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GGIO MP3
셋이니까 괜찮아
특이한 탈 것을 찾아 두 바퀴의 세계에 스며들어 온지도 어언 7년. 시속 300km도 넘겨보았고 아스팔트에 무릎을 긁거나 흙바닥에 뒹굴어 보기도 했다. 이제 땅에 붙어 달리는 한 더 이상은 신기한 경험을 하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이 생각을 왜 한번도 못해 봤을까’라며 무릎을 치게 만든 녀석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삼족(三足)주행 탈것이라
2001년 군대에서 깎은 까까머리가 채 자라기도 전에 잠시 소유했던 혼다 자이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바퀴가 세 개 달린 스쿠터는 종종 봐 왔다. 지하철에서 장애인이 탄 것이나 충무로의 종이공장 배달 바이크(엄밀히 말하면 보통의 바이크를 개조 한 것이지만) 등등…. 다만 그들 모두는 바이크의 뒤쪽을 두 바퀴로 개조해 절대적인-넘어지지 않는-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모습일 뿐 결코 새로운 재미의 주행이나 빠르게 달리는 것을 추구한 결과물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지나가면 흘깃 보고 말 물건들이지 갖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들이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얼마 전 국내에 베스파를 소개하고 판매중인 트리비코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물건을 들여와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말았으니. 이탈리아 애들도 어지간히 심심했나보다. 이것저것 만들다 못해 드디어 바퀴 세 개짜리 스쿠터를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뒤가 아니라 앞이다. 두 개짜리 휠이 앞에 있는 것이다!
미스테리 서스…
MP3를 번화가 한복판에 세워 놓고 오며가며 구경하는 사람들을 잘 관찰하다보면 공통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빅 스쿠터를 보는 시선-버튼을 만져본다거나, 널찍한 시트를 쓰다듬어 본다거나-이 아닌 ‘이게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라는 신기한 물건을 관찰하는 모습이 그것인데. 하나같이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틀어 앞 타이어의 안쪽을 살펴보는 것이다. 아하, 서스펜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한 게로군. 피아지오 독자의 패럴레러그램 서스펜션 시스템이 생소한 건 당연하다. 바이크 전문지에서 일하는 나도 난생 처음 본 물건이니 말이다.
간단히 말해 핸들에서 나오는 중앙의 축을 중심으로 좌우 한 개씩 평행한 조향 축이 있는데, 이것을 각각 2개의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는 알루미늄 캐스트 암이 붙잡고 있으며 완충을 담당하는 서스펜션은 좌우 바퀴의 짧은 액슬 샤프트 바로 위에 장착되어 있다. 이로써 두 개의 바퀴가 좌우 회전은 물론 위아래 움직임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이른바 독립된 두 개의 프론트 타이어를 장착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무궁무진하다. 일단 타이어가 두개니 접지력과 완충력이 두 배가 되어 노면 추종성이 대폭 향상되었다. 물론 비가 오거나 추운 날 미끄러운 노면에 대한 부담도 확 줄었다. 시트에 앉아 스로틀을 감으며 차체를 눕혀보면 기울어지는 느낌은 일반 스쿠터와 똑같다. 특별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 다만 노면 상황에 대한 부담감이 심리적으로 대폭 줄어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다고나 할까. 실제로 칼바람이 매서웠던 1월 초 남산의 급격한 와인딩을 달리며 아무리 차체를 눕혀보아도 타이어는 꿈쩍도 하지 않고 노면을 잘 붙들고 있었다. 선회 도중 돌멩이 같은 장애물을 밟아도 문제가 없다. 어차피 한 쪽 바퀴가 땅을 잘 붙들고 있으니 잠시 흔들리던 바퀴도 이내 그립력을 회복하고 궤도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헬멧 안에서 고함에 가까운 감탄사가 터져 나와 멈추질 않는다. 이거다. 이거라면 세상 무서울 일 없겠다! 단점? 유지보수에 드는 비용도 두 배라는 거…(웃음) 뱅킹 한계 캐스트는 40도라고 한다.
