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산에서 흘러 내리는 작은 개울을 건너 꿈에도 그리워하던 로망탄에 도착했다. 미끈 미끈한 작은 돌들로 담장을 두른 언덕길을 따라 보무도 당당하게 입성했다. 그러나 옛 티벳 왕국 로망탄은 참으로 초라했다. 말이 왕국이지 시골 동네보다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도 일행들과 로망탄왕국 입성을 자축하는 파티를 갖기로 했다. 3,800고지에서 생존이 어려운 닭을 구해 백숙을 해먹기로 했다. 물론 재료는 냉동닭이었다. 요리담당은 임실에 소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정샘이 맡았다. 파티라지만 맥주와 백숙을 곁들은 조촐한 저녁식사였다. 두 젊은 트레커는 주량이 아주 셌다. 히말을 일 년에 두세 번 나다닌다는 고참들과 체력이 딸려 술자리에 오래 머물수 없어 숙소로 돌아왔다. 산소가 부족한 로망탄에서 평소 마시지 않았던 맥주를 마신 때문인지 금세 졸음이 몰려왔다. 500루피 와이파이 사용권을 구매하여 카카오스토리에 간단한 글을 올린 후, 일찌거니 잠을 청했다. 그런데 잠결에 코가 막히고 호흡이 곤란함이 느껴졌다. 이불을 걷고 욕실로 달려갔다. 벽에 걸린 때 낀 거울에 비친 내몰골을 보니 덜컥 내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 듯 보였다. 얼굴 전체가 검고 탱탱 부어 있었으며 입술은 부르트고 쩍쩍 갈라져 있었다. 호흡을 편히 하려고 검지 손가락에 물을 조금 묻혀 코를 후볐다. 하지만 코안은 콘크리트벽에 붙은 타설물처럼 이물질이 단단히 붙어있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호흡은 점점 가파오고 두통이 심해졌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어보니 외양간에 쇠죽을 끓이기 위해 군불을 땠던 구들장처럼 펄펄 끓고 있었다. 코안이 상처나지 않도록 살~살 정리한 후, 침대에 다시 누웠다. 날숨을 내쉰 후, 들숨을 들이킬 때마다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내 몸뚱이가 죽음의 아가리로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먼저, 아이들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이대로 죽는다면 가난한 네팔 정부와 함께 한 동료에게 민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아이들의 눈물이 보였다. 허둥대며 네팔, 카투만두로 달려오는 아이들이 그려졌다. 그것만은 더 할 못쓸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12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옆방에 있는 임실에서 온 정샘을 불러 보았다. 그는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인기척이 없었다. 한참 복도에서 서성거리다, 한기가 몰려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우면 꼭, 죽을 것만 같아 침대 모서리에 앉아 오늘의 일정을 세세히 복귀해 보았다. 문득 닥마르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 묶여있던 한 쪽 다리가 부러진 절름발이 어미소가 떠올랐다. 어미소에겐 어린 송아지가 있었다. 소 주인은 젖을 짜기 위해 먼저 송아지에게 젖을 물렸다. 몇 모금 빨게하더니 아기소의 목에 걸린 밧줄을 잡아당겨 어미소와 격리 시켰다. 그러자 송아지는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 어미소는 송아지 등허리를 햝으며 진정시키고 있는 닥마르의 아침을 뒤로 하고 길을 나섰다. 우리의 팀장인 블루님은 오늘 산행거리가 멀다며 서둘러 달라는 얘기를 뒤로하고 아침을 달렸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초원지대를 걸으니 이슬비가 내렸다. 한 시간 쯤 걸으니 나무, 풀 한포기 없는 고산사막지대를 나타났다. 시야에 잡히는 것, 하나 하나가 신이 빗은 걸작품이었다. 나는 힘이 넘쳤다. 그래, 줄곧 선두에서 가이드와 함께 진행했다. 중간은 정샘이 음악을 듣고 있는지 귀에 이어폰 꼿고 진행했고 맨 후미는 항상 블루님 차지였다. 차츰 안개를 걷히자 발아래 펼쳐지는 것들이 몽환적이다. 지금까지 투자한 돈과 시간, 열정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하다. 다시 길을 내려서니 마을이 하나 있었다. 우린 이곳 차랑에서 이른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고 롯지로 들어섰다. 식사를 마치고 마을을 돌아나와 다리를 건너 초고라로 향했다. 계속되는 오르막 길이었다. 얼마 쯤 오르니 말을 탄 건장한 청년 말발굽을 울리며 내려오고 있다. 아마 지친 트레커에게 말을 대여해 주는 이 같았다. 깔딱 고개를 넘으니 넓은 초지가 나타났다. 다시 라를 몇 개를 넘었다. 무스탕 원주민들이 보였다. 아이를 업고 걸어오고 있다. 로만탕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들은 미소를 머금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Marmot zone을 지나 초코라를 넘어 한참을 걸었다. 고산사막지대와 초원지대를 걷고 또 걸으니 저만큼 마을이 시야에 잡혔다. 내 발걸음이 힘이 더해지고 걸음이 빨라졌다. 마을입구 계곡에서 어린 동자승들이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하고 있다. 드뎌, 꿈에도 그리워하던 로만탕 입성했다. 몽골 원형 형태의 게이트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삼거리가 나타났다. 길 가장자리로는 설산이 녹아 흐르는 물줄기가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그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고 주변 롯지겸 상점에서는 남정네들이 우리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숙소를 찾아 그간 밀린 빨래를 하여 2층 난간에 설치된 빨래줄에 널고, 떡본김에 제사지낸다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이게 탈이 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싶다. 흥분된 마음에 긴장이 풀려 어둠이 내리면 영하로 떨어지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도착하여 친구에게 카톡 메시지로 몸 상태가 아주 좋다고 했더니만 히말 무스탕 신이 대노 하셨을까? 잘난 척 했던 내게 빨리 하산하여 반성하고 더 낮은 자세로 세상과 소통하라는 히말 신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트레킹아웃을 결심했다.
첫댓글 너무 멋진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항상 많은 관심 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