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울음공동체
유진
단풍색 짙어지면 그리움도 짙어진다. 부지런히 살았으니 이만하면 됐다싶다가도 찬바람이 스며들면 문득문득 구멍이 뚫린다.
다들 잘 살고 있겠지.
돌이켜보면 삶의 전부가 관계맺음이었다. 가장 귀한 것도, 가장 어려운 것도 관계맺음이었다. 사람과 사람사이는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멍이 들었고. 멍자국이 짙을수록 상처도 그리움도 깊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는 손깍지에
서운했던 스무 해가 접혔다
붉을 대로 붉은 칸나는 출가를 했고
만두를 빚던 앵무새는 적籍을 옮겼대
그래, 그랬구나
연꽃은 오늘도 진흙 속에 피었어
세모네모 분홍노랑
꽃, 꽃, 꽃들 모두 꽃의 유전자
발붙일 땅 어디서든
궁리대로 정 붙이며 사는 구나
꼽을 손가락이 모자라 그리운 얼굴들
펄럭이던 웃음이 선명해진다
비었던 계절하나가 완성되었다
「퍼즐 맞추기」 전문
석연찮은 핑계로 차일피일 멀어졌던 후배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너무 가까워서 멀어진 사이였다. 내 오지랖이 배후였기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간의 변화를 한번은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는 옛날이 그리웠고, 만나고 싶었다.
와락 껴안은 포옹이 서운했던 20년을 단번에 접었다. 연락이 닿자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달려와 주어서 고마웠다.
그래, 그랬었구나!
이해하기 힘들었던 사생활이 이젠 세로판지처럼 훤히 들여다보였다.
무대 위에서 모두가 꽃이었던 그리운 얼굴들 K, N, L, J... 연주생활로 공유했던 날들이 곱게 물든 단풍처럼 펼쳐졌다.
함께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하며,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더욱 간절해지는 교감을 밤늦도록 어루만졌다.
그녀에게 덥석 손 잡힌 곳은 향일암 돌계단이었다
단 한 번 제자의 속울음이 내 자취방을 밤새 적시고
졸업장 찢어버린 열아홉을 소금에 절이고
산부인과를 나오며 그 의붓아버지를 수백 번 죽이고
짜디짠 젓갈에 고춧가루 범벅인 가슴을 함께 비볐던
붉은 물 꾹꾹 떨어지던 은닉은
단단한 몇 겹으로 재포장되었다
잎자루 없는 줄기를 감싸지도 않고 주름진 양면 잎 잘 키운 갓처럼
서늘한 바닷바람에 헹궈가며
일찌감치 사는 법을 터득한 깊은 눈
동백 꽃그늘을 매달고 한달음에 달려왔을
아삭아삭 맵고 달큰한 돌산 갓김치
갈맷빛과 숨비소리, 향일암의 일출과 돌산대교의 일몰까지
빠트리지 않고 버무려 넣었을 테지
「동백 그늘」 전문
오래도록 아픈 기억을 뉴스에서 다시 보았다.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이 다시 무서워졌다.
중등교사시절이었다. 외진 음악실을 여러 날 기웃거리던 그 여학생의 손을 잡았을 때 바스락 소리가 날만큼 앙상했었다.
들릴 듯 말 듯, 울음 섞인 입술로 달싹거렸던 고민을 알아차린 건 졸업식을 앞둔 겨울이었다.
엄마가 병으로 떠난 뒤 의붓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었다. 태연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등을 토닥였다. 은밀하게 나를 찾아준 학생이 고맙고 고마웠다. 친구가 운영하는 산부인과가 타 지역어서 다행이었다. 진로가 정해질 때까지 내 자취방에 숨어 지내게 했다, 의붓아버지가 찾는다는 소식이 들린 다음날 자취방에 남겨진 건 어디서건 자리 잡으면 연락드리겠다는 메모 한 장이었다. 안타까운 걱정만 남아 쓰리고 아팠다.
아스라한 은닉을 다시 꺼낸 건 여수여행 때였다.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향일암으로 가던 중이였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년여자가 다시 올라와 갸우뚱하는 내 손을 잡았다.
“저예요. 선생님...!” 목소리를 듣고 단번에 알아봤다는 것이었다. 동료와는 숙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녀와 만감이 교차하는 오후를 보냈다.
외가친척의 식당 종업원으로 있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아이 둘을 낳은 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졸업했고, 전공을 살려 남편의 사업을 돕고 있다고 했다.
오래전 퇴직한 선생님을 찾을 길이 없었다는 그녀를 삼십년 전 그날처럼 아무 말 없이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삼십 여년의 그 은닉은 재포장 되었다.
이후로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매번 보내오는 돌산갓김치에 그녀와 나, 둘만이 아는 안부를 듣는다.
기억나? 우리가 꽃이었을 때
흰나비 팔랑이는 촘촘한 햇살아
왕관보다 빛나던 노랑빨강리본
승차권 없는 꿈
대합실은 붐비고 열차는 오지 않고
헤어진 적 없이 헤어진 우리
걷고 달리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상 어디까지 갈수 있나
「씨앗의 시간」 부분
우리에게도 천진무구의 시절이 있었다. 사사로운 욕심이나 계산 없이, 시기나 질투, 음흉하고 교활한 처세 따위는 단어도 몰랐던 마냥 좋기만 하던 시절, 꽃이면서 꽃인 줄도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경쟁가도를 달려서 우리는 어디까지 왔나. 배운 만큼 아는 만큼 올곧게 살고 있나. 탐욕과 오만과 부박함에 시달리는 세상 어디까지를 믿어야할까? 이권 앞에 굴종하지도 않았고, 불의(不義)에 편승한 일도 없이, 부지런히 살았을 뿐인데 현실은 냉혹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달라져있나?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 시간은 시를 생각하는 시간, 혼자이면서 전부가 되는 시간, 만나고 떠나고 머무는 소중한 인연들과 천진무구를 생각하는 씨앗의 시간이다.
더위 물러서자 울음이 드러났다
귀뚜리가 울고
풀무치 땅개비 베짱이가 운다
미물에게 생이란 치열과 순응뿐인 구릉
표정도 그림자도 없는 저 울음에
누군가는 음률을 그려 넣고
누군가는 공명을 생각하고
누군가는 눈물을 매달았다
태어남으로 살고
살아서 사무치는 울음들
숨은 바람처럼 명멸하는 울음들
모두가 사랑이다
「울음공동체 」 전문
처서가 지나면 귀뚜리 한 마리가 울고, 사나흘 뒤에는 몇 마리가 운다. 귀뚜리 소리가 온갖 울음을 불러들이면 머지않아 겨울이 이다.
울음으로 태어나고, 울음 끝에 사별하는 생,
치열과 순응뿐인 울음들... 살아서 사무치는 울음들...
모두가 사랑이다.
ㅡ 우리詩 202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