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좀은 우울한 표정으로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호규였다. 손님은 별로 없었는데... [개인사정이야 어떻든 청중은 네노래를 듣기 위해 값을 치렀어] 허공에 나타난 날자가 하는 소리였다. [감사해하고 정성껏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야돼] '알았어..근데 꿈에도 한번 안보이다니 너무하잖아 누나' [정신차려! 노래중에 잡념이라니] 노래가 끝나고 손님들이 한둘 박수를 치고 퇴장하는데 총무가 손짓을 했다. "저기 15번 테이블 보이지? 잠깐 보자는데.." 여자 세명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데 30대로 보이고 옷차림도 세련 고급진 것이 부티가 났다. "이런 거 안하기로 했잖아요. 술도 못먹고요" "그..그렇지만 잠시 시간내어 술만 한잔 따라주면 부수입도 챙길" "아니 벌써 충분히 벌거든요" 총무의 표정이 안 좋아지는데 거리낌없이 나왔다. '까짓거 그만 두라면 그만둬주지뭐' 건물밖으로 나오다 호규가 놀랐다. '그러고 보니..6개월 다되어가잖아. 이제 정리작업에 들어간 것인가?' 나이트를 돌아보며 '마지막 무대는 울내를 불러야..' '과연 부를 수 있을지...'
12. 급전직하
한낮 회장실 안에서 50대의 회장이 서류를 넘기며 "결근 한번도 없었고 실수나 잡음 한번 없었네?" 옆에 서있던 30대의 총무가 하는 소리에 놀랐다. "아주 성실한 친구더군요. 한번도 한눈 안팔고" 회장이 호규를 아래위로 훑으며 "근데 너무 바른생활맨이면 손님들에게 거리감을 줄건데..? 심호..아참 이오후씨 어떻게 생각하나? 노래에 집중하는 것 못지 않게 에프터서비스란 개념으로 여유를 좀 가지면..." "....이미 최선을 다해서 불렀는데 무슨 애프터요?" 총무가 안절부절하고 회장이 돋보기를 고쳐썼다. "서비스가 안 좋다고 불평하면 좋다고 할 때까지 다시 불러줘야 하나요? 불러준 노래는 환불받을 수 있단 말인가요?" "헐 이리 말 잘하는 친구였다니..좋아 그간 일하면서 유감이라든가 하고픈 말 마음껏 해보게나. 3분만 듣겠네. 시이작" "어떻게 얽힌 건지 몰라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고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과 발전이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무대는 제곡으로 부르는 걸 이해해주셨음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헐..그동안 선곡은 무조건 자네 자유였지 않나?" "....저를...도와준 선생님도 두분있지만...자작 창작곡이거든요.." "좋아, 계약을 6개월 연장하려는데 오후씨 생각은?" "!!" "문제는 없겠지?" "가, 감사할 뿐이지만 대체 왜요?" "내가 이유까지 설명해줘야 되나? 그거야말로 에프터서비스같은데?" 봉투를 던져주며. "돈이란 받은 자리에서 확인해야돼" 봉투안의 수표를 확인한 호규의 눈이 커졌다. 회장이 뒷머리를 쓸며 말했다. "경차라도 장만했음 싶지만 그거야 쓰는놈 마음이니까 끝!"
호규가 터덜거리며 중간재로 왔는데 이사장과 박생이 장기를 두고 있다. 김이 오르는 찻잔. "그래..청중들 반응이 어떻든?" "못 불렀어요.." "참말로 야박하네. 야박해.." "잘 되었어! 울낸 아직 덜되었다고 했잖아. 아카시아는 연이 아닌겨. 내가 수원쪽에 알아봐 줄 테니까 아무 걱정마라!" "6개월 연장에 오천..근데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카폴코거든요" 두사람이 서로 마주 보는데 호규가 장기알을 쓸어담았다. "가요. 차한대 뽑았으니 시승식겸...고기라도 씹어야지요"
기뻐 날뛰듯 호규를 따라 중간재를 내려오는 이와 박인데 호규는 먼 곳을 공허히 훑고 있다. 날자의 모습들이 여러 장면 스치는데..정사모습까지. 이와 박이 경차를 돌아들며 문을 열고 본넷까지 열어보며 소란이지만 호규는 정신이 나가있었다.
