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행복한 선물
“막 그냥 다라니를 했더니 이렇게 돌아왔다. 그게 다라니 했다 라고 하는 거야.”
큰스님 주변에 하얀연꽃 같은 화엄경 열 권과, 바다같이 옥빛으로 푸른 화엄경 열 권이 놓여 있었다.
“에헤 야 이렇게 했네. 독송하라고 발음기호도 다 있네.”
“아따 야무지다. 예쁘다.”
“잘 했네. 가볍게. 부드럽게 이렇게 넘어가네. 이것도 하나 둘 셋 넷, 열.”
큰스님이 감탄하신 말들을 적다가 웃음이 났다.
보살님이 무심히 화엄경을 정리하자 큰스님은 일이삼사 순서대로 잘 맞춰서 케이스에 넣게 하셨다. 그리고 다른 보통 물건들과 같이 정리되는 것이 싫으신지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도 당부하셨다.
“집에 있는 화엄경이 울지도 모르겠어요.”
라고 보살님이 말씀하시자 갖고 계신 화엄경들을 하나하나 나열하셨다.
“아주 좋은 거 생겼다. 이걸 또 몇 날 며칠 안고 자야지. 하하하”
*
“이 스님 해인사골짜기 촌스님인데 그래도 미국서 차 가지고 다 헤집고 다녔다 굉장한 스님이야.” 하시면서 볼 때마다 소개하시는 해인사 비구니 스님이 오시자 “더러 결석했지?” 하고 물으셨다.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으셨다고 하는 스님에게 “눈을 마주쳐야 온 줄 알지.” 하셨다.
“스님. 이건 무슨 책이예요?” 해인사 스님이 묻자
“이거? 이거 지난 시간에 잔소리한 화엄경 탑 그래 내가 잔소리 했더니 얻었다. 하하”
하셨다.
*
지난 시간에 큰스님의 ‘다라니’를 듣고 화엄경을 가져오신 양산에서 오신 비구니 스님은
“스님 화엄경이 더 좋습니다. 저희들 해주시는 거.” 라고 하셨다.
“그렇지. 그건 과목을 다 나눴고 토를 달았잖아. 대작불사야. 대만에서 온 이 화엄경은 옛날부터 있었던 책을 인쇄한 것이고, 강설책은 열 배는 힘들게 공들인 책이야.”하셨다.
그래도 그토록 기뻐하신 화엄경 또 다른 한 질은 입승스님이 대만에 계신 스님께 직접 연락해서 받으신 화엄경이었다.
두 질 모두 ‘화엄경 경전판’ 이라고 책 모서리에 써 있었다.
*
큰스님의 생신에 맞춰서 제주도 현풍의 절에서 보살님들과 스님이 떡을 7가지 맞추고 식혜를 3일간 고아서 공양 올리러 오셨다.
“제주도 떡이 유명한가? 자기들 동네 떡이 유명하지 뭐.”
하시면서도 큰스님은
“제주도 오매기떡 알지. 나도 시켜먹는데.” 하셨다.
마침 오메기 떡도 가져왔다고 보살님들이 기뻐하셨다.
*
오늘 큰스님은 화엄경에 사인을 해주시면서 ‘發菩提心(발보리심)’이라고 써주셨다.
입승스님이 편집하신 대만 앨범에서 화엄경 탑을 보시고는
“화엄경 강설이 다 출판되고 나면 80권짜리 화엄경을 만질 공양해버릴까? 그동안 공양올린 건 무효로 하고.” 라고 말씀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오늘도 대방광불 화엄경 점안식을 거행하겠다. 서문을 펼쳐 주시기 바란다.
오늘 점안할 제 19권에는 승야마천궁품, 야마천궁게찬품, 십행품1 이렇게 세 품이 들어있다. 이럴 경우에는 서문을 쓰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표현이 다 되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준비를 했다.
서문
그때에 세존께서 일체 보리수나무 아래와 수미산 산정을 떠나지 않으시고 저 야마천궁의 보배로 장엄한 궁전을 향하시었습니다.
