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금
이승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그림처럼 떠 있는 흰 구름이 환상의 앙상블을 이룬다. 이럴 땐 지고 있던 삶의 짐을 어딘가에 부려놓고 나는 자유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꿈일 뿐. 예전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와 함께 저 푸른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눈을 질끈 감고 운전대를 잡는다. 도로에 시선을 두어야 할 눈이 자꾸만 창밖을 향한다. 비틀대는 차가 거슬렀는지 뒤에서 오던 차가 꽥꽥 소리를 지른다. 스멀스멀 기어 나오던 감성이 꽈당 나뒹굴어진다. 현실의 눈을 켜고 운전대를 꽉 잡는다.
그의 식욕과 입맛은 여전히 제로 상태다. 무엇이든 잘 먹던 그가 어떤 음식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은 지 벌써 여러 달째다. 끼마다 그의 의향을 묻고 음식을 만들지만 언제나 퇴짜다. 어떻게든 그의 식욕을 자극해보겠다고 청주 시내에 있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구해오지만, 그 노력의 대가는 늘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오늘도 점심시간이 두 시간이나 훌쩍 넘었는데도 미적거리고 있는 걸 보면 여전히 먹는 게 고역인가 보다. 보글보글 끓던 된장찌개는 식은 지 오래고 노릇하게 구운 갈치는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안달이 나는 건 나다. 진통제 먹을 시간을 놓치면 통증이 시작될 텐데 그 전에 식사를 해야 그 고통을 막을 수 있다. 서재를 들락대며 채근을 하지만 그의 대답은 허공을 맴돌 뿐 일어설 의도가 없다. 이곳 사정을 알 턱이 없는 어머니는 빨리 오라는 전화를 연신 해대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내 뱃속도 꼬르륵대며 징징대는데 그를 두고 갈 수가 없어 또 한 번 재촉한다. 마지못해 식탁에 앉았지만, 숟가락을 들 생각이 없다.
그동안 애면글면 살아온 삶의 여정이 끝나고 꽃이 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신의 뜻은 달랐다. 힘들게 밀고 올라간 시시포스의 바위가 거침없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듯이 그가 쌓아 올린 생의 언덕이 무너져내렸다. 그의 몸속에 서식하기 시작한 암세포는 순식간에 몸을 불려 주도권을 잡고는 벼랑 쪽으로 몰고 갔다. 수십 차례 항암제가 투여되면서 이런저런 부작용이 나타났다. 간신히 식욕을 붙잡은 식욕 촉진제는 당뇨 판정을 받으며 끊어야 했다. 그러자 그 어떤 음식도 그의 입맛과 식욕을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의 삶도 수학 공식처럼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해한 문제는 쉴새 없이 주어지는데 답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이다. 곳곳에서 문제를 풀 수 있는 갖가지 정보를 가져오고, 현대 의학도 이 답 저 답을 제시하지만, 상황이 죽 끓듯 하는 걸 보면 우리가 찾아야 할 목푯값과는 먼 듯하다.
온종일 끙끙대며 누웠던 그가 오후 네 시가 되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결코 이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다. 사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정해 놓은 규칙을 어기지 않고 살아왔다. 하물며 항암제를 맞고 파김치가 되어 온 날도 그 규칙에 따라 행동했다. 그의 이런 굳은 의지와 도전은 고통을 극복하고 내일을 바라보는 희망이 된다. 나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그의 발걸음에 보조 맞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이 힘찬 행진은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의 열쇠가 되리라.
어느 날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팔다리가 잘린 모과나무가 길바닥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모과나무는 한여름 뙤약볕에 바싹 말라비틀어져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였다. 가엾은 마음에 집으로 가져와 물을 가득 채운 양동이에 며칠간 담가두었다. 잔뜩 말라 있던 뿌리가 통통해지자 화단에 옮겨 심었다. 하지만 그 가엾은 나무는 눈을 맞추고 어루만져주는 손길에도 산 듯 죽은 듯 미동이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보살피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정성을 알았는지 다음 해 봄이 되자 슬금슬금 눈을 뜨기 시작했다. 꺼칠하던 피부에 물기가 돌고 뭉툭한 팔에선 가느다란 가지들이 뻗어 나왔다. 곧 아기 손톱 반만 한 새순이 조롱조롱 돋아났다. 힘겹게 이겨낸 생명의 탄생은 내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퇴비를 듬뿍 주어 힘을 북돋웠다. 모과나무는 응답이라도 하듯 더 힘차게 가지를 뻗고 자신의 영역을 키웠다. 오월, 연분홍 꽃이 눈부시게 피어났다.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의 삶은 두렵다. 출구는 보이지 않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일이 반복될 때 우리는 넋을 잃곤 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온종일 뿌옇게 떠 있던 안개가 걷힌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집 안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내고 저녁 준비를 한다. 모처럼 그가 저녁 메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 묻는 말이 왜 그리 반가운지 온종일 웅크렸던 마음이 슬며시 펴진다. 보리굴비를 찜솥에 안치고, 나박나박 썬 무와 소고기를 들기름에 달달 볶아 뭇국을 끓인다. 다시 한번 이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그의 잃어버린 미각을 깨워보리라.
그는 지금 극기 훈련 중이다. 입술이 마르고 온몸이 타는 통증을 감내하며 올라야 할 이유가 있어 오늘도 또 내일도 산을 오를 것이다.
첫댓글 팔다리가 잘렸던 모과나무가 승애샘 정성으로 새순이 돋고 가지륻 뻗듯
오라버니 잃어버린 미각도 깨울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모두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의 삶을 살고 있지요. 반드시 출구를 곧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손을 잡습니다.
깊은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출구를 알 수 없는 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저에게 따뜻 한 마음 얹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승애씨의 극진한 사랑이 꽃을 피우길 바랍니다.
그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면서 또 이렇게 감동의 글을 쓰니 그 넓은 마음을 어디에 비하랴.
부디 팔다리가 잘려도 꽃을 피워낸 모과나무처럼 오라버니께서도 삶의 꽃을 피우시기를 빌어봅니다.
승애씨 사랑합니다. 눈물날만큼
잘려니간 모과나무처럼 새 생명이 돋아나길 간절히 바라는데 찬바람만 몰아치네요.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선생님의 극진한 간호가 그 분을 꼭 소생시키시리라 믿어요.
절실한 기도의 응답을 보내주실 그 날에 희망을 걸고 조금만 더 힘내세요.
회장님 기도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스멀스멀 기어 나오던 감성이 꽈당 나뒹굴어진다. > 마음이 아파오는 대목이네요
말라 비틀어진 모과나무가 부회장님의 마음 끝에서 회생을 하였듯이~~<그 남자> 분 께서도 분명히 다시 일어 설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언제나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부회장님~~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읽어주시고 따뜻한 마음 듬뿍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길 빕니다.
투병하시는 분과 간병하시는 분의 끊임없는 정진이 아픔과 감동을 줍니다.
정성을 봐서라도
많은 성도들의 기다림을 위해서도
꼭 일어서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수필은 치유의 문학이라는 점을 이 작품에서 다시 봅니다.
선생님께서 정성드려 기도해주시고 많은 분들이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 고맙습니다.
하루의 일상이 그를 위한 간절함으로 가득차 있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선생님의 기도가 곧 이루어질것을 믿습니다.
저도 수술3년째 아직 걷지 못하는 제 동생이 일어서리라 믿기때문이에요.
선생님 힘내세요.
고맙습니다. 따뜻한 격려 고맙습니다. 동생분도 하루 속히 일어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