽습니다.
그런데 물질적인 것으로는 생로병사 우비고뇌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은 마음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입니다. 걱정근심도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우리가 사는 것을 보면 그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인생 문제가 돈 버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니까 죽을 대 우는 것입니다.
인생 문제는 깨달음을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생로병사인데 그 깨달음이 열리는 순간 불생불멸이 보입니다. 생로병사 우비고뇌를 불생불멸에 대한 깨달음과 상락아정常樂我淨의 깨달음으로 말끔히 해결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무상보리이고 부처님의 마하반야입니다.
불생불멸만 얻으면 생로병사에서 단박에 벗어나고, 상락아정만 얻으면 우비고뇌는 단번에 해결됩니다. 이것이 불교입니다.
낮에는 밝고 저녁에는 어둡고, 움직이기도 하고 안 움직이기도 하며, 그 속에서 생활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어두워져도 어두워지지 않는 게 있고 아무리 밝아져도 밝아지지 않는 게 있고, 아무리 움직여도 움직이지 않는 게 있고 아무리 고요해도 고요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명암동정明暗動靜에 전혀 상관없는 것이 허공입니다.아무리 밝아도 허공은 밝은 게 아니고, 아무리 어두워져도 허공은 어두운 게 아닙니다.아무리 시끄러워져도 허공은 시끄러운 게 아니고, 아무리 고요해도 허공은 고요한 게 아닙니다.왜냐하면 허공은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두울 때는 그냥 어두운 것뿐이지 허공은 어두운 일이 없습니다. 밝을 때는 밝은 것뿐이지 허공은 밝은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불생불멸입니다.생로병사의 인생에 불생불멸이 있는데 오직 모를 뿐입니다. 안다고 생기고 모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도 그뿐이고 몰라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꿈에서 온몸에 종기가 나고 등창이 나서 말할 수 없이 아프고 괴로웠는데 딱 깨니까 종기도 등창도 아프고 괴로운 것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본래의 나, 그것뿐입니다. 그것이 상락아정입니다.그러면 분명히 있는데 모를 뿐이라면 어떻게 아느냐? 지혜로 압니다.지혜는 어디서 생기느냐? 깨달음에서 생깁니다. 불교는 모든 것이 깨닫기 위한 방법입니다.지혜를 얻으려면 깨달아야 하고 깨달으려면 닦아야 하는데, 어떻게 닦아야 하느냐?불교는 전부 깨달음으로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깨닫는 법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구해 봤댔자 구한다고 어렵고 지킨다고 어렵고 잃어버려 괴롭습니다. 이것을 생사업生死業이라고 합니다.이 세상에 다른 어떤 것도 생로병사 우비고뇌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그런데 구할 때는 구한다고 굉장히 힘들고, 구하고 나면 지킨다고 힘들고, 잃어버리거나 빼앗기고 나면 억울하고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것이 또 인생입니다. 그래서 구하는 게 없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누구한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을 해결했습니다.우리는 부처님한테 귀의하지만 부처님은 귀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부처님은 귀의하지 않습니다. 하늘에도 의지하지 않고, 땅에도 의지하지 않고, 사람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물질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어떤 조직과 권력, 세력에도 전혀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구한다고 힘들고 지킨다고 힘들고 잃어버려서 힘들고, 인간에게 고통을 줍니다.
또 몸에만 의지해서 사는 사람도 먹이고 보살피느라 힘듭니다. 죽을 때도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몸에 의지해도 안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다 몸종교를 믿습니다.
그런데 그 몸종교를 믿어 봐야 나중에 영험은 없고 하루하루 늙어 갈 뿐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을 구해서는 생로병사 우비고뇌를해결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깨닫느냐?
첫째, 물질로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보시하면 그것이 물질로 깨닫는 방법입니다.
물질을 보시하면 마음이 지혜로워지고 편안해지고 깊어집니다.
둘째, 몸으로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계법을 몸에 잘 지니면 그것이 몸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보시를 하는 것은 물질로 깨닫는 방법이고, 계법을 잘 지키는 것은 몸으로 깨닫는 방법입니다.
그 다음에 마음으로 깨닫습니다. 이것이 전부 요즘 말하는 수행입니다.
마음으로 깨닫기 위해서는 불생불멸이 있고 상락아정이 있다고 믿는 신심信心이 있어야 합니다.