그때에 야마천왕이 멀리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즉시 신통한 힘으로써 그 궁전 안에 보련화장(寶蓮華藏) 사자좌를 변화하여 만들었는데 백만 층으로 장엄하고, 백만의 황금그물이 서로 얽히었고, 백만의 꽃 휘장, 백만의 꽃다발 휘장, 백만의 향 휘장, 백만의 보배 휘장이 그 위에 덮이었습니다.
명칭(名稱)여래의 소문 시방에 떨치니
모든 길상(吉祥)중에 가장 높으며
그 부처님이 일찍이 이 마니궁전에 드셨으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합니다.
보왕(寶王)여래는 세간의 등불이시니
모든 길상 중에 가장 높으며
그 부처님도 일찍이 이 청정궁전에 드셨으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합니다.
부처님이 큰 광명 놓아
시방을 두루 비추시니
천상과 인간의 높은 어른 뵈옵기
환히 트이어 걸림 없도다.
부처님 야마천궁에 앉아서
시방세계에 두루 하시니
이런 일은 매우 기특하여
세간에서 희유하도다.
수야마천왕이
열 분의 부처님을 게송으로 찬탄하니
이 모임에서 보는 것처럼
일체 처에서도 모두 그러하도다.
찬탄합시다. 찬탄합시다.
이 세상에 사람 부처님이 오심을 찬탄합시다.
중생 부처님이 오심을 찬탄합시다.
내 부처님이 오시고 당신 부처님이 오심을 찬탄합시다.
서로서로 부처님임을 깨달아
목청껏 소리 높여 찬탄합시다.
2005년 1월 1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나는 그동안 문수경전연구회에서 임제록, 법화경, 화엄경과 같은 중요한 경전들을 설하고 있다. 어떤 경전을 설하든 그 중심사상을 요약하면 ‘인불사상(人佛思想)’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불사상은 사람인(人)자 부처 불(佛)자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하는 사상이다.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그래서 화엄경강설 19권을 쓰면서 나는 그 서문의 마지막 구절에 이렇게 썼다.
‘찬탄합시다. 찬탄합시다.
이 세상에 사람 부처님이 오심을 찬탄합시다.
중생 부처님이 오심을 찬탄합시다.
내 부처님이 오시고 당신 부처님이 오심을 찬탄합시다.
서로서로 부처님임을 깨달아
목청껏 소리 높여 찬탄합시다.’
*
사람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없다.
유교에도 ‘천지지간(天地之間) 만물지중(萬物之中)에 유인최귀(唯人最貴)’라는 말이 있다. ‘오직 사람만이 가장 존귀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생명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그 원인이야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어떤 가치를 자꾸 만들어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긴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늘 나오는 일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살상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태풍이 분다든지 지진이 난다든지 천재지변이 일어나 불가항력으로 당하는 일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앗아간다고 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사람의 목숨은 어떤 보상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그 사실을 깨달으시고 만중생에게 사람의 가치를 외치셨다.
그런데 갈수록 사람 목숨을 우습게 보는 풍조가 팽배해 간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무기를 어느 정도 만들어 놨는가 하면 이 지구상의 70억 인구를 백 번을 죽이고도 남을 무기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고 가슴 아픈 일이고 사람으로서 속상한 일이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런 나라가 무슨 선진국이고 선진기술을 가진 나라인가.
어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하는가.
옛날의 원자폭탄 정도가 아니라 핵무기나 원자폭탄의 몇 십배나 되는 위력을 지닌 무기들을 현재 무수히 만들어 놓았고 그 무기로 이 지구상 인구인 70억 인구를 백 번을 죽이고도 남는다고 한다.
이런 시대이니 인불사상(人佛思想)이라는 말씀이 더욱 귀하다.
불자만이라도, 또 불교를 전문으로 공부하는 프로 스님만이라도 이 인불사상을 투철히 익혀야 한다. 사람 생명의 존귀함을 깊이 깨달아서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오늘 점안식이 조금 길어졌다.
본 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二
第五會 三品 十廻向分
昇兜率天宮品 第二十三
三. 處所의 莊嚴
91페이지(화엄경제2권, 민족사 刊), 상단에 12번 보의장엄을 공부할 차례다.
