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뱅이에 허풍쟁이 몽상가인 페르 귄트의 ‘황당한 일대기’
음악극 <페르 귄트>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게으름뱅이에 허풍쟁이 몽상가인 페르 귄트의 ‘황당한 일대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페르 귄트는 아름다운 여인 솔베이(영어식 표기로는 솔베이지)가 자기 곁에 있는데도 남의 결혼식장에서 신부 잉리(영어식 표기로는 잉그리드)를 납치해 산으로 도망칩니다. 또 산 속에서는 마왕의 딸에게 반해 유희를 즐기다가 마왕에게 혼쭐이 나기도 합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솔베이와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몽상과 모험을 꿈꾸지요. 결국 솔베이를 남겨 둔 채 배를 타고 머나먼 곳으로 떠납니다.
모로코와 아라비아의 사막을 떠돌며 사기를 치고 예언자 행세를 하다가 마침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을 발견해 엄청난 부자가 되지요. 하지만 금은보화를 싣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길에, 노르웨이를 눈앞에 둔 상태에서 거대한 풍랑을 만나 결국 알거지가 되지요.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고 돌아와 백발이 된 아내 솔베이의 품에 안겨 인생의 마지막을 맞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좀 황당한가요? 입센의 초기작들이 보여주는 낭만적 경향의 희곡인데, 괴테의 <파우스트>에게서 적잖은 영향을 받은 듯 보입니다. 모험가이자 야심가로 설정된 남자 주인공은 물론이거니와 여성이 구원의 표상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렇지요.
그리그는 이 극음악을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으로 개정합니다. 1888년에 <모음곡 1번> Op.46을, 1892년에 <모음곡 2번> Op.55를 작곡했다가, 1893년에 다시 한 번 손을 보지요.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듣는 <페르 귄트 모음곡 1ㆍ2번>입니다. 1번과 2번에 각각 4곡씩 담겼지요. 그래서 모두 8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부와 모험을 쫓아 유랑하는 페르 귄트.
제1모음곡 Op.46
1모음곡(Op.46)의 1곡은 ‘아침의 기분’(Morning Mood)입니다. 원래 극음악에서는 4막의 전주곡이지요. 모험가 페르 귄트가 모로코에 당도해 맞이한 아침의 풍경을 음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들으면 누구나 금세 알 수 있는 유명한 곡입니다. 플루트가 노래하는 목가적인 주제 선율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2곡은 ‘오제의 죽음’(The Death of Åse). 연극에서는 3막의 첫 곡이지요. 어머니 오제가 산에서 내려온 아들의 허풍을 들으며 쓸쓸히 죽어가는 장면입니다. 바이올린이 매우 비통한 정조의 선율을 이끌어가는 음악입니다. 아마도 <페르 귄트 모음곡> 전곡에서 가장 슬픈 곡일 성싶습니다.
3곡은 ‘아니트라의 춤’(Anitra's Dance). 4막에 등장하는 곡이지요. 아라비아 추장의 딸 아니트라의 우아하면서도 요염한 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현을 퉁기는 피치카토 주법, 동양적 분위기의 선율이 인상적입니다. 4곡은 ‘산속 마왕의 동굴에서’(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애초에는 2막에 등장하는 곡입니다. 호른이 약간 음침한 느낌의 선율을 멀리서 연주하고, 첼로가 현을 퉁깁니다. 북구의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트롤)들의 춤이 펼쳐지면서, 점점 빠르게, 빙글빙글 도는 느낌의 악상들이 이어집니다.
제2모음곡 Op.55
2모음곡(op.55)의 1곡은 ‘신부의 약탈과 잉리의 탄식’(The Abduction of the Bride. Ingrid's Lament). 애초에는 2막의 전주곡입니다. 혼례 장면을 묘사하는 이른바 ‘약탈의 주제’가 단호한 느낌의 관현악으로 터져 나오지요. 하지만 이어서 잉리의 탄식을 묘사하는 애처로운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다가 다시 혼례의 장면으로 돌아가지요. 2곡은 ‘아라비아의 춤’(Arabian Dance). 4막에 등장하는 곡입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펼쳐지는 젊은 아가씨들의 춤을 묘사하고 있지요. 페르 귄트는 자신이 예언자라고 뻥을 치고는 그 춤을 감상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아름다운 아가씨의 춤이 등장하는데, 그 춤의 주인공은 추장의 딸 아니트라입니다. 앞부분은 아가씨들의 군무를, 뒤에 등장하는 좀 더 고혹적인 선율은 아니트라의 춤을 묘사합니다.
3곡은 ‘페르 귄트의 귀향’(Peer Gynt's Homecoming). 5막에 등장하는 곡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떼돈을 번 페르 귄트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향 앞바다의 성난 폭풍우였지요. 곡의 시작부터 터져 나오는 급박한 느낌의 관현악이 폭풍우 치는 바다의 정경과 페르 귄트의 두려움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4곡은 ‘솔베이의 노래’(Solveig's Song). <페르 귄트 모음곡>의 백미와도 같은 곡이지요. 늙고 지친 페르 귄트, 천신만고 끝에 고향의 오두막으로 돌아온 그는 백발의 솔베이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마침내 죽음을 맞습니다. 관현악 버전뿐 아니라 소프라노의 성악 버전으로도 널리 사랑받는 곡이지요. 편안한 마음으로 전곡을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네요
싱크가 안맞아여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