확고한 신심을 바탕으로 '나도 불생불멸과 상락아정을 체험해야겠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라는 원력願力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왜 지금껏 모르고 헛되게 살았을까?'하고 참회懺悔해야 합니다.
반드시 이 신심, 원력, 참회의 세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한 데 대한 반성과 참회가 있어야 합니다.
신심, 원력, 참회를 기본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화엄경』「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래의 지혜는 이르지 못하는 데가 없다. 왜냐하면 한 중생도 여래의 지혜를 갖추지 않은 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망상과 전도된 집착 때문에 증득하지 못한다. 만약 망상을 여의면 일체지, 자연지, 무애지가 바로 나타난다.(如來知慧 無處不至 何以故 無一衆生 而不具有如來知慧 但以妄想倒執著 而不證得 若離妄想一切智 自然智 無碍智 則得現前)
모두가 여래지혜를 다 가지고 있다면 지금 어디 있느냐?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이런 의식 생각이 모두 여래지혜입니다. 중생심이 여래지혜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망상 집착이 끼어들어서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멀리에서 우리 집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망상집착만 내려놓으면 끝납니다.
망상을 여의면 세 가지 지혜가 나타난다고 했는데, 일체지一切智. 자연지自然智. 무애지無碍智입니다. 일체지는 모든 것을 다 헤아리는 지혜입니다. 망상집착을 여의면 거기에서 일체지가 그대로 나타납니다. 자연지는 저절로 아는 지혜고, 무애지는 일체 걸림 없는 지혜입니다.
그러면 망상집착이란 무엇이냐? 망상은 '이것은 좋은 것이다. 저것은 나쁜 것이다. 이것은 괴로운 것이다. 저것은 즐거운 것이다.'등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허공을 둘로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허공을 둘로 나누려면 괴롭기만 하고 아무 대가도 없습니다. 이것이 망상입니다.
또 집착이라는 것은 애구애취愛求愛取, 즉 밖으로 구하고 밖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불생불멸 상락아정의 지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다, 나쁘다.'라고 분별하고, 좋은 것만 좋은 것만 자꾸 따라가고, 나쁜 것은 버리려고 하는 집착 때문에 모릅니다.
그래서 그 망상집착을 내려놓으면 일체지, 자연지, 무애지가 바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망상집착을 내려놓는 방법이 무엇이냐?
첫째, 육정참회六情懺悔입니다. 육정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로서, 눈. 귀. 코. 입. 몸. 생각 등에 전부 좋다는 감정과 나쁘다는 감정이 붙어 있습니다. 이것을 육정이라고 합니다.
업장참회業障懺悔는 불전에 가서 하면 되는데, 육정참회는 스스로 해야 합니다.그동안 밖으로만 밖으로만 갔던 것을 돌리는 것이 참회하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번뇌가 많아서 밖으로 밖으로만 구하던 내 눈의 감정, 귀의 감정, 코의 감정, 몸의 감정 등을 다 참회하는 것이 육정참회입니다. 저 밖으로 나갔던 사람이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참회하느냐? 몽관법夢觀法으로 합니다. 부처님 법문을 듣거나 보고 듣고 맛보고 생각하는 것이 꿈인 것과 같습니다.이것이 몽관수행夢觀修行입니다.
꿈속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의미가 없고 꿈에서 깨는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에 몽관삼매夢觀三昧를 닦으라고 했습니다. 저 하늘도 내가 꿈 속에서 보는 하늘이니까 저 하늘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몸도 꿈에서 보는 것이니까 자꾸 따라가면 안 됩니다. 이것이 몽관수행입니다.
이러한 삼매로 생로병사가 없는 지혜를 얻습니다(由此三昧 得無生忍).
그러니까 몽관삼매란 꿈에서 무엇을 보든지 꿈 깨면 없는 것처럼, 지금 내 생각으로 느끼지만 지혜를 얻는 순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몽관삼매를 자꾸 닦으면 무생인, 즉 생멸 없는 것을 아는 지혜를 얻습니다. 무생인 無生忍이라는 게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수없는 생각을 하고, 또 수없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생각이 생겼어도 그대로고, 아무리 많은 생각이 없어졌어도 그대로입니다.
생각이 일어난 자체가 불생이고, 생각이 사라진 것 자체가 불멸입니다.
불생불멸을 확실하게 알면 그것이 무생인입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일어나고 또 사라졋습니까?