12, 寶衣莊嚴
百萬億天寶衣와 百萬億天靑色衣와 百萬億天黃色衣와 百萬億天赤色衣와 百萬億天奇妙色衣와 百萬億天種種寶奇妙衣와 百萬億種種香熏衣와 百萬億一切寶所成衣와 百萬億鮮白衣가 悉善敷布하야 見者歡喜하니라
백만억 하늘보배옷과 백만억 하늘청색옷과 백만억 하늘황색옷과 백만억 하늘적색옷과 백만억 하늘 기묘한 빛깔옷과 백만억 갖가지 보배가 기묘한 옷과 백만억 갖가지 향기가 풍긴 옷과 백만억 일체 보배로 만든 옷과 백만억 깨끗한 흰 옷들을 곱게 깔아서 보는 이들이 기뻐하였다.
*
보의장엄(寶衣莊嚴): 보배옷의 장엄
*
보배옷으로서 장엄하다. 이 내용은 부처님이 도솔천궁에 올라가셨을 때의 장엄에 대한 내용이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승도솔천궁품의 다음 품은 도솔궁중게찬품이다. 도솔천궁에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품이다.
이 두 품이 설해지고 나서 무려 11품이나 되는 길고 긴 품이 나오는데 그 품이 십회향품이다.
십회향품을 설하려고 그 앞의 서론이 화엄경 80권중에 무려 두 권을 차지한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좋은 일을 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회향을 해서 좋은 일이 열 배 백 배 불어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선근회향이다. 선근회향은 선량한 일, 좋은 일 중에 더 좋은 일이다.
불법의 중심사상은 결국은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아서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것에 있다. 그것이 불교적인 선한 행위다. 또 그것을 보살행이라고 한다.보살행을 하는 것이 불교다.
그 외 다른 것이 없다. 높은 선문답(禪問答)도 아무 쓸모가 없다.
‘머리에 짚신을 이고 갔는데 무슨 소식이냐?’
‘동당, 서당 수좌들이 나와서 고양이를 어떻게 하면 살리겠느냐? 한마디 일러라’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하면 뭐하겠는가?
그 고준한 선문답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아무 의미 없다.
지금 매일매일 수천 수 백 명의 사람이 무고하게 죽어 넘어가는데 그 앞에서 고준한 선문답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죽는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하는 것이다.
*
불교방송을 보다 보면 아프리카에서 어린아이들이 굶고 병들고 하루에 수백 수천 명씩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돕자는 광고가 끊임없이 나온다.
그런 일이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사람 생명을 건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데서 우리가 보살행을 발휘해야 한다.
10회향품의 선근회향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그런 보살행을 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주된 뜻이다.
*
우리나라에서는 ‘선불교, 선불교’ 하면서 선불교를 강조한다. 선불교는 원래 중국의 도교와 여러 가지 상황이 잘 맞아 떨어져서 상당한 세력을 펼치게 된 불교다.
그런데 그 행위로 볼 때 선불교는 지극히 소승적이다.
수천 수만 명이 전부 깨달음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일생을 수행한다.
그런데 그 중에 겨우 한 두 사람이 눈을 뜰까 말까다.
눈을 뜬 그 사람도, 눈을 뜨고 나서 보살행을 얼마나 할 지는 미지수다.
그렇게 수천 수만 명이 선불교 안에서 일생을 보내다가 선근회향, 보살행 한 번 못하고 일생을 마친다.
*
이제 우리는 불교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인도에서도 불교가 초기불교, 원시불교, 부파불교, 상좌부 불교, 대중부 불교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결론적으로 어디에 도달했는가 하면 대승불교에 도달하였다.
대승불교는 불교가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간 것이고, 결국은 보살행을 하자고 하는 불교다.
대승불교에서는 부처가 되더라도 다시 보살로서 돌아와서 보살행을 하도록 되어 있다.
대승불교의 목적이 성불이 아니고 보살행이다.
