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섬(點心)
미얀마 양곤에 가면 도시 한 가운데 있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습니다. 깐도지 호수입니다. 깐도지라는 말은 크고 아름다운 호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 호숫가에 고급 중국 레스토랑인 로얄가든이 있습니다. 이 식당에 가면 아주 맛있는 딤섬요리를 먹을 수 있습니다. 딤섬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만두라고 부르는 요리인데, 우리가 먹는 만두하고는 상당히 다릅니다. 우리가 먹는 만두는 야채나 고기 등을 다져 넣고 찌거나 구운 것입니다. 그러나 딤섬은 새우면 새우 하나만 들어가고, 돼지고기면 돼지고기만 들어갑니다. 그러니 야채 만두, 새우 만두, 다양한 다진 고기 만두, 푸딩처럼 보이는 만두, 두부 만두 등 다양하고 신기한 만두들이 모양도 예쁘게 만들어져 나옵니다. 언젠가 8명이서 배불리 먹었는데 한 6만 원 정도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딤섬을 먹으려면 11시 경까지는 레스토랑에 가야 합니다. 12시 넘으면 딤섬요리를 주문할 수 없고 값비싼 중국 요리만 주문이 가능합니다. 딤섬은 오전에 먹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딤섬 전문점이 들어서서 하루 종일 딤섬을 먹을 수 있는 모양인데 중국 전통에서는 오전에 먹는 음식, 즉 점심(點心), 중국말로 딤섬입니다.
딤섬(點心)이 왜 우리나라에서 점심(點心)이 되어 12시에 먹는 식사를 지칭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대답은 요리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딤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딤섬(點心)의 의미는 ‘마음에 점을 찍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중국 유가(儒家)의 검약정신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군자는 마음에 점을 하나 찍는 것으로 아침을 소박하게 떼운다는 의미입니다. 딤섬과 관련해서 선어록에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옵니다. 덕산방(德山棒, 덕산의 몽둥이)으로 유명한 덕산 스님의 일화입니다.
덕산스님은 젊어서부터 교학(敎學)을 연구하였습니다. 특히 반야6백부 경전에 깊이 심취되어 끝내는 금강경(金剛經) 에 주석을 달 정도로 금강경에 통달하였다하여 주금강(周金剛)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양쯔강 남쪽의 남방오랑캐들이 불입문자(不入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하며, 극의묘처(極意妙處)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 (心行處滅) 실상이언(實相離言)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한문의 의미는 경전이나 문자는 볼 필요도 없고, 바로 마음을 보아 깨달음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진리는 언어가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끊어진 곳, 언어에서 벗어난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남방에 다녀온 한 스님으로부터 이런 소리를 전해들은 덕산스님에게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마구니들이 있나, 내가 당장 내려가서 그 마구니들을 소탕해버리겠다."
이렇게 호언장담한 스님은 바랑에 자신이 평생 연구하여 주석을 단 금강경소(疏)를 챙겨 넣고 그날로 발걸음을 재촉해 남쪽을 향했습니다. 어느 날 예양 땅에 도착해 다리도 쉬고, 점심때가 되어 출출한 배도 채울 겸해서 길가에서 딤섬을 파는 노파에게 다가갔습니다.
(어떤 책에는 노파가 딤섬이 아니고 떡을 팔았다고 번역한 사람도 있습니다.)
“할머니 딤섬(點心) 몇 개 주시오.”
노파는 덕산스님의 주문을 듣고서 딤섬을 팔 생각은 않고, 덕산스님의 바랑이 불룩한 것을 보고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저 바랑 속에 뭔 물건이 저렇게 많이 들어있습니까 상당히 무거워 보입니다.”
노파의 질문에 덕산스님이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금강경이라고 아십니까? 그 금강경에 내가 직접 주석을 단 금강경소(梳)입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저와 내기를 하시지요. 스님께서 제 질문에 대답을 하시면 제가 딤섬을 그냥 드릴 것이고, 스님이 대답을 못하시면 스님은 점심을 굶으시고 여길 떠나셔야 합니다. 그러시겠습니까?”
그런 제안을 받은 덕산스님은 시골 무지렁이로 보이는 노파가 질문한다니 우습기도 했지만 노파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드리기로 했습니다.
“예 좋습니다. 뭐든 물어보십시오.”
“스님, 금강경에 ‘과거의 마음은 흘러가서 잡을 수가 없고, 현재의 마음은 머무르지 않아 잡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아 잡을 수 없다(過去心不可得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스님께서는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點心)습니까?”
(여기서 잠깐 부연설명하자면, 딤섬, 즉 점심(點心)이 ‘마음에 점을 찍다.’라는 뜻이라는 것을 잘 아시겠지요? 딤섬이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을 이용해서 형이상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마음이라는 문제를 제시하는 할머니의 지혜가 대단해보입니다. 스님이 딤섬 몇 개 사먹으려다가 지혜가 뛰어난 할머니의 시험에 걸려든 것입니다.)
어쨌든 노파의 질문에 대답도 못하고, 한 방 먹은 덕산 스님은 점심을 굶고 노파에게 공손하게 물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어느 선지식의 지도를 받으셨습니까?”
“예, 이 길로 곧장 올라가시면 용담원(龍潭院)이라는 절에 숭신(崇信)선사께서 주석하고 계십니다. 그곳에 가셔서 그 분과 대화를 나눠보십시오.”
이 말을 들은 덕산스님은 그 길로 한걸음에 용담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덕산 스님이 용담(龍潭)에 도착해서 말하였습니다.
“오래도록 용담을 동경해 왔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연못(潭)도 보이지 않고 용(龍)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용담 스님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대가 진정 용담에 왔네.”
덕산 스님이 용담 스님의 방에 들어가서 늦게까지 자신의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진리를 설파하였습니다. 밤늦도록 조용히 덕산 스님의 말을 듣고 있던 용담 스님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이제 돌아가게.”
덕산 스님이 방문을 열고 나오다보니 밤이 늦어 밖이 너무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서서 말하였습니다.
“스님, 밖이 너무 어둡습니다.”
용담 스님이 지촉(紙燭)에 불을 켜서 덕산에게 건네주려다가, 덕산 스님이 막 받아들려는 순간 혹 불어서 불을 꺼버렸습니다.
그 순간 덕산은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스님의 말씀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서 덕산 스님은 <금강경소초>를 꺼내들고 법당 앞으로 가더니 횃불 한 자루를 들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온갖 현란한 말솜씨를 다 부리더라도 털 하나를 큰 허공에 두는 것과 같으며, 세상의 온갖 중요한 일들을 다 이루더라도 물 한 방울이 넓은 바다에 던진 것과도 같다.”
그리고 다시 <금강경소초>를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그림의 떡으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다.”
이어서 <금강경소초>에 불을 지른 뒤에 용담 스님에게 절을 하고 떠났습니다.
아무리 경전에 해박해도,
매끄러운 혀로 장광설을 토한다해도
수행으로 직접 체험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네.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는데
어느 마음에 점을 찍을 것인가?
흘러가는 마음을 주시하는 마음이 있다면
점찍는 일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첫댓글 _()()()_
스님의 말씀에 엎드려 조아립니다._()_()_()_
로얄가든의 예쁜 두부딤섬에, 점 찍습니다..^^
감사합니다.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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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서 불을 켜주었다가 다시 껐는데 왜 홀연히 깨달았을까요? 선사들이 주고받는 메시지는 난해하기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