여기까지 신경 썼어?
프론트의 신기한 움직임에 재미있는 시스템이 한 가지 더 달려 있었다. 바로 전자 컨트롤 유압 시스템. 좌우 서스펜션의 유압을 조절해 주차 시 바이크가 쓰러지지 않게 고정시켜 버리는 일과 저속에서의 댐핑을 단단하게 조절하여 안정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 덕분에 MP3는 사이드 스텐드가 없다. 약 시속 20km미만에서 오른쪽 그립의 댐퍼 고정 버튼을 눌러주면 짧은 비프음과 함께 단단하게 서스펜션이 굳어(?)버린다. 기왕 신기한 조향 시스템 만드는 김에 한 가지라도 더 생각하는 자세의 피아지오에게 박수.
나머지 편의장비들은 기존의 스쿠터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고 하면 섭하다. 시트 밑 수납함은 하프 페이스 헬멧이 넉넉하게 들어가는 용량을 자랑하는데 이것이 실은 뒤쪽의 트렁크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최대 1m의 물건을 수납 할 수 있으며 잘 고정 할 방법만 생각 해 낸다면 쇼트 스키 정도는 쉽게 수납 할 수 있지 않을까.
엔진은 베스파의 GTS250 것을 유용했다. 물론 뽑아다 그대로 덜컥 끼운 것은 아니겠지. 주행 특성에 맞게 잘 다듬은 엔진은 MP3에 와서 한 번 진화한 느낌이다.
그렇지 않아도 매끄럽기가 전기모터 못지않았던 GTS였건만 이번엔 전기모터보다 더 매끄러운 것 같다. 원심클러치가 맞물리는 느낌은 아무리 엉덩이와 손에 집중하고 느껴보려 해도 노무지 느낄 수가 없다. 그저 스로틀을 감으면 메마른 배기음과 함께 ‘미끄러지듯’달려 나갈 뿐이다. 앞에서 쫀득하게 당기는 느낌은 여전하다. 역시 내가 반한 엔진. 패럴레러그램 시스템의 낭창낭창한 핸들링과 어우러져 신나게 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식구인 베스파에 훌륭한 엔진이 있으니 우린 골 때리게 재미있는 차체나 만들자며 집중한 결과인 것일까. 그들의 현명한 결단력에 다시 한 번 박수.
남들과 달라야 직성이 풀린다면
앞쪽에 붙은 두개의 타이어가 기묘한 각도로 돌고 기울어지는 모양이 그렇게나 신기한가보다. 입안에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는 아가씨나 자장면이 불던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고 따라오며 물어보는 배달원이나 관심이 대단하다. 남들보다 뻔뻔하다고 자부하던 내가 신호를 무시하고 도망 칠 정도로 집중되는 시선이 따가웠다. 이거, 소심한 사람은 절대 못 타겠는데.
전체적인 인상은 이태리 특유의 날렵함 보다는 미국의 터프함이 주를 이루는 느낌이다. 치켜 올라간 헤드라이트는 군데군데 각을 주어 듬직한 인상이고 그 아래의 라디에이터 홀이 과격한 인상을 풍긴다. 제품의 마무리 질감은 상당히 좋은 편. 부품들의 재질이 그리 고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혀 싼 티가 나질 않는다.
남들과는 다른 탈 것을 구입함으로서 자신의 소유욕을 충족시키고 과시욕을 드러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공통의 습성일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바이크들이 시장을 활보하는 동안 그 습성에 답하는 물건들이 정말 많이도 쏟아져 나왔다. 패션 바이크부터 클래식 스쿠터, 아메리칸 크루저, 레이서 레플리카 등등. 그리고 2007년, 두 바퀴에서 탈피한 바이크가 피아지오에서 탄생했다. 이것이 새로운 유행의 선두주자가 될지, 그냥 한 번 나와 본 물건이 될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알 일이다. 그리고 일단 내 마음에는 확실히 들었음을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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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GGIO MP3