지장보살, 관음보살, 문수, 보현보살이 전부 과거에 수만 번을 성불 했지만 우정 보살행을 자청한다. 성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개인의 성불은 소용이 없다. 성불해서 힘을 길렀으면 다시 보살행으로 나가자고 하는 것이 대승불교다.
보살행에 불교의 의의가 있다.
제대로 선근회향을 잘 하려면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라는 사실, ‘모든 생명이 부처님이다’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된다. 그것을 토대로 바람직한 보살행이 나온다.
그렇게까지 인식하지 않아도 마음이 따뜻한 보살들은 봉사 잘하고 보살행 잘하고 남을 잘 배려한다. 모르면서도 그렇게 하는 이들은 선천적인 보살이다.
그런데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보살행을 할 때. 그것이 비로소 진짜 완벽한 보살행이다.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보살행은 일시적인 것이다.
같은 보살행이라 하더라도 그 의미를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에 따라서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가 있다.
10회향품을 앞두고, 그 앞에 두 품, 두 권이나 되는 서론이 있는 것을 보고 자기가 하는 선한 일을 회향하는 것, 선근회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다시 알 수가 있다.
*
21권이나 되는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다니는 내용이다.
앞으로 공부하게 되면 우리가 더 마음 깊이 이해하겠지만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는 선지식을 만날 때마다 한결 같이 이런 질문을 한다.
“나는 이미 보리심을 발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는지 거기에 대해서 아직 제대로 모르겠습니다. 보살행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첫마디는 늘 보살행에 대한 질문이다. 수많은 선지식들도 그 질문을 듣고는 모두 선재동자에게 보살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르친다.
여기 십회향품이라든지 십지품의 보살행이라든지, 21권이나 되는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보살행을 질문하고 선지식들에게 보살행을 배우는 문제를 모두 집약하고 정리해서 마지막으로 한 품으로 요약한 것이 보현행원품이다.
보현행원은 보살행의 대표이고, 그것이 화엄경의 결론이고 불교의 결론이다.
이렇게 간단하게만 하면 벌써 불교이야기를 다 한 것이 된다.
*
그런데 이렇게 대충 들은 풍월로 ‘그러니까 불교는 결국 보살행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이해하는 것과, 화엄경을 낱낱이 한 장 한 장, 한 글자 한 글자,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에 새겨가면서 인식하고 나서 ‘아 보살행이 불교의 결론이다.’ 하고 아는 것은 그 무게가 천양지차다. 그 가치와 무게와 울림이 다른 것이다.
피아노를 칠 때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치는 것은 누구라도 칠 수가 있다. 그런데 10년간 피아노를 친 사람이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치는 것과, 생전 처음 설명듣고 1, 2분 안에 배워서 치는 사람은 그 소리와 울림이 전혀 다르다.
똑같은 음계를 눌렀어도 ‘저 사람은 얼마동안 배워서 친 것이다.’ 하는 것을 전문가는 안다. 그 울려오는 소리, 느낌이 다른 것이다.
불교 역시 똑같은 내용이라도 끊임없이 반복해서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글자를 모르고, 그 이름을 몰라서 ‘관세음보살’을 천 번 만 번 부르는 것이 아니다.
부르고 부르고 또 불러도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내 가슴에 얼마나 와 닿고, 그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내 스스로에게서 표현되는가 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
백만억천보의(百萬億天寶衣)와 : 백만억 하늘의 보배옷인데, 천(天)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고급이라는 뜻이다.
대만에서 발간한 화엄경을 누가 가져왔는데 거기에 보니까 화엄경 ‘경전장본’이라고 써 놓았다.
경전장본, 경전이라는 것은 유교 경전도 있지만, 주로 불교 경전을 두고 하는 소리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만들고 가치 있는 것이다’ 라는 뜻이 경전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다.
전에 내가 병원을 간다고 중국에 갔더니 옷집에도 경전의상이라고 해놓고, 구두도 무슨무슨 경전구두라고 해놓았다. 좋은 것에는 전부 경전이라는 말을 써놓았다.
‘경전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 하고 내가 물어봤더니 ‘경전은 아주 고급이라는 뜻이고, 아주 소중하다는 뜻이다.’ 라고 하였다.
