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9월 3일 '영 어덜트' 소설로 유명한 한국계 미국 작가 제니 한이 태어났다. 영 어덜트(young adult)는 청소년과 성인이 두루 읽을 만하다는 뜻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내가 예뻐진 여름(The summer I turned pretty)'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 등을 들 수 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고교 2학년 소녀 라라 진이 짝사랑했던 남자들에게 연애편지를 쓰면서 사건이 펼쳐진다. 라라 진이 편지를 쓴 것은 상대에게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정리해보기 위해 글로 표현해 보았을 따름이다.
사고로 연애편지들이 실제 발송되는 일이 일어난다. 편지를 받은 조시와 피터가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라라 진 본인이 심리적 곤경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다. 라라 진은 언니의 전 남자친구인 조시의 오해를 벗어나기 위해 피터와 과도하게 친한 척한다.
그러는 중 조시가 볼 때 피터의 목을 껴안고 매달리기도 한다. 이때 라라 진은 '내 몸이 어떻게 이런 동작을 알고 있었는지 나도 모르겠다'라고 마음속으로 독백한다. 이런 표현을 발견하는 것은 소설 읽기가 안겨주는 재미의 한 가지다.
단순히 명언 모음집을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굳이 빗대면, 명언 모음집을 읽는 것은 백화점 식품점에서 채소를 구입하는 수준이다. 소설을 읽다가 무릎이 탁 쳐지는 표현과 마주치면 밭에서 채소를 직접 수확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농사를 짓지 않고도 남이 잘 가꾸어놓은 채전에서 맛깔나는 마음의 양식을 공으로 얻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시초에는 '로맨스 소설'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을 낮춰보았다. 하지만 소설은 첫머리부터 큰 교훈을 주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부치지도 않을 편지를 쓰는 16세 소녀!
생각의 정돈 정도를 알아보려면 글로 표현해보고 말로 설명해보라고 역설하고 있다. 세 사람이 지나가면 그중에 스승이 있다는 삼인행三人行의 가르침을 따를 때 라라 진은 스승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요즘의 영 어덜트와 좀 다르지만 세대 구분 없이 두루 읽을 만한 우리나라 소설에는 어떤 작품이 있을까. 아마도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하는 분들이 많을 법하다. "내가 죽거든 내가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한 그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