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임영순(가명·51)씨는 도박에 빠진 남편과 2003년 위자료 없이 갈라섰다. 초등학생 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식당 설거지, 어린이집 주방일, 카드회사 영업사원…. 악착같이 모아 250만원짜리 0.5t 중고트럭을 샀다. 짐칸에 가스 설비를 해서 양정동 대로변에 세워놓고 온종일 불판 앞에 서 떡볶이를 휘저었다.
많이 벌면 월 80만원 벌었다. 3인가구 법정 최저생계비(월 110만원)에도 못미치는 수입으로는 아들(21)·딸(19) 교육비 대기가 벅찼다.
주민센터에 찾아가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게 해달라고 신청했다. 담당 공무원 대답은 "안 된다"였다. 친정어머니가 사는 무허가주택이 임씨 명의라는 게 걸림돌이 됐다. 임씨는 애타는 얼굴로 "친정 남동생이 어머니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까 봐 명의를 돌려놨을 뿐"이라고 애원했다. 담당 공무원은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했다.
- ▲ 남편과 헤어진 뒤 식당 허드렛일로 대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을 키운 김해순(가명·45)씨가 경기도 성남 집에서 복용하는 근육통 알약을 취재팀에 꺼내보였다. 김씨는 과로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건강을 해쳐 약을 입에 달고 지내는 처지가 됐다. /김건수 객원기자
싱글맘들은 이혼·사별 직후 첫 3년 사이에 최악의 위기를 맞는다. 취재팀이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와 함께 전국 한부모 290명을 조사한 결과, 이혼·사별 전까지 10명 중 4명(42%)이던 빈곤층 비율이 이혼·사별 직후 8명(80%)으로 껑충 뛰었다. 둘이 벌다 혼자 버는 과정, 재산을 나누고 빚을 정리하는 과정, 돈벌이와 육아를 도맡아 하는 과정에서 우르르 빈곤층으로 떨어진 것이다. 빈곤층 비율은 한부모가 된 지 5년이 지나서야 10명 중 6명(63%)으로 줄어들었다.
취재팀이 만난 싱글맘들은 "처음 한부모가 됐을 때 국가에서 조금만 융통성 있고 체계적으로 나를 도와줬어도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진 않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싱글맘들은 이혼·사별 직후 우왕좌왕하다 급한 대로 임금이 박하고 고용이 불안한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초기에 집중적으로 직업교육을 제공하고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 육아 서비스를 지원하며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닌 한부모도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게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은 빈곤층이 아닌 한부모에게도 양육비를 지원하고 병원비를 대출해줘 이들이 장차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한다.
반면 우리의 복지제도 혜택은 빈곤층에만 집중돼 있어, 법정 빈곤층이 아닌 한부모는 순전히 자기 힘으로 세파를 헤쳐나가느라 파김치가 됐다가 어느 순간 빈곤층에 떨어져버리기 쉽다.
손씨의 계획은 자꾸만 틀어졌다. 우선 집이 안 팔렸다.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내라는 각종 학습비가 만만치 않았다. 엎친 데 덮쳐 둘째(12)가 부모의 이혼으로 충격을 받아 우울증에 걸렸다. 주말마다 시간당 7만원짜리 상담치료를 받아야 했다.
생각다 못해 주민센터에 찾아갔지만 손씨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막내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밖에 없었다. 절박한 손씨에겐 '집이 있어서 도와줄 수 없다'는 공무원의 말이 "있는 돈 다 까먹고 거리에 나앉아라. 그러면 나라에서 도와줄게"로 들렸다.
빈곤층을 도와주려 만든 기초생활 수급제도가 오히려 자립을 가로막는 역설(逆說)이 한부모가정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어린이집 교사 양정인(가명·44)씨는 2005년 남편의 카드빚을 감당하지 못해 갈라섰다. 이혼 직후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돼 월 80만원씩 나왔지만 일을 해서 수입이 생기면 곧바로 혜택이 끊겼다. 국가에 전적으로 의지하자니 미래가 안 보였다. 일을 하자니 혼자 힘으로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벅찼다.
양씨는 주민센터 모르게 현금을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면 뭐든지 했다. 하루 3~4시간씩 자면서 어린이집 교사, 식당 허드렛일, 리포트 대행, 정수기 판매 영업 등을 병행한 끝에 작년 7월 남편이 남긴 빚 4500만원을 전부 갚았다.
기초생활 수급자에서도 벗어났다. 양씨는 "수입을 속인 것은 부끄럽지만 빚을 갚기 전에 기초수급이 끊어졌다면 다시 수급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첫댓글 재산의 유무를 떠나 양육을 맡고 있는 한부모나 한부모의 자녀라면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직업이 없다면 결국 혼자됨과 동시에 재산은 축이 나기 시작을 하기 때문입니다.양육과 직장일의 병행으로 오는 어려움이 너무 많습니다. 한부모는 아플 수도 없습니다. 아이나 부모가 충격으로 부터 벗어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일터로 내몰려야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사고와 행동을 하기 어려워 오는 시행착오와 부작용도 있습니다.학교의 장학금이나 공공기관의 선발제도에서도 기초수급자가 아니면 한부모자녀로서 받는 혜택은 없습니다. 받는 혜택도 없으면서 한부모 자녀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차별의 눈총만 받을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