경전 이상의 것은 없다. 경전이라는 말보다도 더 고급이라는 말 뜻은 없다.그래서 너도 나도 경전이라는 말을 쓴다. 마시는 차에도 경전차라고 해놓았다.
하늘이라고 하는 것도 이 경전과 같은 의미다.
백만억천청색의(百萬億天靑色衣)와: 백만억천 푸른 색 옷과
백만억천황색의(百萬億天黃色衣)와: 백만억천 황색의와
백만억천적색의(百萬億天赤色衣)와: 백만억천 적색의와
*
백만억천기묘색의(百萬億天奇妙色衣)와 : 백만억천 기묘한 색 옷과
백만억천종종보기묘의(百萬億天種種寶奇妙衣)와 : 백만억천 종종보 기묘의와
백만억종종향훈의(百萬億種種香熏衣)와 : 백만억 종종 향훈의와 향훈은 향을 많이 쏘여서 향기가 많이 풍긴다는 뜻이다.
백만억일체보소성의(百萬億一切寶所成衣)와 : 백만억 일체 보배로 만들어진 옷과
백만억선백의(百萬億鮮白衣)가 : 백만억 아주 고운 새 옷이
*
실선부포(悉善敷布)하야 : 모두모두 잘 펼쳐져 있어서
견자환희(見者歡喜)하니라 : 보는 사람이 다 환희하게 하고 기쁘게 한다. 옷에 대한 장엄을 표현했다.
13, 寶幢의 莊嚴
百萬億天鈴幢과 百萬億金網幢이 出微妙音하며 百萬億天繒幢이 衆彩具足하며 百萬億香幢에 垂布香網하며 百萬億華幢이 雨一切華하며 百萬億天衣幢에 懸布妙衣하며 百萬億天摩尼寶幢이 衆寶莊嚴하며 百萬億天莊嚴具幢이 衆具校飾하며 百萬億天鬘幢에 種種華鬘이 四面行布하며 百萬億天蓋幢에 寶鈴和鳴하야 聞皆歡喜하니라
백만억 하늘풍경당기와 백만억 금그물당기에서는 미묘한 소리를 내고, 백만억 하늘비단당기는 모든 채색이 구족하고, 백만억 향당기에는 향그물이 드리우고, 백만억 꽃당기에서는 모든 꽃을 비내리고, 백만억 하늘옷당기에는 묘한 옷을 달았고, 백만억 하늘마니보배당기는 모든 보배로 장엄하고, 백만억 하늘장엄거리당기는 여러 가지로 장식하고, 백만억 하늘화만당기는 갖가지 화만이 사면으로 줄을 지었고, 백만억 하늘일산당기에서는 보배방울이 잘 울리어 듣는 이마다 모두 기뻐하였다.
*
보당(寶幢)의 장엄(莊嚴): 보배깃대의 장엄
*
백만억천령당(百萬億天鈴幢)과: 백만억 방울을 단 깃대와
백만억금망당(百萬億金網幢)이 : 백만억 금으로 만든 그물 깃대들이
출미묘음(出微妙音)하며: 미묘한 소리를 내며
백만억천증당(百萬億天繒幢)이: 백만억 비단으로 만든 깃대가
중채구족(衆彩具足)하며: 여러 가지 채색이 빛깔이 구족하며
*
백만억향당(百萬億香幢)에: 백만억 향 깃대에서는
수포향망(垂布香網)하며 : 향 그물을 드리웠으며
백억억화당(百萬億華幢)이: 백만억 꽃 깃대에는
우일체화(雨一切華)하며: 온갖 꽃들을 비내리며
*
백만억천의당(百萬億天衣幢)에 : 백만억 하늘 옷 깃대에
현포묘의(懸布妙衣)하며: 아름다운 옷을 달아 놓았고
백만억천마니보당(百萬億天摩尼寶幢)이 : 백만억 천마니보당이
중보장엄(衆寶莊嚴)하며: 여러 가지 보배로 장엄되었으며
백만억천장엄구당(百萬億天莊嚴具幢)이: 백만억 하늘의 장엄구 깃대가
중구교식(衆具校飾)하며: 여러 가지로 갖추어서 꾸며졌으며
*
백만억천만당(百萬億天鬘幢)에: 백만억 천만당에 가지가지 꽃다발 깃대에. 만은 꽃다발 만(鬘)자다.