생각을 할 때는 굉장히 심각했지만 나중에 보면 좋은 생각이나 안 좋았던 생각이나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것이 불생불멸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어떻게 보면 알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모를 것 같고, 이것은 망상집착 때문입니다. 부처님 법이 어려운 게 아니라, 내가 망상집착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망상집착을 하지 않는 것이 육정참회이고, 그것이 몽관삼매입니다. 몽관삼매를 닦으면 망상집착에서 돌아옵니다.
육정참회는 신라시대 원효元曉(617~686)큰스님께서 하신 법문입니다. 또 중국 선종사에 큰 가르침을 주신 하택신회荷澤神會(684~758)선사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육진삼매六塵三昧를 이야기했습니다. 눈으로 형상(色塵)을 보고, 귀로 소리(聲塵)를 듣고, 코로 냄새(香塵)를 맡고, 혀로 맛(未盡)을 보고, 몸으로 촉각(觸塵)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법(法塵)을 느끼는데, 이 색. 성. 향. 미. 촉. 법의 육진에서 삼매를 얻습니다. 이것이 육진삼매입니다.
눈으로 형상을 보되 형상에 분별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고, 구하는 집착을 하지 않으면 보이는 것 그대로가 삼매요, 선정입니다.
그러니까 보여서 번뇌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내가 분별하고 구하기 때문에 번뇌가 일어납니다.
망상은 분별이고, 구하는 것은 집착입니다.
그래서 내가 보되 구하지 않고, 내가 보되 좋다 나쁘다 분별하지 않으면, 보는 것 그대로 선정입니다. 색진삼매色塵三昧가 됩니다. 눈 감고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지 않고 '저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저것을 빨리 버려야겠다.'하고 취사取捨집착을 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삼매입니다. 소리를 듣되 그냥 듣고 말면 그냥 그대로 성진삼매聲塵三昧가 되고, 냄새를 맡더라도 그냥 냄새를 맡으면 냄새 맡는 데는 허물이 있습니다. 좋은 냄새다 나쁜 냄새다 분별하고 좋은 것은 계속 구하려고 집착합니다. 이런 망상집착만 일으키지 않으면 보는 게 그대로 색진삼매이고, 듣는 그대로 성진삼매이고, 냄새 맡는 그대로 향진삼매香塵三昧입니다.
망상집착을 일으키지 않으면 과거에 무슨 생각이 났든 내버려 두면 됩니다.
지나간 것은 다 허망하니까 따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린다."라고 할 경우,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생각에 좇아가기 때문에 치가 떨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찌 살아갈까?'라고 생각만 하면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옵니다.
생각이 일어나서 잠이 안 오는 게 아니라 거기 따라가서 자꾸 걱정을 더하니까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 육진삼매를 거쳐야 참선이 됩니다.
색. 성. 향. 미. 촉. 법의 육진에 좇아가니까 참선이 안 되는 것입니다. 왜 집을 비우느냐?
밖으로 헤매니까 집을 비우는 것입니다. 밖으로 헤매지 않고 돌아와 버리면 됩니다.
그래서 이 보고 듣고 맛보고 생각하는 여기에 매이지 않고 장벽처럼 보되 보기만 합니다.
일하되 일만 하고, 먹되 먹기만 합니다. 그냥 바라만 봅니다. 거기 좇아가는 분별 망상, 내 것으로 만들려는 집착만 하지 않으면 보는 것이 그대로 삼매이고, 듣는 것이 그대로 삼매입니다.
'피하려고 하지 말고 망상집착을 하지 말라.' 조사선祖師禪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없애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망상집착하지 않는 육진삼매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념선無念禪입니다. 생각이 분별 집착이니까 생각하지 않으면 끝납니다.
분별하고 추구하는 것을 멈추고 무념으로 돌아가면 참선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습니다.