한밤중 아카폴코 나이트 무대에서 호규가 열창했다. -- 당신의 고운 눈매에 할말을 잊었지마는 -- 날자가 여기저기서 어른거리고 -- 냉정히 돌아선 무정한 사람은 눈물을 모르겠지요 -- 날자와 사랑을 나누던 모습..장면..뜨거운 정사
-- 다정한 그날의 뜨거운 추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나 -- 아옹다웅모습. 술먹던 기억에 눈물이 절로 흘렀다. -- 잃어버린 정이 그리워지면 그때는 어찌하나요 --
무대뒤로 퇴장하는데 예의 총무가 툭 "이봐, 좀 심한 것 아냐?" "무슨 뜻인지..?" "아무리 자유곡이고 감정싣는 것도 좋지만 울기까지 하다니 너무 오바하는 것 아니냐고? 자작곡이라면 또 몰라. 그도 여자노래를.." "제가 요즘 좀 많이...그래서요" "눈치가 있어야지. 요즘 워낙 불경기라서 회장님 사업에 장애가 많다고. 사업장에서 질질 짠다는 것은...머 오후씨가 알바가 아닐지 몰라도" "그, 그렇네요. 내일부턴 밝은 것으로 부르지요"
중간재 한밤중 저녁 공부중인데 박상도 함께 하고 있었다. "작가도 그렇지만 가수라고 다를 게 읎어...아주 어린 나이에 피어난 애들도 많고 한참 나이든 후에 데뷰도 많고..여가수들이 대개 어린 나이고 남자가 장사익처럼 만기데부랄까..?" 박상이 거들었다. "목청도 마찬가지 은퇴시기도 마찬가지 천차만별이랑게. 정답은 읎어. 성공만 하면 그게 정답여. 그래서 별별 사람들이 해보겠다고 아우성치며 달겨들지만.." 호규의 전화벨이 크게 울리자. 왠지 불길분위기... "예..총무님 이 시간에...아..!" 호규의 어두워지는 안색을 보고 이와 박생이 긴장했다. "......" 한동안 전화소리에 집중하는 호규 전화를 힘없이 내려트리자 "마따나 그동안 전화 한번도 없었잖냐?" "무기 영업정지를 당했대요. 풀릴 때까지 안나와도 된대요. 다른데서 불러도 좋대요" 경악하다가 허탈해하는 이와 박 "어..어쩐지 너무 쉽게 풀린다 싶었다. 사기죽지 마라 꼭 아카시아 아니어도" "아니 계약기간은 지켜야 의리지요. 낼 아침에 만나봐야겠어요. 돈을 안썼길 다행이지" "도..돈 토해내라고까지?" "아니 그런 말은 없었지만 돌려줘야 인사같아서.." "야가 지금 무신 개풀 뜯어먹는 소리를?" "돈주인 맘대로지 이생이 뭔디 상관여?" "꼭 그럴 필요가 있냐. 이런 경우는 안돌려줘도 아무 하자읎어" "오천에..가능한대로 덧붙여서.." "그..그간 일한 보름치는 까야지 왜?" "인사라잖아 인사. 암 내 제자라면 그런 인사는 되어야지. 잘 생각했다" "그래! 난 인사가 못되어서 술이나 마실란다!" "선생님, 어쩌면 좋은 공부시간이 될지도 몰라요. 전에 단돈 천원도 없던 시절도 있었잖아요. 아카폴코덕에 급한불 끄고 몇달 잘 살았잖아요" "그래, 쪽팔리니 그만 뚝해라. 차 할부금은 내가 책임질테니 걱정말고" 호규가 공손히 소주를 따랐다. "아뇨..차도 제가 가능한..자 한잔 드시고 마음푸세요" "왜 난 안주냐? 내입은 입이 아니냐?" 박생이 따라준 술을 맛있게 마시고는 "해서 말인데 언제까지 이런 고물하치장에서 보낼거여?" "무슨 헛소리? 누가 뭐라 해도 난 중간재를 뜰 순 없어.." "임대료도 복잡한 낌새던데 돈이 문제야? 돈이라면 내가.." "임대료는 날자가 처리할 것도 같으니 큰 문제는.." "난 이런데서는 죽어도 못산단말야!" "팍상도 호구에게 물들었나 무슨 뚱딴지 같은..?" "아파트 비워줘야 해서 당장 이리 이사해와야 된단 말여..." 이때 밖에서 "계신지요? 이여병씨.." "이시간에 또 뉘가 찾아온거여?" "이여병님 안계세요?"
문을 여니 30대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 둘이 서있었다. [화불단행이란 문자가 있다지만...차마] 우거지상의 이사장은 진짜 사형선고라도 받은 표정이었는데..
"그동안 날자가 알아서 했는디...지난 일곱달간 한푼도 안냈단다. 일주일안에 안 비우면 강제철거란다" "밀린 임대료가 얼만지 모르지만 염려마세요" "억만금도 소용없고 무조건 허문단다!" 이를 부드득 갈면서 "날자야 독하구나 독해! 아니 악독 사악 극악한 년아~!!" "이봐 이생 기분은 알겠지만 너무 심한 말을" "기분 개코를 알아! 수십년간 중간재에 서린...지, 지 애미가 찾아올지도 모를...중간재를.." "여..여길 못떠난다는 이유가 그럼?" "마,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 미친년은 절대 골백번 죽어도 안 돌아와!!" "호구야 술상봐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만 뜰 때 뜨더라도..오늘밤은 도저히 못 참겠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