종종화만(種種華鬘)이 : 가지가지 꽃다발이
사면항포(四面行布)하며: 사면으로 펼쳐져 있으며
백만억천개당(百萬億天蓋幢)에: 백만억천 일산 깃대에
보령화명(寶鈴和鳴)하야 : 보배 방울들이 아주 조화롭게 울려서,아름답게 울려서
문개환희(聞皆歡喜)하니라: 듣는 사람이 다 환희하더라.
14, 音樂聲의 莊嚴
百萬億天螺가 出妙音聲하며 百萬億天鼓가 出大音聲하며 百萬億天箜𥱌가 出微妙音하며 百萬億天牟陀羅가 出大妙音하며 百萬億天諸雜樂이 同時俱奏하며 百萬億天自在樂이 出妙音聲호대 其聲이普遍一切佛刹하며 百萬億天變化樂이 其聲如響하야 普應一切하며 百萬億天鼓가 因於撫擊하야 而出妙音하며 百萬億天如意樂이 自然出聲하야 音節相和하며 百萬億天諸雜樂이 出妙音聲하야 滅諸煩惱하니라
백만억 하늘소라에서는 묘한 음성을 내고, 백만억 하늘북에서는 큰 소리를 내고, 백만억 하늘공후(箜篌)에서는 미묘한 소리를 내고, 백만억 하늘모다라는 크고 묘한 소리를 내고, 백만억 하늘의 여러 가지 음악을 한꺼번에 연주하며, 백만억 하늘의 자재한 음악은 묘한 음성을 내어 그 소리가 여러 부처님 세계에 두루 들리고, 백만억 하늘의 변화하는 음악은 그 소리가 메아리 같아서 일체 것에 두루 응하며, 백만억 하늘북은 두드림을 따라 묘한 소리를 내고, 백만억 하늘의 뜻대로 되는 음악은 자연히 소리가 나도 장단이 맞으며, 백만억 하늘의 여러 가지 음악은 묘한 소리를 내어 번뇌를 멸하였다.
*
음악성(音樂聲)의 장엄(莊嚴): 음악소리의 장엄
*
백만억천라(百萬億天螺)가 : 백만억 하늘 소라가
출묘음성(出妙音聲)하며 : 미묘한 소리를 내며
백만억천고(百萬億天鼓)가 : 백만억 하늘 북이
출대음성(出大音聲)하며 : 대음성을 내며 미묘한 소리를 내며
*
백만억천공후(百萬億天箜𥱌)가 : 백만억 천공후가
출미묘음(出微妙音)하며 : 미묘한 소리를 내며
백만억천모다라(百萬億天牟陀羅)가 : 백만억천 모다라가. 손가락으로 결인하는 것을 모다라라고 한다. 밀교에서 쓰는 낱말이다. 밀교에서 여러 불보살들의 어떤 서원을 표시하는 인상을 모다라라고 하는데 여기는 모다라도 하나의 악기로 표현이 된 것이다.
천모다라가
출대묘음(出大妙音)하며 :크고 아주 미묘한 소리를 내며
*
백만억천제잡악(百萬億天諸雜樂)이 : 백만억 아주 여러 가지 음악들이
동시구주(同時俱奏)하며 : 동시에 함께 연주하며
백만억천자재악(百萬億天自在樂)이 : 백만억 자재한 음악이
출묘음성(出妙音聲)호대 : 미묘한 음성을 내되
*
기성(其聲)이 : 그 소리가
보변일체불찰(普遍一切佛刹)하며 : 일체 불찰에 두루두루 하며
백만억천변화악(百萬億天變化樂)이 : 백만억 변화의 음악이
기성여향(其聲如響)하야 : 그 소리가 마치 메아리와 같아서
보응일체(普應一切)하며 : 일체 모든 곳에 두루두루 널리 응하며
*
백만억천고(百萬億天鼓)가 : 백만억 하늘 북이
인어무격(因於撫擊)하야 : 북을 침을 인해서
이출묘음(而出妙音)하며 : 미묘한 소리를 내며
백만억천여의락(百萬億天如意樂)이 : 백만억천 마음대로 소리를 내는 음악이
자연출성(自然出聲)하야 : 자연히 소리를 내어서
음절상화(音節相和)하며 : 음절이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며
*
백만억천제잡악(百萬億天諸雜樂)이 : 하늘의 여러 가지 뒤섞인 음악들이
출묘음성(出妙音聲)하야 : 미묘한 소리를 내어서
멸제번뇌(滅諸煩惱)하니라 : 온갖 번뇌들을 다 소멸하더라.