도道도 구하고 색. 성. 향. 미. 촉. 법도 구하려고 하니 안 되는 겁니다. 육진삼매로 해야 합니다.무엇을 구해도 내 인생 문제에는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구한다고 힘들고 지킨다고 힘들고 잃어버려서 힘들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고통뿐입니다. 그래서 그냥 하기만 하고 집착은 하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하지는 않고 집착만 합니다. 이것을 전도顚倒라고 합니다.그래서 육진삼매를 닦아서 밖에 집착을 하지 않으면 확실히 돌아옵니다. 자꾸 밖으로 나가기만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구하니까 안 됩니다. 참선이 어려운 게 아니라 구하는 게 많아서 안 되는 것입니다.여기에다 앞서 말씀드린 '불생불멸 상락아정'을 갖다 붙이면 안 됩니다. 내가 지혜를 얻었을 때 체험하는 것이지 생각으로 그러지는 게 아닙니다.불생불멸을 확실히 보고, 상락아정을 확실히 얻기 위해서는 육정참회, 육진삼매를 닦아 나가야 합니다. 삼매가 깊어지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깊어지지 않아서 못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방법을 동아시아에서는 종지체용宗旨體用으로 설명했습니다.
보되 보는 데 따라가지 않고 듣되 듣는 데 따라가지 않는 것이 무념無念인데, 이 무념으로 주종主宗을 심습니다. 보는 대로 분별하고 보는 대로 집착하면 될 리가 없습니다. 여기서 지旨는 의지라는 말과 통합니다. 다른 것으로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부자가 되어서 인생 문제 해결하겠다든지, 세력을 얻어서 해결하겠다든지, 얼굴을 잘 만들어서 해결해 보겠다든지 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밖에서 구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취함이 없는 것으로써 뜻을 삼는 것이 종지입니다. 무념으로 종을 삼고, 취함이 없는 것으로 주지主旨, 즉 중심이 되는 의지로 삼습니다. 그리고 체體는 청정淸淨입니다. 청정으로 체를 삼습니다. 불생불멸. 상락아정의 공덕이 나와도 그 자체는 푸른 것도 아니고 검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고 청정합니다.
개념을 붙일 수도 없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안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본체요, 청정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로 변화작용을 삼습니다(以智爲用).
그 청정한 몸에서 지혜작용이 무궁무진하게 나옵니다. 이것이 여래의 신통이고 여래의 힘이고 온갖 묘용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찾아갈 때는 무념無念. 무취無取, 즉 다른 것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구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은 일대로 하고 그 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에 경봉 큰스님께서 하신 법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명주 바지를 하나 구해서 그것을 아끼고 집착하다가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점을 보는 사람에게 가서 누가 명주 바지를 가져갔는지 점을 쳤더니 그 사람이 '갈 지之' 자 네 개를 써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해석할 수가 없어서 어떤 사람에게 가서 물었더니, "명주 바지 입지 말지."라고 하더랍니다.
그것 하나 포기하면 만사 해결인데 집착해서 그런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구하지 않으면 끝날 것을 내가 구해서 내가 괴로운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말고 내가 나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생로병사 우비고뇌는 불생불멸과 상락아정을 깨닫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자꾸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또 물질도 보시를 하면 그것이 물질로 깨닫는 방법입니다. 몸으로 자꾸 수행하면 그것이 몸으로 깨닫는 방법입니다. 마음으로 보되 보는 데 집착하지 않고 '내가 누군가?' 하면, 그것이 육진삼매이고 그것이 자성참회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서방정토 극락도사 아미타불()()()

첫댓글 불생불멸 상락아정의 지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다, 나쁘다.'라고 분별하고, 좋은 것만 자꾸 따라가고, 나쁜 것은 버리려고 하는 집착 때문에 모릅니다. ㅠ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육진삼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보되 보는 데 따라가지 않고 듣되 듣는 데 따라가지 않는 것이 무념無念인데, 이 무념으로 주종主宗을 심습니다. 보는 대로 분별하고 보는 대로 집착하면 될 리가 없습니다. 여기서 지旨는 의지라는 말과 통합니다. 다른 것으로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부자가 되어서 인생 문제 해결하겠다든지, 세력을 얻어서 해결하겠다든지, 얼굴을 잘 만들어서 해결해 보겠다든지 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밖에서 구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취함이 없는 것으로써 뜻을 삼는 것이 종지입니다. 무념으로 종을 삼고, 취함이 없는 것으로 주지, 즉 중심이 되는 의지로 삼습니다. 그리고 체는 청정입니다. 청정으로 체를 삼습니다. 불생불멸. 상락아정의 공덕이 나와도 그 자체는 푸른 것도 아니고 검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고 청정합니다.
개념을 붙일 수도 없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안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본체요, 청정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로 변화작용을 삼습니다
그 청정한 몸에서 지혜작용이 무궁무진하게 나옵니다. 이것이 여래의 신통이고 여래의 힘이고 온갖 묘용입니다.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