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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인기 추락… “우린 어떡해” 통역대학원생들도 구직에 속앓이 … 시장 커진 만큼 갈수록 경쟁 치열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
“평생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돼 재수까지 하고 들어왔는데…. 최종 목표는 국제회의 통역사지만, 졸업한 선배들이 비정규직으로 여러 기업을 전전하는 모습을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아요.”(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재학생 A씨·27) 통역사는 많은 이가 선망하는 직업이다. 전문직 고소득에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고, 정년이 없으며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장점이다. 한국에는 통역사를 위한 국가 공인자격증이 없어서 통역대학원(이하 통대) 졸업이 곧 전문자격증 취득을 의미한다. 매년 한국외국어대(이하 한국외대) 통대의 입학경쟁률은 평균 10대 1. 치열한 입학경쟁률에 입이 벌어지지만 졸업은 이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 통대생 사이에서 한탄이 흘러나오고 있다. 통역사가 되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지만 예전처럼 고수익의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IMF 이후 통역사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했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면서 외국계 기업과 자본, 임원 등이 국내로 대거 진입했고 세계 속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민간·국가 차원의 국제적인 교류도 늘어났다. 국제협회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 한국이 개최한 국제회의는 총 347건으로 전년도의 293건과 비교해 18.4% 증가했다. 2000년도의 109건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은 수치. 외환위기 당시 대부분의 업계가 타격을 입었지만 통역은 예외였다. 실제 대부분의 통대가 1997년에서 2000년 사이 통역 시장의 호황과 맞물려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고소득에 안정된 미래는 옛말 통대 졸업생의 진로 유형은 크게 프리랜서 통역사와 인하우스(in-house) 통역사로 나뉜다. 인하우스 통역사는 일반 기업이나 국가기관 등에 취업을 하는 것으로 보통 1~2년의 계약직이다. 프리랜서 통역사를 희망해도 어느 정도의 경력과 인맥을 쌓은 뒤 전환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졸업생 대부분이 인하우스 통역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인하우스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인하우스 자리가 한정돼 있고 보수도 비슷했던 반면 요즘은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지요.” 이화여대 통대 이진영 교수는 시장이 커졌음에도 통대생이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로 통역사 시장의 양극화를 꼽았다. 좋은 대우를 해주는 인하우스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는 것. 비(非)통대 출신이 시장에 대거 진입하면서 통대생들의 입지가 좁아진 것도 한 요인이다. 해외유학생은 물론이고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인재가 늘어난 것. 여전히 통대 출신이 통역 속도와 실력 면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비통대 출신의 저렴한 요율도 고객에겐 무시할 수 없는 메리트다. 통대 출신의 프리랜서는 하루 6시간 기준으로 80만 원을 받는다. 반면 비통대생은 같은 시간에 10만 원 저렴하게 쓸 수 있고, 때로는 그보다 낮은 수준에서도 가능하다.
한 에이전시 관계자는 “대규모 회의나 행사가 아닌 경우, 저렴한 비용의 비통대 출신 통역사를 요구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 게다가 비통대 출신의 실력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에서는 해외 업무가 증가해도 해외 유학파나 외국어 실력이 뛰어난 직원이 늘면서 통역사 고용은 되레 줄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고정적으로 필요한 부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내부 직원을 쓴다. 계약서, 회의 등도 보통 내부 인원으로 충당한다. 정말 필요한 경우에는 그때마다 실력 있는 통역사와 일회성 계약을 맺는다”고 전했다. 인하우스로 일하는 통대 졸업생 성모(28) 씨는 “대기업이 영어를 회사 사람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렇다 보니 통대 출신이 학원 강의나 통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일반 대졸 대우를 받으며 취직하는 예도 많다”고 전했다. 통대를 나와 통역과 다른 업무를 병행하거나 국제협력 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분야에 취직하는 것이다.
한국외대 통대 최정화 교수는 “인하우스로 취직할 경우 당연히 통역 업무만 담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외에 주어지는 업무가 많아지면서 통역사라기보다 한 기업의 평범한 직원으로 살아가는 것 같은 생각에 불만이나 실망감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통역사들의 전반적인 실력 상승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도 통대 출신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한국외대 통대 이인섭 원장은 “예전에는 순발력이 떨어지거나, 언어 매치가 잘 안 되는 등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활동할 무대가 많았다. 하지만 통역사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이를 바라보는 시장의 눈도 까다로워져 이제는 웬만한 실력으로 수준 높은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분야 정보와 지식 갖춰야 “프리랜서의 세계는 냉혹한 정글과도 같습니다. 통역사로서 화려한 삶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어요. 졸업 후 잠시만 게을러도 도태하는 곳이 통역 시장입니다.”(한국외대 통대 이인섭 원장) 통역사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공통으로 건넨 말이었다. 통역사의 세계는 실력을 인정받은 이에게는 러브콜이 끊이지 않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철저한 프로의 세계라는 것. 통역은 외국어와 한국어 공부는 물론이고 여러 방면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정보를 갖춰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프랑스 통역사의 경우 예전에는 프랑스와의 업무가 주였으나 이제는 불어권 아프리카 국가와의 업무가 급증해 그 지역에 대한 정보, 불어 억양 등도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통역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색다른 선택을 하는 통대생도 늘고 있다. 한국외대 통대 재학생 방모(31) 씨는 희소성이 있는 아랍어 동시통역을 공부하고 있다. 아랍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은 영어, 중국어처럼 수요가 많진 않지만, 공급도 활발하지 않기 때문.
“아랍어 동시통역사는 국가 간, 기업 간 중요한 회의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2년 이상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통대 출신이 아니면 소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추가로 전문 분야를 구축하는 사례도 있다. 대기업에서 인하우스 통역사로 일하는 통대 출신 최모(29) 씨는 “인하우스 통역사로 활동하면서 MBA, 로스쿨 준비를 병행하는 사람이 많다. 또 다른 석사에 도전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통역사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환경, 의학, 법률, 교육 등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개척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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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10/07/26/201007260500020/201007260500020_1.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