우리 사바세계는 법을 전하는 데 있어서 음성으로 교화의 체(體)를 삼는다는 말이 있다. 음성이 중요하고 말소리, 악기소리가 중요하다. 따라서 염불소리도 중요하다.
불교에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고 순서를 매겨놓았듯이 첫째는 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소리다. 말씨도 소리를 통해서 표현되니까 같은 말이라도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하듯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소리를 내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가 전혀 다르게 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전하는 법사는 소리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져야 된다.
나도 음성이 좋고 법문을 잘하거나 강의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불교티비를 보면 보기에도 난처한 법사들이 많이 나온다.
요즘에 불교티비(BTN)에서 강의를 하는 법사들은 거의 스스로 돈을 주고서 자신의 설법을 방영한다. 그 사람의 수준이 어떻든 간에 돈을 내는 사람에게 방송시간이 돌아간다. 인상도 고약하고, 말씨도 반말 비슷하게 쓰고, 판서하는 글씨도 영 아니게 쓰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 한 번 본받고 배운 적 없이 제멋대로 중노릇하고 제멋대로 살아오다가 강의도 제멋대로 하는 것이다.
겉모습도 제멋대로다. 그래서 볼 때마다 참 보기 난처하다.
욕심 같아서는 대만의 자제공덕회처럼 나도 TV 방송국을 하나 차리고 싶다.
대만에서 자제공덕회는 TV방송 채널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데 광고방송이 단 1초도 안 나온다. 우리나라는 그렇게는 못한다 하더라도, 광고도 좀 선별하면서 내주면 좋겠다. 법사가 스스로 돈을 낸다고 해서 함부로 법문하는 것을 방영해서는 안 된다.
전세계로 불교티비가 나간다고 자랑은 하면서 그 ‘꺼리’가 좋아야 할 것이 아닌가?
*
불교티비 회장스님인 성우스님의 귀에 들어가야 할텐데, 내가 이런 소리를 요즘에 들었다. ‘불교티비(BTN)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없는 것이 오히려 불교에 플라스가 되겠다.’는 소리다. 그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아 불교티비 차라리 없는게 불교에 보탬이 되겠던데요?’
불교티비가 오히려 불교를 악선전 하는 것처럼 보여서 ‘저게 불교인가?’ 한다는 것이다. 방금 전에 나도 법사들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그것은 한 예일 뿐이고, 광고 역시 불교에 역행하는 광고가 부지기수다. 그러니까 불자들 사이에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비티엔이 없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들을 슬슬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그렇게 까지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불교티비가 불교를 PR하는데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교를 하면 안되지만, 그런 것을 보면 BBS불교방송은 우리가 여기서 공부하는 것을 돈을 안내고도 늘 방영을 해주니까 너무 고맙다.
자주 방영해주지 않는 것이 좀 아쉬울 뿐이다.
|
첫댓글 혜명화님!!! 이렇게 편히 앉아 공부할 수 있어서 넘넘 고맙습니다._()()()_
찬탄합시다! 찬탄합시다!
서로서로 부처님임을 깨달아
목청껏 소리 높여 찬탄합시다!!
혜명화 님!! 수고 하셨습니다..._()()()_
이번 달엔 또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화엄의 바다에서... 행복한 시간입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언제나 무한의 바다로 인도하시는 가르침...고맙습니다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